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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문화제와 가두시위에 걸쳐, 시민들이 늘 마주쳤던 이명박 정부의 공권력 상징은 '전의경'이다. 이젠 친숙하기까지 하다. 닭장차를 배경으로 맨 앞에서 시민들과 대치하며 방패를 내려세운 그들 말이다.

 

참여시민들을 분노케 했던 '방패찍기'와 '연행작전'도 모두 그들의 손을 거쳐 이루어진다. 지난 28일에서 이뤄진 '청계광장 봉쇄'도 그들을 통해 이루어졌다. 아니, 모든 시위가 다 마찬가지다. 폭력 및 과잉진압도 봉쇄도 늘 그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많은 시민들이 그들과 격렬한 몸싸움을 겪거나 정부나 경찰에 대한 화를 이기지 못해 그들에게 험한 말을 퍼붓곤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당장 눈에 보이는 공권력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본질을 잊은 것은 아니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병역의무에 의해 시키는 대로 행동할 뿐인 병역 의무자들이다. 그들 역시 평범한 우리의 아들들이며 친구이자 동생, 그리고 오빠와 형이다.

 

전의경은 '이명박 정부'가 아니다

 

 

시민들은 '이명박 정부'에 분노해서 거리로 나왔다. 그래서 전의경과 맞서게 됐지만, 전의경은 '이명박 정부'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들 역시 '함께 살아야 할 우리의 이웃'이다. 그들 역시 광우병 위험에서 보호받아야 할 시민이며, 이명박 정부가 가차없는 공공부문 사유화를 추진할 경우, 같은 피해자로 전락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진보신당 생중계'를 통해서 봤던 30일 새벽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어떤 50대 남성이 전경들에게 다가가 "아들아 힘들지?"라고 이야기했던 것이 생각난다. 참 인상적이었다. 그 남성은, 군대 간 친아들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과 목소리로 전경에게 말을 건넨 것이다. 그게 시민들의 마음일 것이다.

 

그 전경도 은근하게 마음을 전해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집회 현장에서의 전경은 늘 무표정한 얼굴로 냉정을 유지할 것을 요구받을 것이다.

 

하지만, "아들아 힘들지?"의 따뜻하고도 무서운 힘 때문이었을까? 눈빛이 살짝 흔들리면서 눈가에 약간의 눈물이 글썽거리다가 말았던 장면을 보았다. 그렇다. 최소한의 상식이 있고 인간의 마음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 우리의 시위를 그저 진압해야 할 것으로만 인식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전의경도 인간의 집단이자 인간의 사회인 탓에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시위 현장을) 방패로 제대로 찍어줄 것이며, 카메라가 안 잡히는 사이에 다 패 주겠다"는 각오를 자신의 미니홈피에 올렸던 의경도 있다. 하지만, 그 의경의 반응을 그저 그 개인의 문제로만 받아들여선 안될 이유도 드러났다. "며칠째 시위대와 싸우고 매일 새벽 4시가 넘어서 들어온다"는 것이 그 이유다.

 

시위대도, 전의경도 모두 철인이 아니다. 밤새 이어지는 출동과 격투에 심신이 피곤해지면 당연히 감정적인 분노가 앞설 것이며, 그 감정적인 분노를 좌우하는 것은 시위대를 향한 적개심일 것이다. 나로서는 전의경의 감정이 그런 식으로 움직일 가능성을 걱정하는 편이다.

 

전의경에게 '종이학'을 선물합시다

 

 

많은 시위대가 동의하는 것이 있다면 "저 아이들(전의경)이 무슨 죄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 마음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아니, 그 마음을 넘어서 "너희들도 우리와 함께 살아야 할 같은 대한민국 시민"이라는 이야기를, 어쨌든 분명하게 전해주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에서, 전의경을 향해 '아들'이라고 호칭하면서 걱정한 50대 남성의 이야기가 의미심장했다. 시위의 방법에는 '마음을 전하는 행위'도 포함될 것이다. 아니, 그 '마음을 전하는 행위'가 가장 훌륭한 시위 방법이 아닐까? 그래서 생각한 것이 있다. '종이학'이다.

 

현역 군인을 포함해 병역의무를 수행하는 이에게 '종이학'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여자친구를 생각하면서 열심히 접어 휴가나왔을 때 전달한다는 의미를 가진 것이 바로 '종이학'이다. 이제 이 '종이학'을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자.

 

주고 받는 대상을 서로 바꿔보자. 시민들이 직접 접어서 전경들의 가슴에 꽂아주거나 선물해보자. 꼭 종이학이 아니어도 좋다. 다른 종이접기도 좋고 꽃을 전해주는 것도 좋다. 어쨌든 '마음'을 전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수단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마음' 아닌가.

 

떠오르는 사극의 한 장면

 

KBS2 사극 <대왕 세종>에 이와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북벌에 강한 의지를 보인 세자 양녕대군이 아버지 몰래 군대를 이끌고 북방으로 향하던 상황에서다.

 

전쟁이 벌어지면 북방은 생지옥으로 돌변한다. 누군가의 가족이 죽을 것이며, 아이들은 고아로 전락할 것이다. 충녕대군은 이를 걱정하며 형을 직접 막아설 각오로 자신의 측근들과 함께 나섰다. 충녕대군을 흠모하는 신하 윤회도 고을의 부녀자들과 어린이들을 이끌고 나타난다.

 

그때, 8살 먹은 아이가 꽃을 들고 군인들을 향해 뛰어간다. 그러고는 창을 들고 무표정하게 서 있는 병사를 향해 다가가 꽃을 건넨다. 그 군인은 흔들리는 눈빛 속에 순간 엄청난 고민을 하다가 결국 아이의 '신호'에 응한다.

 

"너, 몇 살이니?"

"8살임메."

"……. 내게도 8살 먹은 딸이 있는데…."

 

결국 군인은 아이의 꽃을 받으며 아이를 안아올린다. 양녕대군을 보좌하던 장군은 분노한 표정으로 "무슨 짓이냐"라고 따지지만, 병사의 대답은 단호하다.

 

"조선 백성들을 향해 창을 휘두를 수는 없습니다."

 

 그 순간, 아이들은 함성과 함께 군인들을 향해 달려간다. 다른 군인들도 모두 아이들을 번쩍 안으며 웃음꽃을 피우고 인사를 나눈다. 양녕대군의 북벌 의지는 이렇게 무너졌다. 이런 것이 가장 무서운 공격이다.

 

대한민국 국민을 향해 방패를 휘두를 수는 없지 않을까

 

전의경도 사람이다. 그들도 대한민국 시민이다. 그들도 광우병 위험에 노출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들도 각종 사유화 바람 속에서 비참하게 살고 싶진 않을 것이다. 게다가, 그들 역시 걱정하고 아껴야 할 가족과 친지가 있을 것이다.

 

사극 속에서 그 군인은 왜 아이의 꽃을 받아들였을까? "8살 난 딸이 있기 때문"이다. 내게도 자식이 있기에 그 또래의 아이를 보니 내 아이가 생각나 창을 휘두른다는 것이 괴로웠던 것이다. 마찬가지다. 전의경도 그런 것을 느낄 것이다.

 

우리가 그렇듯 마음을 전하면, 전경도 "대한민국 국민을 향해 방패를 휘두를 수는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마음을 잇고 나누다 보면, 연대의식은 더욱 굳건해지며 평화는 다가온다. 종이학이든 꽃이든 뭐든 좋다. 꽃을 전해주자. 하다못해 마음을 다는 목소리와 손길이라도 전해주자. 어느 50대 남성의 그 목소리와 함께 말이다. 

 

"아들아 힘들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촛불문화제, #촛불시위, #전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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