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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게 익어 먹음직스러운 오돌개부터 영글어가는 오돌개까지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습이다.
▲ 먹음직스러운 오돌개 검게 익어 먹음직스러운 오돌개부터 영글어가는 오돌개까지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습이다.
ⓒ 김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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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제목을 이렇게 정하고 나니까 문득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이육사의 '청포도'라는 시가 생각났다. 갑자기 유치하지만 이육사 선생의 '청포도'를 '오돌개'('오디'의 충청도 사투리)로 바꿔서 패러디 해 보고픈 생각이 들었다.

오돌개

내 고장 오월은
오돌개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비단(누에고치로부터 얻은 섬유)을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오돌개를 따먹으면
두 손은 흠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청포도'를 '오돌개'로, '청포'를 '비단'으로 밖에 고치지 않았는데 촌스러운 거만 빼만 제법 그럴 듯하다. 이육사 선생님께는 죄송하지만 말이다.

'오디'의 모습은 포도의 축소판, 충청도에서 '오디'는 '오돌개'라 불러

보기만해도 입에 침이 고인다. 얼마나 신지...
▲ 중간단계 보기만해도 입에 침이 고인다. 얼마나 신지...
ⓒ 김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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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나무 열매인 오디를 자세하게 살펴보면 마치 포도송이를 축소시켜 놓은 모습으로 생겼다. 그 맛도 얼마나 달콤한지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맛을 상상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물론 오디가 다 달콤한 것은 아니다. 뽕나무로 접근해 오디를 따 먹을 양 치면 알록달록 여러 가지 색을 가진 오디가 나무에 달렸다.

그중에서도 검은 열매가 완전히 다 익은 오디이고, 빨간 열매는 다 익지 않은 중간단계로 먹어보면 눈이 저절로 감길 정도로 아주 신맛을 낸다. 그리고 시퍼런 열매는 아주 초기단계로 안 먹는 게 좋다. 나도 먹어보지 않아서 그 맛을 표현할 수 없다. 굳이 먹어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충청도에서는 '오디'를 '오돌개'라고도 부른다. 우스갯소리로 어린 시절에는 오돌개와 오골계(닭의 일종)를 어감이 비슷해 헛갈려 한 적도 있었다. 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뽕나무 열매는 '오돌개', 당연히 이것이 표준어인 줄만 알고 있었다. '오디'라는 말은 나에게는 아주 낯선 말이었다. 그런데, 주변에서 하도 '오디'라고 해서 사전을 찾아봤더니 '오디'가 표준어이고 '오돌개'가 사투리였다.

그때부터 나 또한 '오디'라고 부르고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정감은 '오돌개'가 더 나은 느낌이다. 추억을 회상하기에도 '오돌개'가 나아 보이고 말이다.

오돌개를 따먹고는 서로 혀를 내보이던 어린 시절의 추억

먹음직스런 오돌개가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많이 달려 있다. 키가 안 닿아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많이 달려있는 뽕나무의 모습 먹음직스런 오돌개가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많이 달려 있다. 키가 안 닿아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 김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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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를 볼 때면 난 항상 어린 시절의 추억에 빠져든다. 지금은 시골에 사는 아이들도 오디를 따서 먹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내 어린 시절만 해도 친구들과 함께 바가지를 들고 오디를 따러 갔던 추억이 생각난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80년대만 해도 우리 집 바로 옆에도 양잠하던 집이 있을 정도로 마을에는 농사일과 더불어 양잠을 병행하던 집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내 기억으로는 마을 주변은 물론 마을에서 조금만 나가면 뽕나무가 사방에 널려 있었다. 그래서 오디를 따먹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한 번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친구들과 함께 '오돌개'를 따러 간 적이 있었다. 각자의 손에는 바가지 또는 소쿠리를 들고 다 같이 마을 어귀에 있던 뽕나무 밭으로 갔다. 밭에 도착한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져 '오돌개'를 따기 시작했다. 아니 먹기 시작했다. 오돌개를 따서 바가지에 담는 것보다 먼저 손이 입으로 갔기 때문이다. 일단 먹고 보자는 심산이었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의 입 주변은 오돌개의 검은 물로 시커멓게 물들어 가관이었고, 입고 갔던 옷도 오돌개에 물이 들어 지저분하게 변해 있었다.

"클났네(큰일 났네)! 엄마한테 디지게 맞겠다. 옷 다 버려서…."
"오돌개 많이 따서 가지가믄 안 혼날겨."

먹을 것을 가지고 가면 혼나지 않을 거라는 아이들의 순수한 생각 아닌가요? 하지만, 나중에 들리는 얘기로는 그 친구 엄마에게 정말로 호되게 혼났다는 후문이다.

빨간 오돌개에서 검은 오돌개로 변해가고 있는 오돌개의 모습. 이 맛은 신맛일까 단맛일까?
▲ 애매모호 빨간 오돌개에서 검은 오돌개로 변해가고 있는 오돌개의 모습. 이 맛은 신맛일까 단맛일까?
ⓒ 김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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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고 갔던 바가지와 소쿠리에 한가득 오돌개가 차면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뽕나무 밭에서 실컷 따먹고도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바가지에 담겨 있던 오돌개를 하나둘씩 집어 먹으며 서로에게 혀를 내보인다.

"이거 봐라. 시커멓지?"
"난 더 시커멓지?"

자랑도 아닌데 누가 더 시커멓게 물들었는지 내기 아닌 내기를 한다. 이런 것들이 장난감 없고 먹을 것이 없었던 그 시절의 놀이이며, 먹을거리가 되었고, 지금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 되고 있다.

우연히 길을 가다가 발견한 뽕나무에서 시커멓게 익어가고 있는 오돌개를 보면서 잠시 어린 시절의 추억을 회상했지만, 인스턴트 음식에 중독 아닌 중독되어 있는 요즘 아이들에게 자연이 준 선물인 '오돌개'를 먹어보라고 권해보고 싶다.

갑자기 '오돌개'를 따먹으며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이 그리워진다.


태그:#오디, #오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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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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