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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저녁 7시 강원도 춘천 봄내극장에서 공식 초청작 <4-59> 공연을 시작으로 '춘천 마임 축제(mime festival)'가 그 마음의 문을 활짝 연다. 올해로 20돌을 맞이하게 된 이 축제는 1000여 개 넘는 다른 국내 축제들과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문화관광부가 선정하는 대한민국최우수축제에 2년 연속(2007년, 2008년)으로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또한 프랑스의 미모스 마임축제, 영국 마임축제와 어깨를 견줄 만큼 야무지게 성장했다. 현재 춘천마임축제는 춘천의 대표적인 공연문화로 그 입지를 굳혔다.

이번 기획 취재는 어느덧 듬직한 20살이 된 이 축제의 성장 과정을 알아보기 위함이다. 총 2부로 나눠 올릴 예정이며 1부에서는 탄생부터 10년까지의 이야기, 2부에서는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다룰 것이다. 그럼 지난 20년 간 몸으로 적어 온 축제의 일기장을 열어보자. <기자 주>

태동기, 마임 축제의 탄생

춘천마임축제의 모태가 된 한국마임페스티벌의 포스터. 순수 민간 주도로 이루어진 소규모의 공연이었지만 한국에도 마임축제가 자리 잡을 수 있음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 한국마임페스티벌 1,2,3,5 회 포스터 춘천마임축제의 모태가 된 한국마임페스티벌의 포스터. 순수 민간 주도로 이루어진 소규모의 공연이었지만 한국에도 마임축제가 자리 잡을 수 있음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 사) 춘천마임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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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탄생은 계획에도 없던 일이었고, 춘천에서 태어나지도 않았으며, 춘천마임축제라는 이름도 아니었다. 축제의 산통을 겪은 사람은 현 춘천 마임축제 예술 감독이자 우리나라 1세대 마임니스트인 유진규(57)다.

이종호 춘천 마임축제 홍보팀장의 말에 의하면 한국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 마임의 부흥을 위해 유진규, 최규호, 임도완, 유홍영 등의 마임니스트들이 뜻을 모아 1989년 서울의 공간사랑에서 한국마임페스티벌이라는 이름으로 출산한 것이 오늘날의 춘천마임축제의 시작이라 했다. 이는 한국 마임 역사에 있어서도 마임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리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춘천으로 이사

서울의 축제가 끝난 후 춘천MBC의 요청으로 그해 11월 춘천에서 초청공연을 연 것을 계기로 축제의 주소지를 서울에서 춘천으로 옮기게 되었다. 당시 거의 모든 문화 예술 공연이 서울에 편중되어 있었고, 초창기의 마임니스트들 역시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춘천으로 이전하는 것이 도박과도 같은 선택이었다.

그러나 '제15회 춘천마임축제 평가분석'에 의하면 춘천의 조용하고 깨끗한 이미지와 서울과의 인접성 때문에 축제 주최측이 장소 변경을 결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마임 축제 기지개를 펴다

본격적인 축제화가 되기 시작한 춘천마임축제의 성장기. 해외공연팀의 화려한 공연 및 풍부한 볼거리가 제공되었다.
▲ 춘천마임축제 6~10회 포스터 본격적인 축제화가 되기 시작한 춘천마임축제의 성장기. 해외공연팀의 화려한 공연 및 풍부한 볼거리가 제공되었다.
ⓒ 사) 춘천마임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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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예술인 중심의 순수 민간 주도로 시작된 마임축제의 시작은 미비했다. 국내에서의 인지도는 물론 지역 사회 내에서도 그 존재감이 미약했다. 운영비는 축제 주최자들의 자비를 털어 운영하였다.

또한 열악한 자금상황으로 인해 4회를 제외한 5회 때까지는 하루 공연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마임을 향한 그들의 열정은 식을 줄 몰랐고, 1994년 6회 축제부터 춘천시에서 소액의 지원금을 받기 시작하였다. 축제 기간은 4일로 연장되었으며, 미국, 일본의 마임 팀이 참가하는 등 국제적인 축제의 모습을 띠게 되었다.

어린이 마임 공연 중.
▲ 94년 6회 축제, 일본 마임니스트 야마다 토시 어린이 마임 공연 중.
ⓒ 사) 춘천마임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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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부터는 한국마임페스티벌에서 '춘천국제마임축제'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행사장은 춘천문화예술회관을 벗어나 춘천시의 초·중·고 및 대학교로 넓어졌고, 명동 등에서의 거리행사도 시작되었다.

해외 공연팀도 캐나다, 홍콩, 인도, 일본, 네덜란드, 러시아로 다양해졌고, 극장공연 외에 거리마임, 방문공연, 야외공연, 초청공연으로 봉산탈출 퍼포먼스 등 향상된 프로그램과 공연으로 인지도를 넓혀나갔다.

제8회 공연은 프랑스, 폴란드, 이스라엘, 뉴질랜드, 캐나다 등이 참여했으며 이때부터 일본과는 정기적으로 교류를 시작했다. 국내 공연 극단도 15개 팀으로 늘어났으며 방문공연을 계획하여 소년원과 청각장애인학교에 강습회를 나섰다.

제9회 축제부터는 자원봉사제도를 도입하면서 교류의 통로를 넓혀나갔다. 국외와 국내의 프로 공연팀과 더불어 아마추어 극단들도 참여 기회를 얻었으며, 거리공연과 방문공연 역시 꾸준히 계속된다. 9회 행사까지 춘천 마임축제는 국내 자체에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마니아층과 지역민을 중심으로 꾸준히 인지도를 넓히고 있었다.

10살의 도깨비 난장

1998년 10회 째를 맞은 마임축제는 '도깨비난장'이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난장의 연출가인 심철종이 일본에서 예술가와 관객이 일주일간 합숙하며 공연하고 즐기는 프로그램에서 영감을 얻어 기획된 이 공연은, 각 계의 문화 예술인들이 모여 마임에 국한하지 않고 서로를 포용하며 밤새 놀이를 즐기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마임과 문학, 무용, 대중음악 등 다양한 장르가 혼합된 축제 한마당인 도깨비 난장은 자유로운 구성과 주말을 공연과 함께 보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특히 젊은 관객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마임축제관객의 80%가 도깨비 난장을 관람하러 온 관객일 정도로 매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는 마임축제의 대중화와 명성으로 이어지고, 그 후 2001년 13회부터는 축제의 활성화를 위해 도깨비 난장의 무대를 일정한 극장이 아닌 열린 공간 전체로 옮긴다. 호반의 도시 춘천에 자리 잡은 작은 섬 위도(고슴도치 섬)로 옮겨간 도깨비난장은 공연문화의 영역을 넘어선 새로운 도전의 시작이었다.

춘천시 명동에 위치한 중앙로에서 많은 관객들과 마임니스트가 함께 소통하고 있다.
▲ 98년 10회 개막 거리 축제 춘천시 명동에 위치한 중앙로에서 많은 관객들과 마임니스트가 함께 소통하고 있다.
ⓒ 사) 춘천마임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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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강원일보 인터넷판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기획기사 2부는 5월 28일에 게재됩니다.



태그:#춘천마임축제, #한국마임페스티벌, #마임축제, #마임, #유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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