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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뒤에 배후 세력이 있다고요? 차라리 촛불 집회에 모인 사람들이, 양초를 많이 팔기 위한 양초 공장의 선동으로 모였다고 이야기하는 게 어때요?"

 

4만여 촛불이 출렁였던 지난 9일 서울 청계광장 앞, 18대 총선에서 강남갑에 출마해 화제를 모았던 힙합래퍼 김디지씨가 쏟아낸 말이다. 수만 명의 국민들이 양초를 들고 촛불 문화제에 나서는 모습을 지켜보며 "야 정말 이거 양초공장 부자 되는 거 아니야?"라는 의문은 누구나 한 번쯤 품어봤을 것이다.

 

정말로 양초공장 사장님은 '떼돈'을 벌었을까? 또한 쇠파이프와 화염병을 제치고 새로운 '투쟁의 도구'이자 '혁명의 횃불'이 된 양초는 어떻게 만들어져서 광화문 현장으로 배달되는 것일까? 그리고 촛불 공장의 종업원들이 바라보는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 문화제는 어떤 모습일까?

 

 

16일 오전, 광화문 촛불 문화제 현장에 수만 개의 양초를 납품하는 경기도 파주 OO양초 공장을 찾았다. 공장은 한 대의 버스만이 지나가는 인적 드문 산골 마을에 위치하고 있었다. 화사한 5월의 봄 날씨 만큼이나 기자를 맞는 양초공장 식구들의 표정도 환했다. 이곳의 종업원은 대표인 권혁용(62)씨를 포함하여 총 7명.

 

OO양초 권 대표를 만난 순간, 제일 궁금했던 질문부터 던졌다.

 

"촛불 집회의 배후가 사장님이라는 소리가 있던데 정말인가요?(웃음)"

 

이 말을 들은 권 대표는 껄껄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정말 그런 소리가 있느냐"고 되물은 뒤, "그냥 우스개 소리겠지"라고 짧게 말하며 웃어 넘겼다.

 

인터넷 통해 납품하게 돼... "매출 올랐으나 '떼돈' 번 것은 아니다"

 

 

권 대표와 촛불 문화제의 인연은 인터넷을 통해 이뤄졌다. 지난 10일부터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측에서 인터넷 쇼핑을 통해 양초를 주문했고, 그때부처 OO양초는 촛불 문화제에 물건을 납품하기 시작한 것. 단가는 양초 하나당 110원이다. 2004년 '노무현 탄핵 집회' 때나,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집회' 때는 양초 납품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양초산업은 과거에 비해 많이 퇴보한 것이 현실이다. 35년간 양초공장에서 일했다는 권 대표는 "15년 전만 하더라도 지하방 같은 데서 전기가 나가면 양초를 많이 쓰고 했지만 지금은 종교단체나 장례식 등 꼭 써야 할 때가 아니면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종교를 가진 가정이 아니면 일반 가정집에서는 양초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렇다면 촛불 문화제를 통해 양초산업도 새로운 부흥기를 맞는 것은 아닐까?  

 

권 대표는 "촛불 집회 이후 공장이 이전보다 바빠지고 매출이 오른 것은 사실이지만 누리꾼들이 말하듯 떼돈을 벌었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라며 "워낙 공장 자체가 과거에 비해 축소되었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많이 나간다고 해서 '부흥'을 한다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 대표는 "매출이 과거에 비해 2배, 3배 오른 것이 아니라 평소보다 1/3 정도 오른 수준"이라며 "공장 규모에 비해 많이 나가고 있지만 양초의 원료인 석유 값이 워낙 올라서 큰 매출이 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작년까지만 해도 석유 1톤이 80만 원정도 했던 것이 이제는 200만 원 가까이 간다는 것.  

 

"촛불 문화제 시작 이후 주말도 없이 바쁘다"

 

양초를 직접 생산하는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6명 종업원들의 움직임이 매우 분주해 보였다. 이날 '촛불 문화제'에 쓰일 양초를 시간에 맞춰 현장으로 보내주기 위해 부지런히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주조판에서 양초를 빚는 종업원, 완성된 양초를 옮겨다가 박스에 넣는 종업원, 그리고 박스를 포장하는 종업원까지 쉴 새 없이 바쁜 모습이었다.

 

생산 과정은 비교적 간단했다. 양초는 석유에서 뽑아낸 파라핀을 이용하여 만든다. 파라핀을 가열하여 녹인 후, 양초 모양의 성형판에 넣는다. 성형판 안에서 가열된 열이 냉각되면 서울 청계광장을 환하게 비출 하나의 양초가 완성된다.  

 

완성된 양초는 옆으로 옮겨다가 차곡차곡 박스에 담은 뒤, 끈으로 동여맨다. 그러고는 공장 앞에 있는 용달 트럭에 실은 뒤, '촛불 문화제' 시간에 맞춰 직접 서울 청계광장 앞까지 배달한다. 배달된 양초가 시민들의 손에 쥐어지면 비로소 '뜨거운 투쟁의 도구'로 둔갑하는 것이다.

 

5년간 이곳에서 일했다는 오지연(48)씨는 "촛불 문화제가 시작된 이후로 엄청 바빠졌다"며 "평소보다 두 배는 일이 많아진 것 같다"고 밝혔다. 오씨는 "원래 내일(토요일)은 노는 날인데 내일과 모레도 계속해서 나와서 일해야 할 것 같다"며 투정을 부렸으나 얼굴 표정은 썩 나쁘지 않아 보였다.

 

"참여하지 못해서 부끄럽다, 우리는 뒤에서 후원해 주는 것이라 생각"

 

그렇다면 촛불공장 식구들이 바라보는 '광우병 소 반대 촛불 문화제'는 어떤 모습일까?

 

종업원 오지연(48)씨는 "당연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전제한 뒤, "정말 박수를 쳐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오씨는 "양초 만드느라 바빠서 참여를 하지 못한다는 게 참 부끄럽다"며 "나는 뒤에서 후원해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오씨는 "30개월 이상의 소를 들여온다면 국민들로서는 안 먹을 수도 없는 상황이 되는 것 아니냐"며 "국민들이 불안한 마음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는데 정부가 이를 막으려고 하는 것은 납득이 안 된다"고 말했다.

 

4년간 촛불공장에서 일했다는 박은영(36)씨는 "폭력적이지도 않고 점잖게 촛불을 들고 자발적인 시위를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이번 촛불 문화제는 정부와 일부 언론이 말하듯 정치 세력의 선동이라기보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지는 것처럼 보인다"고 밝혔다.

 

1년 동안 이 곳에서 일했다는 전순영(54)씨도 "국민들이 이렇게 나서는 게 맞다고 본다"며 "우리 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음식의 문제인데 이대로 방치해 둘 순 없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유난히도 날씨가 좋았던 5월의 금요일, 한적한 시골마을에 위치한 양초공장 견학은 종업원 오지연씨의 "너무 화나요. 강도 높게 좀 써주세요"라는 말과 함께 마무리되었다. 날마다 청계광장에 모여 촛불을 드느라 바쁜 시민들처럼, 주말도 없이 '국민 건강권 지킴이'를 만들어 서울로 배달하고 있는 양초공장의 하루도 무척이나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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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양초공장, #촛불 문화제, #광우병 쇠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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