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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피자 가게 맏아들이다. 내가 피자가게 맏아들이라는 사실은 학창 시절 내내 나의 이미지를 규정했다.

친구들은 나를 볼 때마다 피자를 먼저 떠올렸다. 학교에서의 나의 존재는 곧 피자를 의미했고, 피자는 곧 나였다. 가끔 내 자신이 피자인지 아닌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친구들은 나를 볼 때마다 "피자 한 판만 구워다 달라"며 장난을 치곤 했다. 실제로 나에게 피자 한 판을 얻어먹기 위해 접근하는 아이들도 종종 있었다. 그 때마다 나는, 내가 좋은 건지 피자가 좋은 건지에 대한 확답을 친구들에게 요구하곤 했다.

가끔은 나의 이런 이미지에 환멸이 들곤 했다. 나의 이미지가 내 자신이 아닌 부모님의 직업에서 나온 사실이 맘에 들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나는 내 부모님의 직업을 잠시나마 부끄러워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내가 헤아릴 수 있는 그릇의 크기는 고작 이 정도였다.

대학에 입학하고 '성년'이라는 꼬리표를 붙인 지도 이제 2년째. 살인적인 등록금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맛본 '손님 모시기'의 쓰라림은, 그동안 부모님이 일상적으로 짊어지고 계셨던 인생의 무게를 짐작하게 만들어줬다. 그나마 내가 이를 깨닫게 된 것도 지극히 최근의 일이었다. 정말 부끄럽게도, 다른 또래에 비해 철이 너무나도 늦게 든 것이다.  

약간의 풍요, 그리고 잃어버린 추억

밤 11시. 이제서야 우리 가게는 문닫을 준비를 한다.
 밤 11시. 이제서야 우리 가게는 문닫을 준비를 한다.
ⓒ 박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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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다… 힘들다….'

얼마 전 어머니가 계산서 뒤쪽에 하신 낙서다. 어머니는 요즘 들어 부쩍 일이 힘에 부치신 듯 보였다. 부모님은 더 이상 나에게 강인하고 굳건한 모습만을 보여주시지 않는다. 그 메시지는 명확하고도 강렬했다.

"너희는 우리처럼 살지 말거라…."

우리 가게는 오전 9시에 문을 열어 밤 11시에 문을 닫는다. 주말이 되면 문을 여는 시간은 한 시간 더 앞당겨진다. 가게 근처 군부대 면회객들의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서다. 아무리 못해도 하루에 14시간 가량 일하는 셈이다. 일을 시작한 지 열 시간이 넘어가면, 걸을 때마다 발바닥이 욱신거리고 등짝이 결려온다.

한가한 시간대가 돼도 맘 편하게 쉴 수가 없다. 앉아서 잠깐 쉬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언제 주문전화가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손님들의 주문전화는 업소의 한가함과 상관없이 일하는 사람들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이렇게 일을 다 끝내고 집에 오면 시간은 어느덧 밤11시 30분을 지나가고 있다.

우리 가족은 자정이 지나서야 때늦은 식사를 한다. 쌀의 종자가 무엇이고 어떤 반찬이든 간에 오밤 중에 먹는 식사가 몸에 좋을 리 만무하다. 저녁보다는 사실상 '밤참'에 더 가까운 식사지만, 이 때가 아니면 가족들끼리 한 상에 모여 밥을 먹을 수가 없다. 올해는 동생이 재수를 하면서 더욱 모이기 힘들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외식은 그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가게는 결코 문을 닫지 않는다. 365일 쉬는 날은 없다. 8년 동안 장사를 하면서 부모님이 마음 편하게 쉬신 날은 열흘이 채 되지 않는다. 우리 부모님은 이렇게 돈을 벌었다. 가난이라는 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그런 이유로 지난 8년간 우리가 남긴 가족 사진은 단 한 장도 없다. 그렇게 살아온 지 이제 8년이다. 우리가 얻은 것은 약간의 풍요지만, 잃은 것은 가족의 추억이다.

더 치열해지는 자영업자들의 생존경쟁

아주 약간이라도 여유를 찾고 싶은 우리 가족의 바람과는 다르게 자영업자들 간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원인은 간단하다. 자영업자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영업하는 동네의 경우 열 개의 가까운 피자가게가 영업을 하고 있다.

치킨을 주로 팔면서 피자를 부수적으로 판매하는 점포를 포함하면 점포 숫자는 배로 늘어난다.

이는 비단 피자가게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의 자영업 시장은 전체적인 공급 과잉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2006년도 전체 취업자 대비 자영업자 비중.
 2006년도 전체 취업자 대비 자영업자 비중.
ⓒ 박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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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경총의 조사에 따르면 전체 취업자수 대비 자영업자의 비율은 26.5%에 달한다. 점포 수로는 약 65만여 개의 점포가 전국에 분포하고 있다. 이는 OECD의 평균 자영업자 비율인 14.4%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평균적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증가할수록 자영업자의 비율은 그만큼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한국의 경제성장률과 국민소득 증가 추이로 보았을 때 취업자수 대비 자영업자의 비율은 그에 맞는 속도로 감소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감소폭이 미미하다.

1인당 국민소득 상위 25개국의 경우 국민소득이 1만 5000달러에서 2만 달러에 도달했을 시점의 평균 자영업자 비율은 16.5%다. 그러나 한국은 명목상의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섰음에도 여전히 자영업자의 비율은 25%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있다. 여기에 고용없는 성장과 실업자의 급증, 이를 흡수할 수 없는 일자리 부족은 실업인구의 창업 증가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이렇듯 공급이 과잉인 상태에서 영세 자영업자들이 구사할 수 있는 생존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출혈 경쟁과 박리다매(薄利多賣) 전략으로 근근히 버텨내거나, 인건비 지출을 최대한 줄이는 경우다. 후자의 경우 고용 인원을 줄이고 창업주 자신의 노동강도와 시간을 최대한 높임으로써 인건비를 줄인다. 이런 이유로 제 날짜, 제 시간에 쉴 수 있는 영세 자영업자들은 흔치 않다.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한 당시 참여정부는 자영업자에 대한 정부지원 대출 제한과 창업자 현황을 실시간으로 공개함으로써 실업자의 창업을 억제하려 했다. 하지만 상황을 호전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자영업자들의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점포가 문을 닫을 확률 역시 높아지기 마련이다. 2005년 중소기업청의 소매업체 조사에 따르면 약 65만개의 점포 중 16만 개가 한계점포로 분류돼 있다. 이 중 약 14%는 폐업을 유도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문제는 폐업을 유도 받아야 하는 상황의 창업주들에게 주어지는 사회적 안전망이 전무하다는 데 있다. 올해부터 자영업자에 대한 자발적 고용보험 가입이 허용되지만 이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고용보험에 가입할 능력이 없는 영세 자영업자들은 고용보험의 혜택을 여전히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실업급여의 경우도 현재 적용 대상을 사업장에서 근무한 노동자에 한하기 때문에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따라서 폐업유도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 대해,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와 같은 제한적 실업급여를 지급하고 여력이 있는 창업주들에게 전직 자금 지원이나 상담과 같은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자영업자에게 사회복지는 없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아등바등하고 살아야 할까? 너희 다 대학 보내고 나면 우리는 환갑일텐데, 노후준비는 하나도 안돼 있고… 아들들이 우리 데리고 살아줄래?"

가끔씩 어머니는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꺼내시곤 한다. 이럴 때마다 나는 즉답을 피한다. 대답을 피해도 이미 들은 말을 피할 수는 없다. 내 미래에 대한 막막함 위에 부모님의 미래가 얹혀진다. 또 한숨이 나온다.

등록금은 살인적으로 오르는데 취업은 점점 힘들어진다. 숨막히도록 치열한 취업 전쟁 속에서 나의 경쟁상대들은 잘 훈련된 군인처럼 보인다. 어떤 이는 소총을 쥐고, 어떤 이는 탱크를, 어떤 이는 전투기를 타면서 이력서를 날려댄다.

난 그 속에서 한 사람의 양민에 불과해 보인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학살'의 희생자가 되지 않으면 다행이다. 물가는 오르고, 아르바이트 시급은 언제나 그대로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창업주들과의 경쟁 속에서 부모님의 삶은 언제나 황폐하다.

"언제까지 아등바등하면서 살아야 할까?"

앞으로 내가 살아야 할 '아등바등'과 부모님의 '아등바등'이 끊임없이 오버랩된다. 누워있는 방 한가운데 나의 심장이 고동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오늘도 잠자기는 틀렸다. '미칠듯한 심장의 고동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나는 오늘도 새벽의 찬 공기를 마시며 노래를 부른다.

Get up…Come on…Why you scared?
You'll  never change what’s been and gone
Cause all of the stars, have faded away
Just try not to worry
You’ll see them some day
Take what you need
And be on your way
And stop crying your heart out.

일어나…어서 해봐…뭐가 두렵니?
지나간 일들은 절대 바꿀 수 없어.

모든 별들이 사라지고 있어.
걱정하지마. 언젠간 그 별들을 다시 볼 수 있을 거야.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아봐
그리고 네 방식대로 해봐
심장의 미친듯한 고동은 잠재우고… 

Oasis의 Stop crying your heart out


태그:#자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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