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높게 솟아오른 타워크레인들이 왠지 더 씁쓸하게 느껴진다.
▲ 공사중인 은평뉴타운 높게 솟아오른 타워크레인들이 왠지 더 씁쓸하게 느껴진다.
ⓒ 이슬기

관련사진보기


내가 군복무 중이던 2006년 겨울로 기억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휴가를 나왔을 때 나는 따듯한 환영 인사 대신 사람들이 대부분 떠나 버려 폐허처럼 변해 버린 동네 풍경과 살림살이를 담은 여러 박스들과 마주쳐야 했다.

휴가의 대부분을 이삿짐을 나르는데 보냈던 그 때의 씁쓸한 시간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에 남아 있는 건 단순히 휴가에 대한 군바리의 집착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건 태어나 20년 넘게 살아왔던 동네가 없어지면서 유년시절의 추억도 모두 함께 사라져 버린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실향민의 아픔을 여기에 비교하면 너무 유치할까. 그때 이사해 지금 살고 있는 곳에 큰 불만 없이 잘 살고 있지만 '한양주택'이라고 불리던 우리 동네가 완전히 다른 곳이 되어 버렸다는 이야기를 주변사람들로 부터 자주 듣게 되었다.

그 모습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지만 실망감과 허탈함을 만나게 될것 같아 괜시리 겁이 나 감히 찾아가볼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른 더위의 5월 어느날 나는 용기를 내 카메라 하나를 들고 길을 나섰다.

간판은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지만 이제는 폐교된 신도초등학교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 신도초등학교 간판 간판은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지만 이제는 폐교된 신도초등학교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 이슬기

관련사진보기


공사 구간인 은평구 갈현동을 지나 박석고개를 넘어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도로를 따라 촘촘히 세워진 공사장벽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예전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그 곳에서 나는 낯설다는 표현을 사용하기가 힘들었다.

뭔가 내 기억속의 모습들과 아주 조그마한 공통분모라도 있어야 전과 비교되는 낯설다는 생각이 들 텐데 그전의 흔적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파헤쳐진 붉은 흙더미와 높다란 타워 크레인, 쉼없이 오고가는 트럭들. 가끔 길가에 버려진 가재도구와 쓰레기만이 이곳이 예전에 사람이 살던 곳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은평뉴타운 공사현장에서 막 빠져나온 트럭이 달리고 있다.
▲ 공사차량 은평뉴타운 공사현장에서 막 빠져나온 트럭이 달리고 있다.
ⓒ 이슬기

관련사진보기


그렇게 인적이 없는 인도를 5km 정도 걸었다. 나의 모교인 신도초등학교의 위치를 알리는 표지판이 나왔다. 내가 1991년 입학했을때 신도초등학교는 전체 정원이 3000명에 달하는 큰 학교였다. 하지만 그 학교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잠시 문을 닫은것이 아니라 폐교되어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새로 만들어지는 은평뉴타운에는 '진관초등학교'라는 새로운 이름의 학교가 세워진다고 한다.

이제는 흔적조차 사라진 모교의 모습을 머리속에서 그려보려 애쓰면서 다시 걷다가 아직 철거되지 않은 컨테이너 박스에 붙어있는 문서들을 보았다. 흉물스러운 컨테이너와 창문에 달라 붙어 있는 낡은 문서들마저 과거의 지난 흔적이라 생각하니 반갑게 느껴졌다. 사실 은평뉴타운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2005년부터 우리 동네에는 크고 작은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주민들과 잦은 갈등을 겪었던 일들도 이제는 먼 과거의 일처럼 되어버렸다.
▲ 낡은 공고문 주민들과 잦은 갈등을 겪었던 일들도 이제는 먼 과거의 일처럼 되어버렸다.
ⓒ 이슬기

관련사진보기


개발예정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아름다운 우리 마을을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솔직히 말하면 모든 갈등은 '돈'에서 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쫓아내려는 자도 지키려는 자도 모두 돈의 문제에서는 침묵했다. 높은 분양가, 원주민에 대한 보상, 토지수용거부, 투쟁등의 이야기들이 2년 가까이 동네를 시끄럽게 떠돌았고 정부와 토지 소유자인 원주민간의 힘겨루기 싸움에 세입자들은 끼어들 여지조차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결국 모두가 만족하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반대하지 않는 수준에서 합의가 이루어졌고 우리 가족과 이웃들은 같은 은평구의 증산동, 수색동, 응암동, 불광동부터 아주 동떨어진 서울 변두리까지 뿔뿔히 흩어졌다.

그들은 모두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과거의 집'에서 '새로운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원주민중의 상당수가 새로 만들어진 '은평뉴타운' 주택의 높은 분양가로 인해 원래 자신의 동네로 돌아오지 못한다.

서울시가 강남·북 균형 발전을 목표로 화려하게 출발했던 뉴타운계획은 평범하게 살아가던 은평 뉴타운 원주민들의 '욕망'을 자극한 대가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다. 각종 대책위원회가 난립하고 정부는 물론이고 주민들 간에도 편을 나눠서 싸움이 일어난 끝에 뿔뿔히 흩어진 그들은 이제 지리적으로도 멀어졌지만 정서적으로도 서로간에 돌아올 수 없는 갈등의 골을 만들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새것'을 좋아한다. 그것은 과거 어렵던 경제환경 속에서 살아오면서 우리도 모르게 몸에 새겨진 본능일 수도 있고 '강부자'라 불리는 사회 기득권층이 개발의 이익을 독점하는 모습을 보며 생겨난 잘못된 학습효과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은 '개발'과 '투기'라는 현상을 비난하면서도 그것에 동참하고 싶은 환상을 꿈꾼다. 하지만 그 환상은 오래가지 않아 갈곳없는 현실과 마주치게 된 후 허무하게 깨지게 된다.

분명히 은평뉴타운이라는 개발사업의 경제적 혜택을 입은 원주민들도 상당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업 추진 과정에서 뉴타운사업 지구지정의 효과, 개발이익의 환수, 세입자 대책 등에 대한 기본적인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채 추진된 뉴타운 개발은 이제 비죽비죽 올라가기 시작하는 아파트 사이에 세입자를 비롯한 많은 소외된 우리의 '이웃'들의 상처를 남겼다.

얼마 전에 치른 18대 총선에서는 근거없는 '뉴타운' 공약을 남발한 많은 의원들이 주민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 당선되었다. 그 의원들은 그들의 지역구 주민들에게 은평 뉴타운과 같은 '장밋빛 환상'을 팔아 당선된 셈이다.

이제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아주 오랜만에 찾은 나의 살던 고향에서 나는 같은 비극이 다른 곳에서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정부와 정치인들은 주민들의 소박한 기대를 이용하기 보다 진정으로 원주민들에게 '개선된 거주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진정성 있는 정책을 내놓기를 기대해 본다.

반으로 나누어진 보도블럭이 기존의 우리 동네와 '은평 뉴타운'을 반으로 갈라 보여주고 있었다.
▲ 나누어진 보도블럭 반으로 나누어진 보도블럭이 기존의 우리 동네와 '은평 뉴타운'을 반으로 갈라 보여주고 있었다.
ⓒ 이슬기

관련사진보기


'
작지만 살기좋은 아담한 곳이었다.
▲ '은평뉴타운'이전의 우리동네 '한양주택'의 겨울풍경 작지만 살기좋은 아담한 곳이었다.
ⓒ 이슬기

관련사진보기



태그:#은평뉴타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