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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가 담장으로 쓰인 성곽

낙산에서 혜화문 쪽으로 이어지는 성곽: 오른쪽에 암문이 보인다.
 낙산에서 혜화문 쪽으로 이어지는 성곽: 오른쪽에 암문이 보인다.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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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에서 사방을 조망하고 동쪽으로 나 있는 암문(暗門)을 빠져 나가면 성북구 삼선동이다. 성곽 바깥에 북쪽 방향으로 길이 이어지는데 이 길이 바로 장수길이다. 처음에는 좁은 골목길 형태이다가 나중에 조금 넓은 길로 바뀐다. 이곳 낙산에서 동소문인 혜화문까지는 내리막길로 성곽을 따라 길이 나 있기도 하고, 성곽에 바로 집이 붙어있는 경우 조금 떨어져 길이 나있기도 하다.

주택가 담장으로 쓰이고 있는 성곽
 주택가 담장으로 쓰이고 있는 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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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의 성곽은 아래쪽으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고 그 위로 복원을 한 모습이다. 아랫부분은 세종 때 축조한 모습 그대로이고 그 위의 돌은 70, 80년대 복원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 구간에서는 숙종 때의 것도 보인다. 고도에 따라 성의 상단부가 계단처럼 층층이 내려오는 것을 보면 성곽이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전깃줄과 허름한 집들이 성곽과 조금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지만.

성곽 동쪽으로 보이는 한성대학교
 성곽 동쪽으로 보이는 한성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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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내려오면서 보니 오른쪽으로 한성대학교가 내려다보인다. 한양 도성을 줄여 한성이라 불렀고, 그 이름을 따서 한성대학교라고 붙인 것이니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성곽을 따라 더 내려오니 '낙산 근린공원 조성사업' 공사 안내판이 보인다. 역사를 체험하고 자연과 가까이 지내며 여가와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공원을 만들기 위해 주변의 불필요한 대상물을 철거하는 중이라고 한다. 6월까지 공사를 끝내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제 좀 더 넓어진 큰 길로 나오니 사람과 차들이 많다. 길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 집 대문 한쪽에 '중요 무형문화재 제104호 서울 새남굿 이수자 강옥임'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다른 쪽에 '천지 예언의 집'이라는 간판이 있는 것으로 보아 강옥임씨가 무당인 것 같다. 새남굿이 어떤 것인지 몰라 문화재청 자료를 찾아보았다.

새남굿의 한 장면
 새남굿의 한 장면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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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새남굿은 서울 지역의 전통적인 망자 천도굿으로 상류층이나 부유층을 위해 베풀어졌다. 망자 천도굿은 죽은 사람의 넋을 위로하고 좋은 세상으로 인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새남굿은 안당사경맞이와 새남굿으로 구성된다. 안당사경맞이는 새남굿이 벌어지는 전날 밤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진행된다. 전통 새남굿에는 만신 5명과 잡이 6명이 참여하며 장구와 북 대금 피리 해금 등 삼현육각이 동원되었다. 새남굿에는 무속과 불교 유교의 종교적인 모습이 혼합되어 있으며 궁중의 화려한 복식과 우아한 춤사위 정교한 의례용구 등을 갖추고 있다.

- 문화재청 자료 중 일부.

서울 새남굿은 1996년 5월1일 중요 무형문화재가 되었으며 기능보유자는 서울 최고의 무당으로 인정받는 김유감이다. 현재 그의 기능을 배워 전하는 전수 교육조교가 여럿 있고, 그 밑에 이수자들이 있다. 그러므로 강옥임씨는 새남굿 기능을 배워 알고 있는 이수자 중 한 사람이다. 이수자 밑에는 전수 장학생으로 불리는 일반 전수생들이 있다.

동소문인 혜화문 때문에 동소문동과 혜화동이 생겼다

동소문인 혜화문
 동소문인 혜화문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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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길이 끝나면서 길은 지하철 한성대 입구 쪽으로 이어진다. 한성대 입구 지하도를 건너 5번 출구로 나간 다음 동소문로를 따라 혜화동 쪽으로 간다. 동소문로로 인해 서울 성곽이 끊어졌고 이 지역에서는 성곽을 따라 계속 진행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동소문로를 100m쯤 갔을까? 오른쪽으로 샛길이 보이고 나무들 사이로 혜화문이 보인다. 혜화문이 바로 동대문인 흥인문과 북대문인 숙정문 사이에 있는 동소문이다.

혜화문(惠化門)은 1396년(태조 5) 9월 서울 도성이 만들어지면서 지어졌다. 이때 문의 이름은 홍화문(弘化門)이었다. 그러다가 성종 14년(1483) 창경궁을 건립했는데, 그 동문을 역시 홍화문이라 이름 지었다. 궁궐의 문과 도성의 문 이름이 같게 된 것이다. 그 때문에 중종 6년(1511) 동소문인 홍화문을 혜화문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이후 혜화문에 대한 별다른 기록은 없다. 영조 15년(1739)에 이르러 혜화문과 관련된 중요한 기록이 나온다.

"혜화문(惠化門)의 지도리와 문짝이 부러지고 상하여 밤 사이에 닫지 못하므로 어영청(御營廳)에서 번군(番軍) 10명을 보내어 파수하게 하였다."

이어 영조 20년(1744) 그동안 없던 문루를 다시 지어 세운다.

"혜화문(惠和門)에 옛날에는 문루가 없었는데, 임금이 어영청(御營廳)에 명하여 이를 창건하게 하고 편액을 걸었으니, 곧 세속에서 일컫는바 동소문(東小門)이었다."

삼선동 주택을 감싸고 있는 성곽: 성곽이 무성한 나뭇잎들에 가려 있다.
 삼선동 주택을 감싸고 있는 성곽: 성곽이 무성한 나뭇잎들에 가려 있다.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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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문은 4소문 중 하나지만 북대문인 숙정문이 백악산에 있고 항상 닫혀 있어 4대문 중 북대문의 역할을 했다. 함경도로 떠나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 문을 통과하여 원산과 함흥 그리고 경성으로 갔던 것이다. 다산 정약용이 철원으로 귀양 가는 윤무구를 혜화문에서 떠나보내며 다음과 같은 시를 짓고 있다. 여기서 백운봉은 북한산 백운대를 말하고 청쇄달은 대궐문을 말한다. 그러므로 청쇄달에서 놀았다는 것은 벼슬을 했다는 뜻이다. 

철원으로 귀양살이 떠나는 윤무구를 보내며 送尹无咎謫鐵原

첫 번째 종소리에 혜화문이 열리더니   惠化門開第一鍾
산 넘고 물 건너 북으로 가는 길 첩첩일세.  關河北去路重重
산이 대신 일산을 펴 외로운 말을 맞이하고  山張寶蓋迎孤馬
안개가 얼음발을 막아 구룡을 숨겨주네.  霧鎖氷簾秘九龍
다행이도 잠시나마 청쇄달에서 놀았지만  試幸暫游靑瑣闥
우리 함께 백운봉을 오를 때만 같겠는가.  何如同上白雲峯
듣자하니 신진 축에 뛰어난 인물 많아   傳聞新進多才俊
검은 머리 붉은 얼굴, 겉과 속이 다 짙다네.  玄鬢紅顔意態濃 - <다산시문집> 제3권

원래 혜화문은 혜화동 로터리에서 성북동으로 넘어가는 언덕에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에 도시계획에 따라 문루가 헐리게 되었다. 그 후 1939년 석문마저 사라졌다. 그러다가 1975년부터 1980년까지 서울 성곽에 대한 복원 작업이 이루어졌고 1994년 현재의 위치에 복원되었다. 그러므로 혜화문은 원래의 위치보다 북쪽에 위치하게 되었고, 남쪽의 종로구 혜화동과 북쪽의 성북구 동소문동을 나누는 상징적인 건축물이 되었다.

와룡공원 가는 길

경신고 가는 길의 성곽
 경신고 가는 길의 성곽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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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문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우리는 다시 성벽을 따라 북대문인 숙정문 방향으로 향한다. 길은 성북동 쪽으로 이어진다. 이제부터 성벽은 다시 오르막길이다. 경신중고등학교까지 집들 사이로 성곽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곳 경신중고등학교 주변 성북동에는 현대 문화유산이 몇 가지 있다. 최순우 옛집과 간송 미술관이 그것이다. 이 날 목적이 서울 성곽답사이기 때문에 이들을 볼 수는 없다. 그래서 와룡공원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경신고등학교와 서울과학고를 지나 와룡공원으로 가는 길 왼쪽의 성곽은 동서로 뻗어 있다. 이제 왼쪽 너머는 명륜동이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성균관대학교가 보인다. 조선시대 대학인 성균관이 학교로는 최고 명당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북악산에서 내려오는 산줄기가 우백호를 이루고 서울성곽으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산줄기가 좌청룡을 이룬다고 한다. 그 안으로 기가 모이고 바로 그곳에 성균관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북악 스카이웨이의 팔각정
 북악 스카이웨이의 팔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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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서울 성곽은 좀 더 경사지게 위로 올라간다. 와룡공원까지 오르면서 좌우를 살펴보니 남쪽으로는 창덕궁 지역이, 서쪽으로는 삼청동 지역이, 북쪽으로는 가까이 성북동 지역이 그리고 그 너머로 북한산 지역이 눈에 들어온다. 북쪽에 있는 북악스카이웨이는 동서로 이어지고 그 서쪽 끝쯤에 팔각정도 보인다. 이곳의 성벽 역시 옛 모습을 그대로 잘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성벽에는 담쟁이 비슷한 넝쿨식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성곽의 역사를 말해준다.

와룡공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쉬고 있었다. 혜화동과 명륜동 쪽에서 올라온 사람, 가회동, 삼청동 쪽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고갯마루인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우리도 이곳에서 잠시 한숨을 돌린다. 그러나 우리는 시간이 많지 않다. 저녁 7시 정도까지는 성곽답사 시점인 동대문까지 가야하기 때문이다. 또 이광국 선생이 우리를 그렇게 오래 앉아있게 하지를 않는다. 이제 말바위 쉼터까지 좀 더 가파른 길을 20분 정도 올라가야 한다.   

성곽 가까이 있는 최순우 옛집과 간송미술관

최순우 옛집 가는 길
 최순우 옛집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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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우 옛집과 간송미술관은 성곽답사를 마치고 그 다음 주인 5월21일 따로 방문을 했다. 5월18일부터 6월1일까지 간송미술관에서 '오원 장승업 화파전'이 열리기 때문이다. 이들을 따로 방문할 때는 서울 성곽 쪽이 아닌 성북동 길에서 접근하는 것이 좋다. 지하철 한성대 입구에서 내려 걸어갈 수 있다. 최순우 옛집은 한성대 입구 5번 출구로 나오는 것이 좋고 간송미술관은 6번 출구로 나오는 것이 좋다.

최순우 옛집은 한성대 입구 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다. 성북1동 사무소와 신한은행을 지나 조금 더 가면 등촌칼국수 집이 보이고 옷가게가 있는 골목으로 20m쯤 가면 왼쪽으로 '최순우 옛집', '혜곡 최순우 기념관'이라는 표지판이 붙은 집을 찾을 수 있다. 바같채에 붙어있는 대문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안마당이 있고 그 안에 ㄱ자형의 안채가 위치하고 있다. 그러므로 최순우 옛집은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 바깥채로 이루어진 ㅁ자형 집이다.

유리창 안으로 보이는 사랑방과 안마당
 유리창 안으로 보이는 사랑방과 안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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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국립 중앙박물관장을 지낸 혜곡 최순우 선생의 뜻을 기리고 한국 미(美)의 정신을 널리 알리고자 2004년부터 기념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최순우 선생이 쓰던 물건과 친필원고 그리고 유품을 그대로 전시하고 있으며, 시민들과 함께 하는 문화공간이 되기 위해 해마다 봄과 가을에 문화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이번에도 5월23일부터 25일까지 강연과 답사, 동화구연과 전시가 열린다. 그리고 가을에는 최순우 선생과 관련된 특별전을 또 연다.

뒷마당의 달항아리
 뒷마당의 달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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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우 옛집의 멋은 이들 건물과 그 속에 들어있는 유품에서도 나오지만 안마당과 바깥마당의 자연스러움에서도 나온다. 안마당에는 석조(石槽)와 쇠로 만든 함지가 있어 삶의 숨결을 느낄 수 있고, 뒷마당에서는 장독과 석물 그리고 달항아리가 있어 삶과 예술의 어우러짐을 볼 수 있다. 특히 돌받침 위에 얹혀진 흰색 달항아리가 초록의 대나무와 정말 잘 어울린다. 선생의 저서 제목처럼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

간송미술관은 최순우 옛집에서 성북동 길을 약 7~8분 올라가면 만날 수 있다. 혜화동 로타리와 삼청터널로 가는 삼거리 조금 못 미쳐 오른쪽 성북초등학교 들어가는 길로 가면 바로 나온다. 간송미술관의 정문은 성북초등학교 정문과 마주보고 있다. 정문을 들어서면 나무가 울창하고 왼쪽으로 3층짜리 흰색 건물이 보인다. 옛날 학교 건물처럼 보인다. 건물 입구가 남쪽으로 있기 때문에 전시를 보려면 정원을 돌아가야 한다. 정원에는 지금 봄꽃들이 한창이다. 흰색과 보라색의 꽃들이 정말 아름답다.

간송미술관 1층 전시실 보화각
 간송미술관 1층 전시실 보화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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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오른쪽으로는 석사자 한 마리가 앉아 있고 왼쪽 벽에는 '오원장승업 화파전(吾園 張承業 畵派展)'이라는 글씨가 붙어 있다. 심현삼 선생의 글씨라고 한다. 안으로 들어가 1층전시실인 보화각(葆華閣)과 2층 전시실에서 그림을 볼 수 있다. 오원 장승업의 그림 50여점과 그의 제자인 소림 조석진, 심전 안중식, 백련 지운영 등의 그림 5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1층에 좀 더 큰 대작이 많은 편인데 화제가 노인과 신선 그리고 자연과 동식물이다. 종이에 담채로 그린 '계산무진(谿山無盡)'은 길이가 218㎝나 된다. 그리고 크고 작은 병풍 그림도 있는데 이들은 4폭이나 8폭이다. 비단에 채색을 한 8폭 그림은 크게 '귀거래도(歸去來圖: 32.5×136.7㎝)'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데 산수경개를 정말 멋지게 표현했다.

2층 전시실의 모습
 2층 전시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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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에는 오원의 제자들인 소림, 심전, 백련의 그림이 있는데 대개 소품들이다. 소품이라면 가로 세로가 50㎝ 이하인 작은 작품을 말한다. 물론 소림 조석진과 심전 안중식의 작품 그리고 백련 지운영의 작품 중에도 100㎝가 넘는 대작들도 있다. 지운영의 '천대선거(天台仙居)', 조석진의 '추산근수(秋山近水)', 안중식의 '관매순학(觀梅馴鶴)'이 대표적이다.

간송미술관은 1966년 간송 전형필 선생이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박물관이다. 서화를 중심으로 도자기, 불교 유물, 전적류, 와당과 벽돌 등 많은 유물을 보관 전시 연구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봄과 가을 2회 전시회를 열고 작품집 <간송문화(澗松文華)>를 발행한다. 1971년 처음 발행된 <간송문화> 지금까지 74집(2008년 봄)이 나왔다. 대표적인 작품집으로는 <추사명품집(秋史名品集)> <겸재명품집(謙齋名品集)> 등이 있다.


태그:#혜화문, #장수길, #와룡공원, #동소문, #최순우와 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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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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