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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언이우사(左言而右事). 참 좋은 말이다. '왼쪽에 있는 사관은 군주의 말을 기록하고 오른쪽에 있는 사관은 군주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한다'는 말이다. 당태종 시대 장온고가 한 말이다. 그런데 1400여 년이 흐른 오늘, 김학준 <동아일보> 회장이 말했다. 그것도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회의실에서 열린 공개행사에서.

 

29일 오후 2시. 행자부 산하 국가기록원이 주관한 '6·3 그날의 기억과 기록'이라는 세미나에 발제자로 나선 김학준 회장은 '조선왕조실록'을 남긴 우리의 조상들은 훌륭한 선조들이었다고 말하면서 '좌언이우사'를 거론했다.

 

왕조시대. 좌우에 앉은 사관은 임금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놓치지 않고 기록했고, 임금이 누구에게 시선을 주고 무슨 몸짓으로 말하지까지를 기록했다. 이렇게 작성된 사초를 바탕으로 실록이 편찬되었다.

 

실례로 성종이 임사홍을 감싸고돌자 대사헌 이칙과 대사간 안호가 말하기를 "사관의 귀와 눈은 부월(鈇鉞)보다 엄하여 만세에 전해져서 없어지지 아니하는데 전하께서는 어찌하여 홀로 두려워하지 아니하십니까?" 분위기가 이러하니 절대 권력을 가진 군주도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했고 신하들도 기록 앞에 엄숙해야 했다.

 

오래된 것처럼 보이게 조작된 수유리 묘소의 비석을 얘기하면서 "날조된 기록은 당사자는 물론 선조에게도 누를 끼친다"고 말한 김 회장은 "기록은 권력"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왜곡된 기록은 진실 앞에 무너지고 진실된 기록은 권력을 획득한다는 뜻이다.

 

진실을 기록하는 것이 언론의 사명이다

 

사관은 오늘날의 언론이다. <동아일보> 바로 정문 앞에서 연이어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치안당국에서는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학생들의 배후가 의심스럽다'고 말한다. 4·19 때도, 그랬고 6·3 때도 그랬으며, 5·18 때도 그랬다. 정부의 상투적인 수법이다. 아니었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았는가.

 

언론의 첫째 사명은 진실을 기록하는 것이다. 진정 언론이라면 당국에서 흘리는 '설'을 그대로 받아쓰지 말고 발로 뛰어라. 취재 인력 어디에 쓸 건가? 민심은 천심이라고 했다. 진실을 외면하고 정부 당국의 '설' 받아쓰기에 급급한 신문은 스스로 언론이기를 포기한 신문이다. '설'을 퍼트리는 신문은 비겁한 언론이다. 코앞에서 생산되는 특종을 놓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실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 언론의 본분이다.

 

김 회장이 인용한 장온고는 이렇게 말했다. 위군실난(爲君實難). 군주가 되기란 참으로 어렵다는 뜻이다. 천사백년 전 왕조시대에도 그러할 진대 하물며 민주주의 시대 대통령은 더 어렵다. 4·19와 6·3 때 그랬던 것처럼 장온고와 같은 진설(眞設)을 <동아일보>가 펼쳐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다고들 한다. 연목구어라는 오명으로 살아남을 것인가 <동아>는 기사로 답해야 할 것이다.


태그:#언론, #좌언이우사, #장온고, #사관, #위군실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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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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