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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닭들 안녕, 소들 안녕! 
ⓒ 신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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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닭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신혜정, 유치환의 시 <행복>을 멋대로 수정.)

닭이여, 나는 소에게 간다

5월 12일 월요일 0시를 기준으로 우리들 사이에서는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닭팀과 소팀이 바뀐 것. 우리 크리스탈워터스 코스 참가자 현재 5명은 닭팀과 소팀으로 나뉘어 각각 닭들과 소들을 돌보고 있다는 말은 지난 3편에 한 바 있다. 나와 브렌단이 최강 닭팀, 성천이와 알리샤, 우구가 소팀.

처음에 닭팀과 소팀을 정하면서 우리는 다양한 체험과 배움을 위해 나중에는 소팀과 닭팀 역할을 바꾸기로 했다. 그런데 시간은 화살 같이 날아가 어느덧 전체 4개월 예정된 코스의 절반이 흘러 팀을 바꿀 시기가 다가온 것. 몇 주 전부터 어쩐지 소팀 애들이 이제 자기들도 닭 일 해보고 싶다, 닭 좀 보살피고 싶다 바꾸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최강 닭팀의 일원인 나는 못 들은 척 무시하고 잠자코 닭 모이 주기에 전념하려 노력했는데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었다.

내 손으로 달겨드는 귀여운 녀석들. 털은 얼마나 보드라운지.
▲ 너희를 떠나란 말이냐 내 손으로 달겨드는 귀여운 녀석들. 털은 얼마나 보드라운지.
ⓒ 신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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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닭들. 처음에는 모이 주러 닭장을 방문하면 저만치 숨던 놈들이 점점 쭈뼛쭈뼛 다가오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우리가 가면 아주 맨발로 달려 나온다. 물론 걔들이 초점을 두고 있는 대상은 우리가 아니고 우리가 줄 먹이이겠지만 그게 어디냐. 달려 나온 놈들이 모이에 정신이 나가있을 때 살짝살짝 쓰다듬으면 닭털은 또 얼마나 부드러운지.

게다가 달걀. 달걀들이 둥지에 포근하게 얹혀져 날 기다리고 있는 모습은 그 얼마나 경이로운가. 맥스의 닭 3마리에다 이제 우리 6마리 닭도 달걀을 낳기 시작해 하루에 7~8개, 최고로는 9개의 달걀을 얻을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나는 이제 소팀으로 이적한다. 닭들에게 잘해 주지도 못했는데…. 내 집은 닭장이랑 멀어서 브렌단이 거의 닭들을 보살폈는데, 그래서 이번에 닭장 가까이로 이사하면 진짜 잘해주마 했는데…. 마지막 작별 인사할 정신도 없이 가는구나. 닭들이여 안녕(이래 놓고 닭장에 또 찾아갈 거다).

소팀 대소동, 소들 대탈출!

 
▲ 최강 소팀의 시대가 도래하다 
ⓒ 정성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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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최강 소팀의 시대가 왔다. 브렌단과 내가 소팀, 성천이와 알리샤랑 우구가 이제 닭팀. 소팀은 드넓은 초지에 사는 맥스의 일곱 마리 소에게 간식을 주고 물 주고 진드기 없나 털 쓸어주며 보살피고, 초지와 그 주변의 지나치게 자란 풀들을 정리해주는 것이 주 임무. 

그러나 신생 최강 소팀은 제대로 임무를 시작해 보기도 전에 난관을 맞았다. 5월 14일 수요일 밤, 맥스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당황하고 다급하고 미안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요즘 크리스탈워터스에 자전거 도로를 설치하고자 한창 분주하게 길 내고 있는 피터. 피터는 그날도 분주하게 일했다. 문제는 우리 소들 울타리 문을 열고는 닫지 않고 놔두었다는 사실마저 깜빡 잊고 바쁘게 일했다는 거.

"와 보니까 소들이 다들 우리 밖으로 나갔어요!"

맥스는 일단 잤다. 자고 일어나니 또 전화가 왔다. 당황하고 다급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번엔 점성술과 풍수에 조예가 깊은 쾌활한 아저씨인 리차드.

"우리 집 언덕 밑에 있는 게 아무래도 니네 소들 같아!"

불행 중 다행히도 소들은 뭉쳐 다녔다. 그래서 맥스는 리차드 네로 가서 소들을 때론 앞장 서 유인하고 때론 밀고 때론 엉덩이를 탁탁 쳐가며(절대 팍팍 치면 안 된다. 소들 화낸다) 우리 근처까지 데려왔다. 남은 건 최강 소팀, 브렌단과 나의 몫. 우리는 때론 눈치 살피고 때론 빌고 때론 엉덩이를 떨리는 손으로 톡톡 쳐가며 울타리 안에 안착 시켰다. 첫 임무 성공. 거의 맥스가 다 하긴 했다만….

제발 부탁이야
▲ 우리로 돌아가자 얘들아 제발 부탁이야
ⓒ 신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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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소팀은 이제부터 시작

맥스의 소들은 '돼지' 같아서 귀엽다. 초지의 풀들을 뜯다가 간식의 낌새를 눈치 채면 아주 그냥 돌진을 한다. 동질감이 느껴져서 친근하다. 뒤룩뒤룩 귀여운 여덟 마리 소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앵거스, 피비, 펄잼, 티본, 넘버식스, 세븐틴, 두 마리는 안타깝게도 무명.

그 중 수소는 앵거스 오로지 하나. 수소가 둘 이상이면 서로 싸우려 들기 때문에 역시 수소로 태어났던 다른 넷은 거세를 해 중성. 그리고 남은 셋은 암소, 셋 중 하나인 피비는 임신 중이다. 아버지는 의심할 여지없이 앵거스.

분위기는 나는데 얼굴이 잘 안 나왔다.
▲ 일부다처제의 주인공이기도 한 고독한 리더 앵거스 분위기는 나는데 얼굴이 잘 안 나왔다.
ⓒ 신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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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거스는 고독한 리더다. 내가 소팀이 되기 이전부터 기웃기웃 소들 상황을 지켜본 바로는 앵거스는 뭔가 하면 꼭 혼자 튄다. 이번에 대탈출 사건 때도 그랬다. 다른 소들은 다같이 붙어 있는데 앵거스만 홀로 먼 곳을 헤매고 다녔다.

때문에 맥스는 앵거스를 찾아 크리스탈워터스 경계의 강줄기를 따라 긴 도보여행을 했다. 지친 맥스의 인도 아래 다른 일행과 합류해 마침내 원래 집으로 향하던 와중에도 제일 뒤꽁무니에서 가다 멈추고 가다 흙 파헤치고 해서 뒤따라가는 내 속을 태웠다. 그리고 다른 애들은 언제나 먹을 거면 환장을 하는데 앵거스는 아주 가끔 우울한 날에는 먹이에도 반응하지 않는 의연한 모습을 보인다. 튀니까 어쩐지 정이 가네그려.

아직은 앵거스 밖에 잘 인지를 못했지만 이제 다른 애들도 친숙해지겠지. 솔직히 지금은 여덟 마리 다 똑같이 생긴 거 같아 보인다. 그러나 최강 소팀은 할 수 있다. 일단 애들 이름 외우기부터.

우리 동네 자랑거리를 소개합니다
목요일 오전에는 이 지역 선샤인코스트의 시장 애벗이 방문했다. 지금까지 크리스탈워터스에는 많은 정치 인사들이 방문했는데, 마을을 둘러보고 생태적인 정책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으려는 목적이라고 짐작된다. 소수의 거주자들이 모여 시장을 맞아 함께 크리스탈워터스를 둘러봤는데, 그 여정에는 우리 코스 참가자들과 맥스가 수업하는 에코센터도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는 시장이 온다고 해서 나름 들뜨고 몇몇은 시장을 위한 적극적인 질문까지 준비해 놨는데 그는 10분 있다 갔다.

10분 있다 갔다. 검은 셔츠에 멜빵 바지 입은 아저씨가 시장.
▲ 이 지역 시장이 왔다 10분 있다 갔다. 검은 셔츠에 멜빵 바지 입은 아저씨가 시장.
ⓒ 신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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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짧은 시간이긴 했지만 맥스는 시장에게 에코센터에 대해 설명했다. 사실 우리가 오전마다 수업하는 공간인 에코센터 그 자체가 살아있는 교육 자료다. 2000년, 환경과 에너지 효율에 대해 섬세한 고려를 기울여 지은 에코센터는, 여기 사람들 말로는 생태 건물의 모범이란다. 맞겠지…. 어쨌든 시장도 10분 방문한 김에 내가 생각하는 에코센터의 중요 포인트를 세 개만 '찝어' 보겠다.

<우리동네 자랑 에코센터>

1.  태양과 비를 반기는 에코센터

태양 향해 북향으로 지어진 에코센터. 왼편의 거무스름한 물체가 바로 빗물 탱크다. 빗물은 에코센터의 지붕 홈을 타고 탱크로 흘러 저장됐다가 사용된다.
▲ 태양과 빗물이여 오라 태양 향해 북향으로 지어진 에코센터. 왼편의 거무스름한 물체가 바로 빗물 탱크다. 빗물은 에코센터의 지붕 홈을 타고 탱크로 흘러 저장됐다가 사용된다.
ⓒ 신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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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센터는 북향을 바라보게 지어졌다. 남반구인 호주에서 이는 햇빛을 받기 좋은 방향이고,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어 태양 에너지를 쓰기에 그 방향의 장점을 적극 활용할 수 있다. 크리스탈워터스의 모든 집이 다 가지고 있는 빗물탱크를 보유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2. 사치가 뭔지 모르는 에코센터

에코센터 건물 자재들은 멀리서 배달되어 연료 소비할 필요 없이 가까운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것, 화학 공정을 거치지 않은 것을 쓰고자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이미 있는 자원을 재활용하고자도 노력했다. 크리스탈워터스 부지는 이전에 소가 살던 초지였는데, 그때 있던 소독장의 콘크리트 잔재들이 그때까지도 남아 있었다.

그 콘크리트들을 깨뜨려 건물 바닥 밑에 깔아 건물의 통풍을 돕는데 쓰기도 하고, 큰 조각들은 건물 앞 작은 언덕을 지지하는 용도로 이쁘게 장식됐다. 그리고 위 사진에 등장한 테이블과 의자는 잘못 처리되어 못 팔 상품으로 분류된 목재로 만들어진 것, 또 하나, 진짜 눈치 못 챘던 건데 건물 안에 있는 문들 중 세 개는 버려진 거 주워온 거랜다.

에코센터 정면으로 보이는 광경.
▲ 저 바위로 보이는 것들이 이십년 전에는 소 소독장이었다는 사실을 누가 짐작하겠어?> 에코센터 정면으로 보이는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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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편은 에코센터 강의실 밖, 오른편은 강의실. 저 멀쩡한 걸 누가 버렸대.
▲ 두 사진의 왼쪽편에 보이는 문들, 남들이 버린 거 주워온 거랜다. 왼편은 에코센터 강의실 밖, 오른편은 강의실. 저 멀쩡한 걸 누가 버렸대.
ⓒ 신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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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똥오줌의 복지 보장 

에코센터의 화장실, 때로 내가 가서 오래 가서 앉아 있기도 하는 화장실의 변기는 절수형 변기다. 3편에서 설명한 대로 여기에서 똥오줌은 여기에서 바로 근처에 위치한 탱크로 흘러가 몇 개월 지내면서 미생물이랑 벌레들한테 분해되어 마침내 비료가 되어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사진 왼편의 화장실에서 생성된 똥오줌은 파이프 따라 바로 사진 오른편 풀밭에 뚜껑만 보이는 탱크로 흘러가 비료로 숙성되어 흙으로 돌아간다.
▲ 에코센터의 '행복한 똥오줌' 화장실. 사진 왼편의 화장실에서 생성된 똥오줌은 파이프 따라 바로 사진 오른편 풀밭에 뚜껑만 보이는 탱크로 흘러가 비료로 숙성되어 흙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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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우리 이사했어요!

이리 보니 예쁘구나. 집 아래로는 맥스의 정원, 그 아래로는 저수지가 자리하고 있다.
▲ 새로 이사온 집. 이리 보니 예쁘구나. 집 아래로는 맥스의 정원, 그 아래로는 저수지가 자리하고 있다.
ⓒ Brendan Fea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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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 일요일, 이사했다. 맥스네 집 겸 사무실, 그리고 닭장에서 가까운 남자애들네 집에는 2인용 방이 두 개 있다. 알리샤와 내가 이리로 오고, 우구는 내가 1편에 소개했던 우리들 살던 집으로 갔다. 성천이와 브렌단, 알리샤와 내가 한 집에 살게 된 것. 여기에서는 맥스의 정원이 가까워 채소를 쉽게 구할 수 있고, 무선랜이 있어 인터넷을 쓸 수 있다(나에게는 위험 요소). 저수지가 바로 밑에 있어 풍경이 좋다. 춥기는 많이 춥지만.

*<크리스탈워터스에서 만난 사람들> 시리즈는 현재 맥스가 튕기고 있는 고로 한 주를 더 쉽니다. 다음 편에는 성공하길 온 마음으로 기원하고 있습니다.  


태그:#크리스탈워터스, #생태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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