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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화왕산 관룡사 입구에는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절터가 있다. 바로 고려 공민왕 때 요승의 대명사로 불리며 알려진 신돈과 관련된 사찰터이다.

 

관룡사로 올라가는 바로 입구 오른편 일대가 다 절터인데 석탑부재를 비롯하여 초석과 건물터로 추정되는 곳들이 곳곳에 남아 있어 정밀 지표조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신돈에 대해 얼마나 아시나요?

 

고려사에는 신돈을 요승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과연 그 평가는 어떠할까? 요즘은 당시 부패한 고려 사회를 바꾸고 개혁 하려던 개혁가로서 새롭게 해석되고 있는 추세이다.

 

신돈은 드라마에서 알려진 대로 법명은 편조(遍照)이고 그의 아버지는 알려진 바 없으며 그의 어머니는 계성현(지금의 창녕) 옥천사의 노비였다고 한다. 신돈에 관한 내용은 고려사 <열전> 편에 “어미가 천하므로 그 무리에 참여하지 못하고 늘 산방(山房)에 머물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돈은 후에 인사권 등 권력을 휘두르며 고려사회 개혁 작업에 나서게 되며 전민변정도감을 두어 부당하게 빼앗긴 토지를 양민에게 돌려주고, 강압에 의해 노비가 된 백성들을 원래 신분으로 회복시켜 준다. 그러나 신돈의 개혁은 공민왕 18년(1370) 왕이 친정에 나섬으로써 실패로 끝난다.

 

옥천사지는 신돈 처형당한 후 바로 폐사된 곳

 

신돈이 자랐다는 전하는 옥천사지는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신돈이 처형되자 마자 이 절도 함께 폐사 되었다. 절은 폐사 되었으나 그 당시 절의 규모가 매우 큰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넓은 터에는 현재도 여러 석재들이 발견되고 있다.

 

관룡사와 연계하여 이제 베일에 잊혀진 사찰 옥천사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로 하지 않을까? 주변에는 당집이 나무 아래 둘러싸여 있는데 그 묘한 분위기는 주변 산세를 감싸며 아늑하기 그지 없다.

 

관룡사는 알아도 옥천사지는 모르는 분들은 지금이라도 관룡사에 들를 일이 있으면 옥천사지를 한번 찾아보자. 현존하는 사찰과 폐허된 사찰터에서 무엇인가 또 다른 느낌을 받을 것이다. 역사의 흐름과 흥망성쇠를 알 수 있는 곳 그곳에서도 오늘 많은 것을 배운다. 


태그:#옥천사지, #신돈, #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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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문화유적을 찾아 답사를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구석진 곳에 우리문화를 찾아서 알리고 문화관련 행사를 좀 더 대중에게 보급하고자 하며 앞으로 우리문화재의 소중함을 일깨워 나아가려고 합니다. 괌심분야는 역사유적, 석조조형물과 민속,고건축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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