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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산칠봉습지모습과 생물들 시민들에 의해 보존된 습지는 이제 시민들의 생태학습장 역할도 하고 있다.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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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가꾸기 전 습지 모습 (아래) 근래 습지 모습
 (위) 가꾸기 전 습지 모습 (아래) 근래 습지 모습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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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아! 우리 습지 보러 갈까?"

"습지가 뭔데?"
"야, 넌 그것도 모르냐. 옛말에 아빠랑 거머리랑 올챙이 본데지. 그치잉."
"맞아. 그때 너희들 징그럽다고 도망갔잖아. 오늘 거기 가보자. 올챙이랑 있나 보게."

집에 있으면 책이나 읽자고 할 텐데 습지(완산칠봉습지)에 가자고 하니 아이들이 '야호~' 하며 함성을 지른다.

전주시민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완산칠봉은 도심 한 가운데 있는 산이다. 아파트라는 문명의 숲에 둘려 쌓여 있는 완산칠봉은 일곱 개의 봉오리를 가슴에 품었다 해서 부쳐진 이름이다.

해발 186미터의 낮은 산이지만 일곱 개의 봉오리가 하나의 능선으로 오르락내리락 하여 일봉에서 칠봉까지 걷다보면 등줄기에 땀이 꽉 차오른다.

부들에 붙어 있는 잠자리 허물들. 꼭 살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부들에 붙어 있는 잠자리 허물들. 꼭 살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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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완산칠봉 산자락엔 500여 평 남짓한 습지가 보존되어 있다. 주택가와 인접해 있는 습지 옆으로 등산로가 나있어 조금의 관심만 있는 사람이라면 습지의 생태를 관찰할 수가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곳에 습지가 있는 줄을 잘 모른다.

근 2년여 만에 아이들과 습지에 가자 습지의 모습은 깔끔하게 변모해 있었다. 예전엔 잡풀이 무성한 웅덩이에 거머리 등이 있었는데 거머리 모습은 보이지 않고 올챙이와 소금쟁이 몇 마리가 한가롭게 노닐고 있다.

사람들도 예전보다 많이 찾아왔다. 주로 젊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습지 주변을 날아다니는 나비나 웅덩이에서 꼬물대는 올챙이를 관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예전엔 안 보이던 모습이다. 습지가 시민들의 휴식처이면서 생태계 관찰 장소로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습지를 시민들의 새로운 공간으로 만드는데 애쓴 분은 '완산칠봉을 사랑하는 모임'을 이끌면서 습지보존운동에 열정을 다하는 김정철(65) 대표다.

김 대표는 낙엽과 잡풀로 무성한 웅덩이에 여러 수생식물과 수련을 심어놓았다. 또 습지를 찾는 시민들과 아이들이 습지의 동식물을 관찰할 수 있도록 다리길도 만들었다. 그리고 나머진 본래 그대로 놔두었다. 습지에 인위적인 손길을 자주 주다 보면 습지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습지에 도착하자마자 웅덩이로 달려간 아이들은 이내 소리를 지른다. 뭔가 이상한 게 있다며 부른다.

"여기 이상한 게 있어. 애벌레 허물인가 봐."
"정말! 야 신기하다. 아빠 이게 뭐야?"
"글쎄~ 잠자리 허물 같은데…."

부들 위를 잠자리들이 날아다닌다.
 부들 위를 잠자리들이 날아다닌다.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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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산에 갔다 오는 듯한 아저씨가 잠자리 허물이라고 말하며 몇 가지 사실을 알려준다. 잠자리가 허물에서 나오는 시간은 새들이 활동하기 전이라 한다. 새들이 활동할 때 허물을 벗고 나오면 곧바로 날 수 없는 잠자리는 새들의 먹이가 되기 때문이란다.

부들에 붙어 있는 잠자리 허물에 빠져있던 아이들이 이번엔 물속에서 꼬물대는 올챙이들에게 눈길을 돌린다. 그런데 올챙이의 모습이 좀 달라보였다. 모두 하늘을 향해 죽은 것처럼 떠있는 것이다.

"아빠, 올챙이들이 왜 그래. 죽었나 봐."
"그러네. 근데 움직이는데."
"아빤, 이거 죽은 거 아니야. 지금 숨쉬고 있는 거잖아."

습지 한쪽으로 사람들이 왕래하며 습지를 관찰할 수 있게 나무로 길을 만들어놓았다
 습지 한쪽으로 사람들이 왕래하며 습지를 관찰할 수 있게 나무로 길을 만들어놓았다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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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챙이가 살아있는 것을 확인한 아이들은 올챙이를 한 번 잡아보겠다고 작은 손을 펼치지만 쉽게 잡히지 않는지 투덜댄다. 아이들 가까이에선 언제 날아왔는지 산새 두 마리가 한가롭게 뒹굴며 노닐고 있다. 누워 날개를 쭈욱 펼치기도 하고 한 바퀴 구르기도 한다. 사람들의 시선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녀석들을 보고 있으려니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 그리 특별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자연의 생물들은 스스럼없이 인간과 공존하게 된다.

입을 물 위에 대고 죽은 것처럼 떠있는 올챙이들.
 입을 물 위에 대고 죽은 것처럼 떠있는 올챙이들.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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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챙이
 올챙이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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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훼손시키지만 않으면 자연은 자연스러운, 그러면서 아름다운 모습으로 인간에게 다가온다. 이 완산칠봉습지도 그 한 예이다.

본래 사유지였던 이 습지는 한 사람의 각별한 마음과 그에 호응한 380여 명의 시민들이 있기에 보존될 수 있었다. 이들은 습지를 자연 상태로 보존하기 위해 모금을 시작했고, 그 모금한 돈으로 습지를 구입하여 영구보존의 길을 열어놓았다.

일종의 자연신탁운동(내셔널트러스트)을 펼쳐 시민들의 품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개발만을 능사로 여기는 시대에 완산칠봉습지 공유화 운동으로 인한 보존은 자연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인간과 자연이 공존해야 진짜 행복이라는 김정철씨의 말도 새삼 의미있게 다가온다.

습지 한쪽에 산에서 날아온 새들이 한가롭게 있는 모습.
 습지 한쪽에 산에서 날아온 새들이 한가롭게 있는 모습.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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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감을 때까지 습지 보존 운동 해야죠"
[인터뷰] '완산칠봉을 사랑하는 모임' 대표 김정철씨

습지 보존과 사랑에 남은 인생을 살겠다는 김정철 씨
 습지 보존과 사랑에 남은 인생을 살겠다는 김정철 씨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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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철 씨는 매일 완산칠봉습지에 들른다. 하루라도 습지에 들르지 않으면 허전하다며 이젠 습지와 함께 살아가는 인생이 됐다면서 습지에 대한 애정과 자랑을 늘어놓는다. 그와 습지를 구경하며 나눈 이야길 정리해본다.

- 습지와 어떻게 인연을 맺었는지요.
"이게 사유지였어요. 등산을 하면서 습지를 발견했는데 개발한다는 소릴 들었지요. 이걸 어떻게 해야겠는데 돈이 없잖아요. 그래서 완산칠봉을 사랑하는 우리의 모임을 만들고 습지매입을 위한 운동을 했어요. 일종의 자연신탁운동을 한 거죠."

- 많은 사람들이 호응을 해줬나요?
"처음에 힘들었지요. 그런데 습지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다 보니 하나 둘 도움을 주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회원이 380명 쯤 되지요. 지금은 매달 11명이 만나 습지보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 여긴 매일 오시나요?
"그럼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와요. 오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아침마다 새들이 이곳으로 물을 마시러 와요. 그놈들이 얼마나 이쁜지 몰라요. 처음엔 사람이 보이면 날아가곤 했는데 지금은 신경도 안 써요. 아침마다 이곳에 오면 오늘은 어떤 녀석들이 날아왔나 찾게 되지요."

-언제까지 습지보존 운동을 할 생각인지요?
"허허허, 눈감을 때까지 해야지요. 이젠 이거 없으면 재미가 없어요. "

- 가족들이 싫어하지는 않았는지요?
"처음엔 왜 그런 일 하느냐 하는 소릴 하기도 했는데 요즘은 자식들도 많이 좋아해요. 가끔 여기에 손주들을 데리고 오기도 해요. 내가 삼천동에 사는데 이 습지가 아니면 전주에 살지도 않았을 겁니다. 자식들이 있는 대전에 갔지요."

- 그런데 습지가 많이 깔끔해졌어요. 습지는 자연 그 상태로 둬야 의미도 있고 기능도 살릴 것 같은데.
"그것 때문에 고민도 많이 했어요. 대학 교수들의 자문도 많이 받고요. 그래서 웅덩이 부분만 조금 손보고 습지생태를 관찰하도록 다리를 만들었어요. 더 이상 손을 대지 않고 자연 그대로 놔둘 겁니다."

- 도심 한 가운데 이런 곳이 있다는 걸 사람들이 많이 모르는 것 같은데요.
"많이 몰라요. 습지가 어떤 기능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구요. 사실 전주 도심에 이런 습지가 있다는 것 큰 행운이에요. 그래서 많이 알리기도 하고 어린 학생들의 생태학습장으로도 활용될 수 있도록 보존해야지요."

이야기를 나눈 며칠이 지난 후, 토요일에 학생들을 데리고 들렀을 때 김정철 씨는 깔끔한 양복을 입고 습지를 둘러보고 있었다. 결혼식장에 가야 하는데 가기 전에 잠시 들렀다고 한다. 그러면서 새들이 놀러왔다며 날 데리고 새가 있는 곳으로 간다. 그의 말대로 완산칠봉습지는 사람과 인간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내셔널트러스트운동(자연신탁운동 또는 공유화운동)이란 우리 주변에서 보존할 가치가 있는 자연 유산 및 문화유산을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이나 기부를 통해 영구보전하고 관리하는 새로운 시민환경운동을 말한다.
완산칠봉습지도 이러한 운동에 의해 보전되고 유지되고 있다,



태그:#완산칠봉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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