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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삼동에서 직장을 다니는 이재혁 (37세, 남)씨는 14일 오후6시 정각이 되자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평소 회사업무가 많아 야근을 많이 하는편이였지만 이날만큼은 '칼퇴근'을 하
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한 이씨는 기다리고 있던 딸 이하은(9세, 초등학교 2학년)양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리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촛불문화제" 행사장으로 향했다.

 

이씨가 이 날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리는 촛불문화제 행사에 참가했던 이유는 딸과 했던 약속 때문이다.

 

며칠전 초등학교 2학년에 다니고 있는 딸의 말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는 이씨는 "인터넷과 TV를 통해 '광우병 소고기' 이야기를 보고 들은 둘째딸 하은이가 "아빠, 나 미친소 먹기 싫어요, 우리도 다른 사람들처럼 촛불들고 미친 소 못 들어오게 막으러 가요"라며 촛불행사에 참여하자고 먼저 제안했다"고 한다.

 

딸아이의 제안에 이씨는 꼭 함께 나가자고 약속을 했고, 이 날 딸아이의 손을 잡고 시청으로 향했다.

 

 

지하철을 타고 시청역으로 향하던 중 딸 하은이가 주머니 속에 꼬깃꼬깃 접혀져 있던 하얀종이를 아빠 앞에 펼쳐보였다. 그 하얀 종이에는 "광우병은 술·담배보다 나쁜 거이에요, 나한테 주지 마세요"라고 씌어있었다.

 

"'솔직히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는데 먼저 행동에 옮기려는 딸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사실 많이 당황했고 부끄러운 마음이 생겼다"는 이씨는 딸아이와의 약속 이후 "내 딸 하은이가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하고 자녀를 가졌을 때 광우병에 걸려 시름시름 죽어갈지도 모른다고 생각에 겁이 났다.

 

단 100억분의 1의 확률이라도 그 확율이 내 딸아이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생각에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고 한다.

 

이씨는 "난 학교를 다닐때 데모 한 번 하지 않았다, 반미주의자도 아니다, 그런 내가 촛불행사에 나와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를 외치게 될 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정부와 일부 보수신문들이 이런 나를 '반미주의자'로 몰아간다면 내 딸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난 떳떳한 반미주의자가 되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9살짜리 딸아이가 먼저 이 곳에 오자고 했다, 날 이 곳으로 나오게 한 배후세력은 바로 초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9살짜리 내 딸아이다" 라며 정부와 일부 보수신문에서 제기하고 있는 배후세력설을 비웃었다.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오랜시간동안 촛불을 들고 단상을 바라보는 하은이의 눈빛은 반짝이고 있었다. 구호와 함성소리가 광장을 뒤덮고 있었지만 묵묵히 단상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였다. 아빠와 함께 촛불을 높이 들고 구호도 따라해 보지만 처음이라 그런지 어색하기에 그지 없다.

 

아빠와 함께 촛불문화제 행사에 참가한 하은이는 참여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수염기른 국회의원 할아버지도 나오고 '탄핵'을 외치는 사람도 있고 '파업을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광우병에 걸린 소를 먹으면 죽게 된다는 것은 확실히 알아들을 수 있었어요"라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광우병 걸린 소를 무서워하고 있는데 그 무서운 쇠고기를 왜 자꾸 우리나라에 들여오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어린이답지 않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씨는 밤10시가 넘어서자 딸아이와 함께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훗날 국민들의 힘으로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막아낸다면 딸아이에게 '네가 높이 치켜들었던 작은 촛불이 큰 힘이 되었다'고 말해주고 싶다"며 "17일에는 아들과도 함께 행사에 참여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발걸음을 옮겼다.

 

 


태그:#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쇠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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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이 좋아 사진이 좋아... 오늘도 내일도 언제든지 달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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