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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좋은 주말. 인근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공기 좋고, 풍경 좋은 춘천으로 놀러옵니다. 그런 날 쿠하와 엄마는 톨게이트 비용을 내지 않아도 이용할 수 있는 '춘천휴게소' 잔디밭으로 도망가거나, 조경이 잘 가꿔진 '춘천시립도서관'으로 관광객을 피해 달아납니다.
 
평일 오후. 소설 '황금비늘'을 주제로 꾸며진 공지천 '황금비늘 테마거리'는 다시 잔잔해 집니다. 사람들이 일하러, 공부하러 간 사이. 쿠하와 엄마는 돗자리 하나에 놀잇감 몇 가지를 챙겨 한적한 단풍나무 아래 놀이터를 잡습니다.   

 

무심히 보면 평범한 물가 공원이지만, '황금비늘 테마거리'에는 소설가 이외수 선생님의 글과 그림이 곳곳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물길을 따라 낸 산책로에서 사람들은 걷고, 쉬고, 벤치에 앉아 마음을 나눕니다. 아직 어린 아이지만, 쿠하와 엄마도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엄마와 딸이 함께 키우는 마음 속 물고기에게 황금비늘을 하나 둘 보태고 옵니다. 
 
금속작품으로 새겨진 작가의 말 한 마디가 엄마의 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쿠하야 희망은 정말 아름다운 거란다…."

 

춘천에 이외수라는 작가가 살지 않았더라면, 그가 소설 곳곳에 춘천의 안개와 언덕과 사람들의 풍경을 담아두지 않았더라면 아마 이런 예쁜 거리는 생겨나지 않았겠지요? 작가 한 사람이 도시의 이미지와 색깔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 그런 에너지를 수십 년 동안 뿜어내고 있다는 사실이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춘천에 오면 닭갈비 골목만 찾는 분들이 많으실 줄 압니다만, 한 시간 쯤 여유를 두고 이곳 공지천 황금비늘 테마거리에서 산책하고 가시는 건 어떨까요? 어른 걸음으로 서너 발자국만 걸어도 심심하지 않게 조각작품과 앉아서 강물을 바라보기 좋은 벤치가 놓여 있습니다. 걷기 불편한 어르신들이나 금세 안아달라고 보채는 아이들과 함께 오셔도 쉴 곳이 많아 안심입니다. 

 

사진찍기에 재미를 붙인 쿠하는 엄마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포즈를 취합니다. "엄마가 쿠하를 향해 흔들리는 순간!"이라고 엄마 마음대로 글씨를 읽어주고 있는데, "엄마아~ 사진!"하며, 얼른 찍어달라고 소리칩니다. 마음에 쏙 드는 한 줄 시어를 딸에게 선물하려는 모친의 깊은 뜻도 모르고 녀석은 손을 번쩍 들어 조각의 일부를 쥐고 흔들어댑니다.  

 

 

의암호를 사이에 두고 애니메이션 박물관과 어린이 회관은 월요일마다 쿠하의 텅 빈 놀이터가 돼 줍니다. 월요일에 휴관하는 애니메이션 박물관 뒤뜰은 너른 잔디밭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어서 좋고, 어린이 회관 역시 월요일에는 찾는 사람이 없어 한가합니다.

 

어린이회관에는 한 출판사에서 후원한 '꾸러기 도서관'이 있는데, 문을 닫아두지 않아 쿠하 혼자 큰 공간을 독차지 합니다. 들어가면 안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일단 열린 문을 밀고 책구경을 하고 옵니다.

 

멀리 중도가 보이는 어린이회관 뜰에서 쿠하는 경계석 앞에 피어난 들꽃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세 걸음 걷다가 엎드려 꽃들에게 새 이름을 지어주고, 엄마에게 꽃 이름을 가르쳐주느라 해 넘어가는 줄 모릅니다.
 
호수 건너 서면으로 노을이 퍼지기 시작할 무렵, 춘천 의암호 주변이 가장 아름답게 번지는 시간입니다. 쿠하는 여전히 삼보일배 행진을 계속 합니다. 토끼풀을 꺾어 시계와 반지를 만들어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애기똥풀을 꺾어 손에 노란 똥색 꽃물을 묻혀오기도 합니다.
 

월요일, 아이는 텅 빈 공원에서 너른 풀밭과 차분한 공기를 누리다 옵니다. 큰 도시를 떠나 작은 춘천에 사는 즐거움을 듬뿍 누립니다. 호수와 공원과 책과 장난감 그리고 소설을 테마로 한 조각 작품들이 아이의 친구가 되어 줍니다. 걸음마를 이곳 춘천에서 배울 수 있게 된 것을 쿠하와 엄마 모두 행복으로 압니다. 언젠가 아이가 자라서 애인과 황금비늘 테마거리를 걸으며 옛날에 엄마와 데이트 했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태그:#쿠하, #걷기, #공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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