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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

       고은

 

나 산이고 싶다

강이고 싶다

내 조상

내 자손의 맨몸이고 싶다

그냥 놔두라 쓰라린 백년소원 이것이다.

 

대운하 반대 생명의 강을 모시기 위한 시인 203인의 특별공동 시집 발간을 기념하는 출판기념회가 인사동 '시인'에서 24일 오후 5시에 열렸다.

 

그 자리에는 생명의 강 모시기 100일 순례를 마치고 돌아온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총괄 팀장인 이원규 시인과 박남준 시인을 비롯하여 소리꾼 임진택씨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생명의 강을 모시기 위한 국토 100일 순례를 마치고 돌아온 이원규 시인과 박남준 시인의 눈가에는 비장한 눈물이 서렸다. 오후 2시 보신각 앞에서 펼쳐진 '대운하 반대' 자리에서  한 시인이 "이렇게 힘을 다하고도 대운하 건설을  막을 수 없다면 순교의 길을 택할 수 밖에 없다"는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임진택씨는 "왜 우리 문화예술인과 종교인들만 순교를 해야 하는가? 잘못된 정부를 아웃시키면 되지 않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생명의 강을 모시며 국토 순례를 한 각 종교 단체 사람들과 문인들은 정부의 엉뚱한 발상에 오히려 감사한다. 이런 기회를 통해 우리 국토와 강이 얼마나 소중한지 뼛속 깊이 깨우칠 수 있었기에 생명을 걸고라도  대운하 건설을 막아낼 수밖에 없음을 단언해 장내가 숙연해지기도 했다.

 

강변 천막의 발꼬랑내 부처님

                    

                                      - 이원규

 

서울에서 부산 을숙도까지

생명의 강을 모시며 봄 마중 나선 순례자들

영하 15도의 북풍한설쯤이야

차라리 살가운 회초리였다.

강변 천막 속의 서릿발 경전이었다.

 

한강 남한강 문경새재 낙동강

50일간 1,500리 길을 걸어

시꺼먼 폐수의 지친 몸으로

마침내 춘래불사춘의 봄을 맞이했으니

영산강 새만금 금강을 지나 다시

남한강 한강 봄의 아픈 어깨춤으로 북상하는

풍찬노숙 참회 기도의 머나먼 길

…(중략)…

 

스님목사 신부 교무 바로 그 옆에

천막이 찢어질 듯 코를 고는 예수님

꼬랑내 발꼬랑내 맨발의 부처님

새벽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후략)…

 

 

운하 이후

 

     - 박남준

 

나도 흐르는 강물이고 싶다

반짝이는 모래사장과 때로 여울로 굽이치며

노래하는 강물이고 싶다

…(중략)…

 

한때 나도 강이었다

이렇게 가두어진 채 썩어가는 악취의 물이 아니었다.

죽음의 강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며 버려진 강이 아니었다

발길이 없는 손님을 부르며

목이 쉰 채 뽕짝 거리던 호객행위마저 끊긴 눈물의 부두가 아니었다

애물단지 관광유람선 싸게 팝니다

고소영, 강부자 얼씨구나 몰려들어 땅 떼기하던

운하 부동산 헐값에 세 놓습니다

빛바랜 현수막들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내가 언제 생각이나 했던가 꿈이나마 꾸었던가

 

생명의 어머니이신 강을 모시기 위한 문화예술인 공동연대는 운하 건설 계획이 백지화 될 때까지 시인은 시로서, 소리꾼은 소리로서 최선을 다해 생명의 강을 지켜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국토 곳곳을 파헤쳐 콘크리트 옹벽을 치고 거기 물웅덩이를 만들겠다는데 시인이 시로써 발언하지 못하겠다면 그게 시인이냐"라고 일갈했다던 어느 시인의 말처럼, 생명의 젖줄을 끊어 놓겠다는데 수수방관하고 있다면 우리가 생명의 젖줄을 받아먹고 살아온 이 강산의 자녀들이라 할 수 있겠는가.

 

정부도 더 이상 가난한 시인들에게 시대의 눈물을 강요하거나 억울한 피값을 강제하지 말라. 이 나라는 정부의 것만이 아니라 이 강산의 은택을 받고 사는 국민 모두의 것이다.


태그:#대운하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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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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