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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5월 21일. 내 양력 생일이다.

 

어머니 살아계실 땐, 집에선 그나마 음력 생일을 챙기긴 했는데 조금씩 커가면서는 주로 바깥에서 생일을 치르다보니 나부터 양력 생일을 기억하는 편이다. 기억한다고 해서 뭐 별다르지 않다. 생일을 별로 중요한 날로 여기지 않는 편이어서. 남편 생일 선물도 제대로 챙겨준 적 없는 걸 보면 알 만하다.

 

만약 부모님이 살아 계시다면, 나 같으면 내 생일날에 부모님께 선물을 해드리고 싶을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내가 태어난 그 날은 부모님께, 특히 어머니께 가장 고마운 마음을 드러내야 할 때다. 그 날, 어머니는 가장 몸이 아팠을 거고, 또 가장 마음이 행복했을 거고.

 

오늘은 생일, 기념으로 꺼내본 어머니 사진

 

어머니 돌아가신 뒤로, 아직까지도 난 어머니 사진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다. 사진 속에서 바로 튀어나오실 것만 같아서, 갑자기 나한테 무슨 말을 건네실 것만 같아서.

 

오늘은 생일 기념으로 큰 맘 먹고 이렇게 사진을 꺼내본다.

 

제주도에서 하나 건너 마을에 살면서 여차저차해서 결혼까지 하신 두 분. 사진 속 어머니는 이십대 후반이신 거 같고, 아버지는 삼십대 중반쯤인 듯 하다(두 분 나이차가 여섯 살이니까). 하여튼, 두 분 다 정말 아름답고 멋진 얼굴을 갖고 계신다. 나는 두 분 얼굴 다 제대로 물려받지 못해 안타까울 뿐. 

 

우리 엄마는 정말 똑똑하셨다. 형제들끼리 늘 이런 말을 했다. "엄마가 교육 제대로 받았으면 분명 대통령 감이었을 거야."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엄마는 초등학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셨다. 외할머니가 농사 일 시킨다고 학교를 거의 안 보내셨다고 한다. 그렇게 공부하는 걸 좋아하셨다는데….

 

학교는 한 달도 채 안나갔지만, 거짓으로 초등학교 졸업장은 받으셨다. 내가 알기론 그게 엄마가 갖고 있는 유일한 학교 관련 증서다.

 

그런 엄마지만 생활에서는 얼마나 똑부러지셨는지 모른다. 늘 배우지 못해서 한스러워 하셨던 엄마. 그 한을 육남매 모조리 대학 교육까지 무리 없이 시키는 것으로 해소하고자 했던 엄마.

 

 

9년째 냉장고에 넣어둔 쑥... 엄마 고마워요

 

결혼하면서 혼수로 가져온 게 있다. 언제나 냉동실에 넣어두어야 하는 바로 저 삶은 쑥이다. 엄마는 봄이면 늘 쑥을 따다가 아주 자주 쑥 버무리나 쑥개떡을 해주셨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지금까지도.

 

어머니는 그렇게 쑥을 많이 뜯어서는, 좋은 쑥은 저렇게 따로 삶아서 냉동실에 두셨다. 그때 그러셨다. 자식들 결혼하면 저 쑥으로 떡을 만들 거라고.

 

‘아주 좋은 숙'

 

'쑥'인줄 아셨을 텐데, 글자는 어찌 ‘숙'이라고 쓰셨을까. 하긴 한 번씩 엄마가 글 쓰신 거 보면 맞춤법 틀린 게 있긴 하다. 그래도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다닌 것 치고 글은 정말 잘 쓰신 편이다. 그 또한 어머니가 가진 영특함 덕분일 테다.

 

엄마가 2001년에 돌아가셨으니까, 저 쑥은 저렇게 얼린 지 9년쯤 됐겠지. 어쩌다 한 번씩 저 비닐을 열어본다. 그리곤 '아주 좋은 숙'이라는 다섯 글자를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한 채로. 그냥 저 작은 쪽지 하나에서도 엄마 냄새가 지나치게 많이 풍긴다. 그래서 보기만 해도 가슴이 미어진다.

 

그래도, 내가 이렇게 고이 간직하고 있으니, 결혼식 때 떡 하는 데 쓰지는 못했지만 저렇게 삶아서 얼려놓은 보람은 있는 거라고, 그렇게 엄마한테 말씀드리고 싶다. 그리고 낳아주셔서 정말 정말 고맙다는 말까지도.


태그:#어머니, #가족, #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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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기타 치며 노래하기를 좋아해요. 자연, 문화, 예술, 여성, 노동에 관심이 있습니다. 산골살이 작은 행복을 담은 책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를 펴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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