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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배후는 과연 누구일까? 정부만 모르고 온 국민이 안다.
 그들의 배후는 과연 누구일까? 정부만 모르고 온 국민이 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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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계속되는 광우병 우려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에 중고등학생들이 대거 참가하고 있다. 대통령이 나서도, 경찰이 협박을 해도, 교육감이 가정통신문을 보내도, 학교에서 징계 협박을 해도, 장학사와 교감 등 수백명이 현장에 출동해도 교복 입은 학생들의 촛불 행렬은 계속되고 있다.

전북 W고에서 경찰이 수업 중에 촛불집회 집회 신고자인 학생을 불러다가 추궁하다 물의가 일자 "수업 중이 아니었다"고 말하게 한 사건은 정부의 촛불 노이로제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온통 청소년들의 입을 막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광우병 걸린 소도 제 정신이 아니지만 청와대도, 교육 당국과 경찰도, 학교도 제 정신이 아닌 것 같다. 학교부터 청와대까지 나서서 학생들을 막으려 하지만, 상황이 이러니 '노무현은 조중동과 싸웠고, 이명박은 초중고생과 싸운다' '보다보다 초중고생과 싸우는 정권은 처음'이라는 자조섞인 말들이 나온다.

촛불 문화제에 참가한 학생들은 "우린 교과서에서 배운대로 해요"라고 말한다. 과연 어리다는 이유로 학생들의 입을 막아야 할까? 학생들에게 귀를 막고 눈을 감으라고 하는 것이 진정한 교육일까? 다른 나라의 청소년들은 어떻고, 그들의 정부는 어떻게 대응할까?

[#장면1. 미국] '반이민법' 수업거부, 미국 교육도 좌파가 장악?

지난 4월 26일 플로리다 올랜도에서 벌어진 반이민법 철폐 시위장에서 단상에 올라 연설하는 학생대표. 시위대 앞줄에 학생들이 대거 몰려 있다.
 지난 4월 26일 플로리다 올랜도에서 벌어진 반이민법 철폐 시위장에서 단상에 올라 연설하는 학생대표. 시위대 앞줄에 학생들이 대거 몰려 있다.
ⓒ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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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쇠고기 파문의 당사국인 미국의 학생들은 어떨까?

2006년 미국 정부가 새 이민법을 통과시키려고 하자 캘리포니아·애리조나·텍사스·플로리다 등 미국 남부를 비롯한 전역에서 반대 시위가 일어났다. 특히, 거의 다섯 달 동안 이어진 학생 수만 명의 수업 거부와 시위에 결국 미국 의회는 이들의 요구를 일부 수용해 수정안을 통과 시킬 수밖에 없었다.

만약 우리 나라에서 고등학생들이 어떤 법안을 반대하면서 수업거부를 하고 시위를 했다면 조중동은 어떻게 보도했을까? 학교도 좌파 교사와 여기에 물든 학생들에게 장악됐다고 하지 않을까? 정부의 대응은 어땠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왜 미국 고등학생들은 수업을 거부하면서까지 이민법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는데 우리 학생들은 미친 소, 미친 교육에 반대해 수업 다 마치고 촛불문화제에 참가하는 것도 형사 처벌 징계운운해야 하는가?

[#장면2. 프랑스] "선생님 자르지 마세요" 수만 명이 수업 거부

(EPA) 고등교육개혁을 요구하는 학생 시위대
3일 프랑스 파리의 한 고등학교에서 고등 교육 개혁과 교직 감소를 요구하는 학생 시위대가 그들의 배너를 들고 슬로건을 외치고있다.
 (EPA) 고등교육개혁을 요구하는 학생 시위대 3일 프랑스 파리의 한 고등학교에서 고등 교육 개혁과 교직 감소를 요구하는 학생 시위대가 그들의 배너를 들고 슬로건을 외치고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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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프랑스 고등학생들은 교사수 감축을 비롯한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우리의 4·15 학교자율화 조치와 상통한다)에 수업을 거부하고 교사들과 함께 시위를 하고 있다. 지난 16일에는 프랑스의 고등학생과 교사들이 총파업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러자 사르코지 대통령이나 교육부 장관은 "학생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것을 이해한다"고 말하며 100%는 아니지만 학생들의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했다. 이런 학생들의 시위와 정부의 후퇴는 2006년의 최초 고용계약(CPE) 문제와 1968년의 68혁명에서도 반복됐다.

프랑스의 학생들은 정부의 교육정책에 반대해 수업을 빠지면서 시위를 하는데도 대통령과 장관은 "학생들의 주장을 이해한다"고 한다. 우리 대통령과 교육 당국은 학생들이 수업 다하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촛불문화제에 참가하고 있는데 "어린 학생들이 괴담에 현혹되어 연예인의 영향과 교직원노조의 배후로 시위에 나오고 있다"고 말할까?

[#장면3. 칠레] 고등학생 교육개혁 요구하며 60만 수업 거부와 시위

2006년 10월 칠레 산티아고에서 교육법개정을 요구하며 시위하는 고등학교 학생들.
 2006년 10월 칠레 산티아고에서 교육법개정을 요구하며 시위하는 고등학교 학생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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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교육 차별 해소와 교원 확충 등을 요구하며 60만이 넘는 칠레 고등학생이 한 달 넘게 수업 거부와 시위를 벌였다. 그들은 학교 격차를 줄이기 위해 연방정부가 학교를 인수할 것을 요구하며 동맹휴업을 벌였다. 이들은 통학비 면제와 대학 무시험 진학, 교원 확충, 학교시설 개선 등도 요구했다.

이러한 움직임에 바첼렛 페루 대통령은 "학생들의 말이 옳다"면서 학생들의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칠레의 고등학생들은 수업을 거부하면서 거리에서 교육격차 해소, 교원 확충, 대학 무시험 입학을 외치고 대통령이 나서서 "그 요구가 정당하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잠좀 자자, 밥좀 먹자. 0교시-우열반-강제야자 반대" "너나 먹어 미친소"를 외치면 불법이 되어야 하는가? 칠레의 청소년과 대한민국의 청소년이 다른 걸까? 아니면 칠레 대통령과 대한민국 대통령이 다른 걸까?

[#장면4. 영국] 17세 여고생, 노동당 공천으로 총선 출마

2007년 9월 영국 BBC는 영국의 17세 여자 고등학생이 노동당 후보로 차기 총선에 출마한다고 보도했다. 고등학생 에밀리의 출마에 대한 반응은 호의적이었으며 <가디언지>는 "이들로 인해 정치에 대한 젊은이들의 관심이 커질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영국에는 고등학생이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는데 우리 나라는 출마는커녕 선거도 못한다. 위정자들도 영국 청소년들은 정치 의식이 높은데 우리 청소년들은 수준이 낮아서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모든 인간은 정치적 인간인 '호모 폴리티쿠스'다. 그러나 촛불 문화제 참가도 징계하겠다고 어름장을 놓는 현실에서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호모 폴리티쿠스'로, 즉 제대로 된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왜?

진짜 보편기준은 OIE 아닌 UN의 청소년인권보장

1989년 유엔이 만장일치로 채택된 아동권리협약 12조는 "청소년은 본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에 있어서 자신의 견해를 자유스럽게 표시할 권리를 보장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0년 11월 20일에 이 협약을 비준하여 이 아동권리협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 법률이다.

2003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두발문제, 체벌문제, 과도한 학습시간 등을 이유로 우리 나라를 법률적으로 '18세 이하의 어린이·청소년들의 인권 보장이 취약한 국가'로 규정했다. 이와 더불어 이들이 의사결정 과정과 정치적 활동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관련 법규를 개정할 것을 한국 정부에 권고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를 무시했다. '한국적 특수성'을 거론하며 아직까지 정치 활동의 자유는커녕 학생회 등의 자치활동조차 제대로 보장하고 있지 않다. 공직자 선거법과 학생회칙은 학생들의 정치 활동을 명시적으로 제한하고 처벌할 수 있는 등 청소년의 시민권은 철저히 박탈되어 있다. 대부분 학생회 회칙 또는 학칙에 학생의 정치활동, 외부 단체 가입과 활동을 금지하고 이를 징계 사유로 규정한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과 더불어 학생들의 큰 불만사항인 4·15 학원 자율화 조치는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가 아니라 잠잘 권리, 먹을 권리, 쉴 권리로 대표되는 '생존권적 권리'를 위협하는 것들이다. 이런 생존권적 요구를 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우리 정부는 이들에게 징계와 형사처벌 협박으로 그 대답을 돌려주고 있다.

쇠고기 수입협상 때는 세계적 의무 기준도 아닌 OIE를 보편기준이라고 강변하더니 청소년 인권 보장에는 국내적 특수성을 근거로 모르쇠하고 있는 우리 정부. 이중잣대를 보이는 이 현실이 너무나 서글프다.

한국 청소년은 정치적 판단력이 열등한가

미국·영국·프랑스·독일 등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18세만 되면 학생들도 당연히 투표권을 가지고 정치적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 우리 나라는 2005년에야 선거법 개정으로 19세가 투표권을 가질 수가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청소년의 정치활동은 제한받고 있고, 피선거권은 원천적으로 봉쇄되고 있다.

미국·프랑스·칠레·영국 등 전 세계의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거리에서 자신들의 의사 표현을 하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청소년들의 너무나 정당하고 평화로운 의사 표현인 촛불문화제 참가조차 원천 봉쇄하려고 혈안이다.

우리 정부는 그토록 맹신하는 '과학적 신념'에 따라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다른 나라 청소년보다 정치적 판단력이 열등하다는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으면 즉시 공개하길 바란다. 그런데 과연 우리 정부가 그런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을까? 이것도 세계 보편적 기준이라고 우길까?

청소년의 눈과 귀를 가리지 말고, 입을 열어주자

모든 창의성, 창조성은 눈과 귀를 통해서 들어갔다가 새로운 조합으로 입을 통해서 나온다. 그래서 청소년의 눈·귀를 가리고 입을 막는 것은 그들의 창의성과 창조성을 막는 것이다. 이는 곧 이 나라의 미래를 가로 막는 것이다.

장강(長江)의 흐름은 앞물이 뒷물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뒷물에 밀려서 앞물이 나아가는 것이다. 특히, 장강이 장애물에 가로막혔을 때 앞물이 뒷물을 끌고 그 장애물을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뒷물에 밀려서 앞물이 장애물을 넘어가는 것이 이치다.

인간의 역사 또한 앞세대가 뒷세대를 끌고 가면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뒷세대의 성장에 의해 앞으로 밀려서 발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의 뒷세대인 청소년의 눈과 귀를 가리는 것은 역사의 발전을 가로막는 것이고, 그들의 입을 가리는 것은 역사에 대한 반역 행위를 저지르는 것이다. 이번 광우병과 4·15 자율화 조치를 반대하는 청소년들의 촛불행렬의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

형사처벌과 징계 협박으로 청소년의 입을 막을 것이 아니라 역사의 발전과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그들 청소년들에게 말할 권리와 공간을 만들어 주자. 이것이 어른들의 몫이고 정부가 할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세계 각국의 똑같은 청소년들, 그러나 너무 다른 정부의 대응을 생각해보고자 한 글입니다. 과연 다른 나라에도 우리나라 학생들처럼 광우병 소고기를 학교 급식으로 쓰고, 0교시와 강제 야자, 우열반을 한다면 청소년들은 어떻게 할까요? 기자는 서울의 현직 교사입니다.

이 글은 민중의소리에도 송고하였습니다.



태그:#미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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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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