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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3일로 취임 100일을 맞습니다. '경제 살리기'에 대한 높은 기대를 안고 출발한 이명박 정권은 국민의 뜻을 무시한 자세와 미숙한 국정운영으로 벌써부터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있습니다. '영어몰입교육' 논란과 '강부자 내각' 시비에 이어 주특기로 내세웠던 경제정책도 방향감을 잃고 흔들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졸속 협상에 의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로 민심은 폭발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출범 100일 밖에 안 되는 정권이 위기에 처한 이유가 무엇인지, 전문가와 시민기자들의 기사를 통해 진단합니다.  <편집자주>
체육대회에 내걸린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결국 오지 말아야 할 것이 기어코 오고야 말았다.

 

광우병이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트로이 목마 아니 '아메리카 목마' 미국산 쇠고기가 다시 들어오게 됐다. 시민단체가 '대국민 선전 포고'라고 이름 붙인 장관고시가 발표되던 지난달 29일. 촛불문화제에는 서울에서만 5만여 명이 넘는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왔다. 국민의 소리에 귀를 막고 눈을 감은 정부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다.

 

10대들이 주동 세력(?)으로 시작한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가 이제는 애 어른 가리지 않는 공식적인 국민 행사가 됐다.

 

10대들이 거리와 학교에서 끊임없이 혹은 느닷없이 불쑥불쑥 광우병 쇠고기 파동과 대통령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일마저 자연스런 현상이 된 지 오래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반대한다는 현수막이 학교 체육대회에 공공연히 내걸리고, 광우병 쇠고기와는 아무 상관없는 수업을 하는데도 아이들은 광우병 쇠고기나 대통령과 연결 지어 댓글을 달듯 짧고 격한 용어를 저마다 한 마디씩 날리는 게 유행이다.

 

사실 지난 대선을 전후한 무렵부터 대통령은 아이들에게 권위와 인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대통령은 자신들을 더욱 힘들게 경쟁시키고 못 살게 구는 '나쁜 어른'이라는 소문이 아이들 사이에서 그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자신들의 목숨을 노리는(?) 광우병 쇠고기 파동으로 그것이 더욱 깊어지고 커졌다. 그리고 '명백'해졌다.

 

아이들은 왜 '대통령' 호칭을 쓰지 않을까 

 

이를 잘 보여주는 예가 몇 개 있다.

 

먼저 아이들은 누구랄 것 없이 한결 같이 대통령에 대한 존칭을 사용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노무현 때문'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생겨나던 시절에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비판은 하되 최소한의 예의는 지켰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을 의미하는 '2MB' 라는 용어는 진작에 일상어 반열에 올랐다. 여기에 '○박이, ◇박이, △박이(○,◇,△은 모두 비속어들이다)'하는 '~박이' 시리즈가 뒤를 따른다. 최근에는 아예 대놓고 자신이 알고 있는 욕설 가운데 가장 심한 것을 말하거나, 비명을 지르며 온몸으로 싫다는 표현을 한다. 낙서장으로 종종 애용되는 책상 위에 그런 단어나 그림을 그려 놓은 아이들도 있다. 인터넷에 한번 이상의 악플을 다는 건 기본이요, 필수이다.

 

수업 중에 누군가 '2MB'나 '~박이' 시리즈 혹은 그를 연상시키는 단어를 말하면 순식간에 교실은 아수라장이 된다. 수업과 연결 안 되는 이야기로 흐름을 끊은 친구에 대한 원망이나 야유 때문이 아니다. 대통령에 대한 반감에서 터져 나오는 '무서운 단어'들과, 힘을 다해 지르는 비명으로 그렇게 되고 만다.

 

이를 진정 시키기 위해 아이들에게 점잖게 말한다.

 

"아무리 그래도 대통령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요!"

 

그러면 아이들은 순식간에 조용해지며 정색을 하고 말한다.

 

"선생님도 ○박이 찍으셨군요!"

"……"

 

진정하라는 말 한 마디에 아이들은 지난 대선에서 내가 누구를 선택했는가를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틀림없이 '○박이'를 찍었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잠깐이지만 정신이 아뜩해진다. 이것이 매일 내가 만나고 있는 아이들의 실제 모습이다.

 

국민 생각하는 '머리' 없는 대통령에게 '흑채'를~

 

말이 나온 김에 아이들에게 물었다.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념 선물은 뭐가 좋겠느냐고. 당연히(?) 반응은 격렬했다.

 

아이들은 역시나 당연하게도 '광우병 쇠고기'부터 '흑채'까지 다양한 것들을 말했다. 그런데 '흑채'라니? 흑채는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연예인 덕분에 유명해진 머리숱이 많아보이도록 하는 '가루형 증모제'다.

 

아이의 설명인즉, '대통령이 머리가 없으니 흑채를 주고 싶다는 것'. 나는 그 말이 머리숱이 적은 대통령을 생각해서 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국민을 생각하는 머리가 없으니 흑채로라도 빈 머리를 채워 넣어 국민을 생각하라는 뜻'이라는 추가 설명을 듣고서는 까무러칠 뻔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무엇이 이 아이들에게 이런 생각을 하도록 만들었을까를 다시 처음부터 고민해야 할 것 같아 전율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10대들의 이토록 무서운 반응을 대통령이 정말로 듣고 보았으면 좋겠다. 배후 운운하는 수준의 귀막음으로는 절대 안 된다. 눈은 더 크게 뜨고 귀는 더 멀리 열어서 이 아이들의 절규를 가슴으로 들어주었으면 싶다. 그래야 진실이 제대로 보이고 또렷하게 들린다.

 

막무가내의 설득과 명령이 아니라 거짓 없는 소통과 화해의 과정을 통해 우리 아이들이 진심어린 마음으로 "○박이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웃으며 말하는 것을 꼭 한 번은 들어봤으면 싶다.


태그:#취임 100일, #광우병쇠고기 , #촛불문화제,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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