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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나 어려웠던 북악산 지역 성곽 개방

 

와룡공원에서 말바위 쉼터 가는 길은 오르막길로 서북쪽 방향으로 나 있다. 그리고 길이 성곽의 북쪽으로 나 있어 종로구 쪽보다는 성북구 쪽이 잘 보인다. 가까이 서울아파트와 성북아파트가 보이고 그 뒤로 삼청각과 대원각 같은 전통 건물이 보인다. 성북동의 집들은 남쪽으로 경사진 사면에 자리 잡고 있을 뿐 아니라 나무와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주택으로는 최고의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와룡공원에서 말바위 쉼터에 이르는 길에는 성곽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성곽이 산 속에 있어 훼손이 덜 된 편이다. 성곽은 대개 자동차 길이 나면서 훼손되기 시작했는데 이곳으로 자동차 길을 낸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길을 낸다고 해도 성곽 아래로 터널을 뚫어 성곽이 보존될 수 있었다.

 

말바위 쉼터로 가다 보니 성북동 쪽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지점에 이른다. 이곳에는 나무 계단들이 설치되어 있어 비교적 편안하게 주위를 조망할 수 있다. 북쪽으로의 조망이 특히 좋다. 서울 성곽 답사 중 말바위 코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종로구 쪽에서 올라오고 홍련사 코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모두 성북구 쪽에서 올라온다. 우리같이 서울 성곽을 종주하는 사람들은 종로구와 성북구의 경계를 따라 말바위 쉼터에 이르게 된다.

 

북악산 지역 서울 성곽이 처음 개방된 곳은 홍련사 코스로 2006년 4월 1일이었다. 이때 개방된 코스가 홍련사-숙정문-촛대바위 구간으로 1.1㎞이다. 그리고 2007년 4월 5일 2단계로 말바위 쉼터 코스가 개방되었다. 이때 개방된 구간이 와룡공원-숙정문-청운대-백악마루-창의문으로 4.3㎞이다. 이 지역이 개방됨으로써 우리가 북악산 지역 서울 성곽을 완전하게 답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말바위 쉼터에서 만난 황지우의 시

 

말바위 쉼터에 이르니 현대식 건물이 지어져 있다. 일종의 사무실 겸 휴게소이다. 사무실에는 민간인 복장을 한 군인들이 입장객들을 위한 봉사에 열중이다. 봉사라는 것이 바로 출입자들이 작성한 서류를 토대로 그들의 인적사항을 컴퓨터에 입력하고 입장 표찰을 발급하는 것이다. 사무실 한쪽으로는 잠깐 쉴 수 있도록 휴게소도 만들어져 있고 화장실도 갖춰져 있다.

 

사무실 한쪽 벽에는 상공에서 서울 시내를 찍은 구글 어스의 사진이 걸려 있고 그 옆에는 황지우 시인이 쓴 '풍경 뻬레스트로이까 - 북악산 개방에 부쳐'라는 시가 한 편 걸려 있다. 이 시는 2007년 4월 5일 쓴 것으로 되어 있다. 그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뉴욕에도 도쿄에도 베이징에도 베를린,

모스끄바에도 없는 산

단 하루도 산을 못 보면 사는 것 같지가 않은,

산이 목숨이고 산이 종교인 나라에

오늘

싱싱한 산 한 채가

방금 채색한 覺皇殿처럼

사월 초순 첫 초록 재치고

솟아올랐네.

 

[…]

 

이렇게 풀어버리니 별 것도 아니었던 두려움이,

홍련사에서 숙정문 지나

창의문에 이르는 길 따라,

혼자 보기엔 너무나 아까운 아름다움이 되었으니

아무나 그 문들 활짝 열어

그대 슬하에 감추인 말바위며 촛대바위를

순 우리말로 되찾아 오네.

[…]

 

황지우 시인은 홍련사에서 말바위로 오른 다음 숙정문과 촛대바위를 지나 창의문 쪽으로 하산한 것 같다. 그리고 황지우 시인의 글이 이곳에 걸리게 된 이유는 당시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 교수와의 인연 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는 이곳 사무실에서 서류를 작성하고 목에 거는 표찰을 하나 받는다.

 

사무실을 나오면 길은 다시 북정문 쪽 서울 성곽으로 이어진다. 이곳에서부터는 성곽을 따라 100m마다 사복을 입은 군인이 길을 지키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이 예전처럼 위협적이거나 경직된 모습이 아니어서 편안한 마음으로 성곽을 살펴볼 수 있다.

 

북대문인 숙정문 이야기

 

말바위 쉼터에서 숙정문까지는 400m로 7분 정도면 도착한다. 서울 성곽 안내도에는 15분이나 걸린다고 되어있는데 경사가 좀 있기는 하지만 시간이 그렇게까지 걸리지는 않는다. 숙정문에 가까이 가니 먼저 문의 옆 모습이 보인다. 1976년에 복원한 것이어서 옛스러운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서울 성곽의 북대문으로 조선 왕조 500년을 지켜왔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숙정문은 아래에 석축을 쌓고 가운데 홍예문을 만들었으며 그 위에 1층의 누각을 지었다. 누각에 오르려면 홍예 양쪽으로 나 있는 계단을 올라야 하고 문을 통과하려면 홍예로 나가야 한다. 이곳에서 숙정문을 보니 현판이 없다. 현판은 성곽 밖에서 안으로 들어올 때 볼 수 있도록 누각의 북쪽에 걸려있기 때문이다.

 

나는 먼저 남쪽으로 종로구 지역을 바라본다. 벌써 녹음이 짙어진 나무들에 가려 조망이 좋지를 않다. 숙정문은 또한 성곽의 가장 북쪽 산등성이에 있지를 않고 동쪽의 경사면에 있어 사방으로 조망이 좋을 수가 없다. 이제는 홍예를 지나 북쪽으로 나가니 홍련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이어진다. 계단을 따라 약간 내려가 조금 멀리서 숙정문을 올려다보니 웅장한 모습이다. 역시 성곽은 올려다보아야 제 멋이 난다.

 

누각 한가운데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여진 세 글자 숙정문(肅靖門)이 뚜렷하다. 숙정문의 원래 이름은 숙청문(肅淸門)이었는데 중종 연간에 숙정문으로 바뀐 것 같다.

 

여기서 숙(肅)은 삼간다는 뜻이 강하다. 그 다음에 쓰이는 맑을 청(淸)자가  평안할 정(靖)으로 바뀐 것은 풍수지리학 상으로 음을 상징하는 북쪽 문에 숙정이 더 어울리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숙정문을 밖에서만 본 나는 이제 계단을 통해 숙정문 2층으로 오른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마루가 깔려있고 안쪽 들보에 단청이 화려하다. 이곳에서는 북쪽으로의 조망이 좋은 편이다. 서쪽으로는 아카시아 꽃 너머로 북악산 정상이 살짝 보인다. 아카시아 꽃이 하얗게 피어서인지 전체적으로 산들이 녹색 바탕에 하얀 칠을 한 모습이다. 양봉업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꽃이 아카시아인데 서울에서는 아카시아가 밀원(蜜源)이 되는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 

 

숙정문 지나 촛대바위와 곡장으로 이어지는 성곽길

 

숙정문을 지나면 이제 성곽 안쪽으로 해서 촛대바위를 향하게 된다. 이곳 역시 성곽이 잘 복원되어 있다. 세종 때와 숙종 때 쌓은 것이 많고 그 윗부분을 70년대 복원한 양상이다. 그런데 이들 성곽이 나무들과 잘 조화를 이뤄 산책 겸 등산로로는 그만이다. 성곽 안팎으로 소나무들이 많아 아주 운치도 있다. 숙정문에서 촛대바위까지는 460m로 역시 7~8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촛대바위는 경복궁의 정북에 위치하고 있는 바위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바위 위에 삼각점 같은 것이 만들어져 있다. '위험하오니 넘어가지 마세요'라는 표지판이 있어 올라갈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촛대같이 안 생겼는데 하면서 이름에 문제를 제기한다. 글쎄 내가 보아도 촛대는 아니다. 좀 더 멀리서 보면 촛대로 보이려나. 짓궂은 사람은 '좆대'라는 표현이 민망해서 촛대로 바꿨다고 말하기도 한다.

 

촛대바위에서 내려다보니 경복궁과 세종로로 이어지는 서울의 남북 축이 한 눈에 들어온다. 경복궁 앞으로 광화문을 정비하기 위한 하얀 차양막이 쳐져 있어서인지 경복궁이 조금은 답답해 보인다. 그리고 경복궁 앞으로 난 세종로가 왼쪽 방향으로 약간 치우쳐 이어진다. 원래 길이 궁궐과 90도 각도로 똑바로 이어졌을 텐데 도시화 과정에서 그렇게 변한 모양이다.

 

이곳에서는 또 오른쪽으로 북악산이 아주 가까이 보인다. 북악산 방향으로 발길을 옮기면 다시 성곽 안쪽으로 해서 서울 성곽의 최북단인 곡장(曲墻)에 이르게 된다. 곡장이란 굽은 담장이라는 말로 이곳에서 성곽이 심하게 각이 져있기 때문에 그런 표현을 쓴 것이다. 곡장을 가면서 보니 성곽 바깥으로 두 겹의 철조망이 보인다. 이거 완전 DMZ이다. 1․21사태 이후 청와대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설치된 것 같은데 이제 철거될 때가 된 것 같다.

 

곡장에 이르니 사방으로의 전망이 너무나 좋다. 특히 북악산과 인왕산으로 이어지는 성곽의 파노라마가 마치 만리장성처럼 보인다. 그리고 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북한산 능선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완만하게 올라가고 있다. 언젠가는 저 길을 따라 북한산 12석문 종주를 할 계획이다. 이곳에서 보니 또 북한산 남쪽으로 펼쳐진 평창동이 주택지로 참 좋은 입지임을 알 수 있겠다. 그러므로 서울 성곽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성북동과 평창동은 풍수지리학 상으로 집과 자연이 어우러진 최고의 양택지지(陽宅之地)임에 틀림없다.

 


태그:#말바위 쉼터, #숙정문, #홍련사, #촛대바위, #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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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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