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파워퍼프걸 팀의 공연
 파워퍼프걸 팀의 공연
ⓒ 이재덕

관련사진보기



최근 인상깊게 본 단막극을 간단히 소개해 보고자 한다.

#1 2008년 어느 날

획기적인 프로그램이 한 남성박사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키워드만 집어넣으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빤한 얘기 제조기'가 그것이다. 여성조수가 '사랑', '구두', '성공'이라는 키워드를 입력한다. 순식간에 프로그램은 '현대판 신데렐라'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다들 짐작 하셨겠지만 프로그램이 만들어낸 것은 유리구두를 신고 '잘 나가는 남자'를 잡은 어떤 여자의 빤한 이야기.

#2 남자, 책, 성공

이번엔 '남자', '책', '성공'이란 단어를 입력해본다. 프로그램이 어떤 이야기를 보여줄까? 중절모를 쓴 남자가 지팡이를 짚고 뒤뚱뒤뚱 걷는다. 이 남자 노래 부르며 말하길, 열심히 보던 책이 그만 비에 젖어버렸단다. 그 책은 빌린 책이었고 책주인에게 가 사실대로 이야기 하고 대신 일을 해주었단다. 그러고는 그 남자. 대통령이 되었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이야기였다.

#3 여자, 책, 성공

'남자'라는 키워드를 '여자'로 바꾸어 입력하니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주인공인 '테레사'가 등장한다. 책을 좋아하는 그녀. 하지만 웨이트리스인 그녀의 말을 들어보니 그녀에게 있어 성공은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닌 듯하다. 테레사 왈, 그녀에게 성공이란 '토마스'라는 남성의 사랑을 얻는 것이란다.

▲ 단막극 '빤한얘기제조기-히스토리'
ⓒ 이재덕

관련영상보기


이처럼 빤한 얘기만 생산해내는 이 제조기는 결국 남성(he)들의 이야기(story), 곧 히스토리(history)만을 생산해내고 있던 것이다.

이러한 전개에 염증을 느낀 여성 조수. '남성들의 이야기'가 아닌 '여성의 이야기'를 꿈꾸기 시작한다. 히스토리(history)가 아닌 허스토리(herstory)를 시작하려는 것이다.

자, 스포일러성 기사는 여기서 그만두어야겠다. 백문이 불여일견. 이 동영상을 보시라. 행여나 하는 마음에 한 가지 여러분께 당부하고 싶은 것은 버퍼링이 다소 심할지라도 이 단막극의 결론은 꼭 보시라는 것.

 "남자 이야기는 그만하고 여자 이야기를 하자"

이 단막극은 16일 저녁, 문화일보홀에서 열린 제10회 안티페스티벌 대학생 참가팀인 이화여대 '파워퍼프걸'(김상이 06학번, 하지현 06학번, 조소희 06학번)의 공연이다. 그들의 공연이 막을 내리면서 이런 문구가 무대 화면에 뜬다.

"오류투성이의 히스토리가 종료되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을 상상력이 가득한 허스토리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1회였던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로부터 시작하여 벌써 10회로 접어든 안티페스티벌. 위의 문구야말로 주제의식 명확한 안티페스티벌의 올해 관심사항을 잘 드러내 주는 문장이다. 축제의 제목도 재미있다. '고우 허스토리, 스탑 히스토리'(Go herstory, stop history). 문화일보홀에 모인 이들은, 지금까지의 역사가 남성들만의 이야기로만 이루어졌다고, 이젠 여성들의 이야기를 찾아야 할 때라고 말한다.

"저희(이번 행사를 주관하는 '문화연대 이프')가 지난번 (화폐도안 인물선정과정에서) 신사임당을 반대할 때 욕을 엄청 먹었잖아요? 그럼 신사임당과 같은 현모양처는 빼는 대신 누구를 넣을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넣을 인물이 없는 거예요. 정말로 여성 중에 훌륭한 인물들이 없었겠어요?  지금까지의 역사를 모두 남자들의 관점으로만 보고 썼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은 거지요. 하지만 앞으로 우린 그런 여성들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오늘 이 자리가 그 시작이 될 거예요."

엄을순 집행위원장(사단법인 문화미래 이프 이사장)이 말하는 이번 페스티벌의 취지다. 예상보다 관객들이 많아 좌석이 부족했다며 아쉬워하는 그녀. 연방 싱글 벙글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관객 모두 신이 났다. 공연이 다 끝났는데도 신나는 음악은 계속 흘러나온다. 관객, 자원활동가, 행사주최자, 참가자 모두 춤 삼매경에 빠져있다.

모든 공연이 끝난뒤...
 모든 공연이 끝난뒤...
ⓒ 이재덕

관련사진보기



축제가 끝나고 춤 삼매경에 빠진 관객들과 참가자들
 축제가 끝나고 춤 삼매경에 빠진 관객들과 참가자들
ⓒ 이재덕

관련사진보기


제10회 안티페스티벌에서 '허스토리 상'을 수상한 파워퍼프걸팀

안티 페스티벌 엄을순 집행위원장과 파워퍼프걸(왼쪽부터 엄을순, 김상이,조소희, 하지현씨)
 안티 페스티벌 엄을순 집행위원장과 파워퍼프걸(왼쪽부터 엄을순, 김상이,조소희, 하지현씨)
ⓒ 이재덕

관련사진보기


축제가 끝나고 파워퍼프걸 팀과 인터뷰를 했다. 이화여대에 재학중인 김상이(의류직물06), 조소희(법06), 하지현(국어국문06)씨는 단막극 '빤한 얘기 제조기'로 '허스토리 상'을 탔다. 이들은 이번 참가팀 중 유일한 대학생 팀이며 참가팀 중 제일 막내에 속한다.

그래서 귀여움을 더 받아 좋았다는 '파워퍼프걸'. 이들 외에도 웃자상에 '춤추는 허리', 뒤집자상에 '난리부르스', 놀자상에 '막춤공연단' 그리고 대상인 이프상을 강영씨가 수상했다.

- 팀이름이 매우 재밌다. '파워퍼프걸'(미국 인기TV애니메이션의 세 주인공)인데 어떻게 이 이름을 팀명으로 사용하게 되었나?
"친구가 저희를 부를 때 '파워퍼프걸'이라고 부르거든요. 저희 셋이 언제나 같이 다니고, 만화에서 보면 '파워퍼프걸'이 무적인데다가 활기찬 아이들이거든요. 저희 셋 성격하고 많이 비슷해요."

- 이번 안티페스티벌은 어떤 계기로 참여하게 되었나?
"저희가 여성학 수업을 듣고 있어요. 팀 과제 주제를 정해야 하는데 마침 신문에서 안티페스티벌 참가공고를 봤어요. 팀 과제로 이걸 하면 되겠다 싶어 꿩먹고 알먹고 하는 생각에 얘들한테 하자고 했어요. 새로운 걸 도전하길 좋아하는 친구들이라 승낙할 줄 알았지요." 

- 오늘 공연을 위해 언제부터 연습을 했나?
"3월 말에 시나리오 작업을 했어요. 4월 중순쯤에 안티 페스티벌 오디션을 봤고요. 학교 중간고사 끝나자마자 한달 내내 공연 연습했어요."

- 공연을 본 가족들의 반응은?
상이= "어머니는 안 오면 후회할 뻔 했다고 하시고, 아버지는 새로운 세계를 접한 것 같다고 하세요. 여느 연극과는 조금 색다른, 주제가 명확한 그런 연극이었다고요."

내년에도 안티페스티벌 공연에 참가할 거냐는 물음에 다들 "잘 모르겠다"며 빙그레 웃는다. 소희씨는 다음에는 가디스(안티페스티벌 자원활동가)로 활동해보고 싶다고 한다. 그런데 파워퍼프걸 여러분. 내 솔직한 바람을 말하자면 내년에도 여러분의 공연을 보고 싶네요(빙그레 눈웃음).


태그:#안티페스티벌, #파워퍼프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