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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13일 미국산쇠고기 판매를 시작한 한 대형마트 매장 수입육 코너에 미국산쇠고기가 진열되어 있다.
 지난해 7월 13일 미국산쇠고기 판매를 시작한 한 대형마트 매장 수입육 코너에 미국산쇠고기가 진열되어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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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농업 하시는 분들, 소 키우시는 분들은 보상을 하면 숫자가 적으니까 될 것이고. 도시 근로자들은 질 좋은 고기를 값싸게 먹게 된다. 싫으면 안 사먹으면 된다."(4월 21일 쇠고기 협상 타결 후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

"미국뿐 아니라 모든 나라에서 들어올 수 있는 건 다 개방하는 게 맞다. 그 다음은 소비자 몫이다."(4월 27일 재정전략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

"30개월 이상의 쇠고기를 수입하느냐 마느냐는 민간 수입업자들이 결정할 일."(5월 6일 청와대 대변인의 발언 )

"물건을 사는 사람에게 선택권이 있는 것이다. 위험하면 우리가 안 먹는 것이며, 수입업자도 장사가 안 되면 안 들여온다."(5월 8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30% 이하(여의도연구소 28%, CBS 25.4%)로 떨어졌다. 취임한 지 100일도 안 된 집권 초반에 이렇게 급격하게 지지율이 떨어진 정권은 역사상 전무하다. 전인미답의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시장만능주의자(이하 시장주의자)들이 '시장경제'를 제대로 모르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광우병 사태가 그 단적인 예다.

'미국산 쇠고기' 사태를 통해 본 시장 실패

들여올 수 있는 모든 것을 개방하여 시장에 풀어놓고 소비자들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주장은 전형적인 시장주의자들의 본색, 즉 '시장본색'이다. 사실 시장주의자들은 시장에 대해 종교와 같은 신앙심을 보인다. 그 신앙의 기저에는 바로 시장 효율성 명제가 함축되어 있다.

시장 효율성에 대한 아담 스미스의 주장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이 이른바 '파레토 효율성' 명제다. 즉 시장경제에서는 가격기구를 통해 다른 사람의 후생을 악화시키지 않고는 어느 누구의 후생도 개선될 수 없는 최적의 상태가 달성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파레토 효율성과 같은 이상적인 결과는 현실에서 결코 달성될 수 없다. 왜냐하면 파레토 효율성은 완전경쟁이 보장되며 외부성과 공공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까다로운 조건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시장주의자들은 이론과 현실의 차이를 모르는 것 같다. 이론과 다른 현실의 모습 중 '외부성'을 중심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판단해보자.

외부성이란 어느 한 경제주체의 행동이 타인의 후생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말한다. 쉽게 말해 그것이 긍정적이든지 부정적이든지 원래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가 발생하는 것을 뜻한다. 시장주의자들은 외부성의 발생을 극히 예외적 상황으로 취급하지만, 수많은 경제주체들이 상호작용하는 현실 경제에서 외부성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특히 광우병 쇠고기 수입의 경우 경제적 손실을 초래하는 '부정적' 외부성(외부불경제)이 수없이 발생한다.

수많은 외부불경제를 유발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첫째, 국민을 대표한다는 정부가 국민과 아무런 소통이나 합의도 없이 일방적, 졸속적 그리고 굴욕적인 협상을 실시한 것 자체가 국민 개개인의 자존심과 국가의 자주성을 훼손시켰다. 소비나 생산 등 경제 행위가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경제적 계약행위인 협상의 결과 발표만으로도 개인의 효용, 국가의 위상에 해를 끼치는 외부성을 발생시켰다.    

둘째, SRM(특정위험물질) 함유가 높은 쇠고기를 폐기하는 것이 전 사회적으로 이득임에도, 미국의 축산업자와 수출업자들이 사적인 이득을 위해 SRM과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 수출을 늘리게 되었다. 이는 생산에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막는 외부불경제가 발생함을 뜻한다.

셋째, 미국에서도 거의 폐기처분되고 있는 30개월 이상의 쇠고기가 헐값에 수입되면서 '이윤'이라면 지옥까지도 쫓아가는 시장원리에 따라 국내에 유통될 것이 분명하다. 시장주의자들의 주장처럼, 더 싼 가격에 더 많은 소비자를 유혹할 수 있는 '발견'의 기회가 생기면 그런 부분이 이윤을 획득하는 방식으로 시장력은 자원을 배치하게 된다. 이에 따라 유통영역에서도 외부불경제가 발생하게 된다.

넷째, 국민의 비판과 저항에 궁색해진 정부는 모든 음식점에 원산지 표시를 강화하고 미국의 도축장에 검역원을 투입하겠다는 졸속적인 대책을 발표했다. 수백만 개나 되는 음식점을 단속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광우병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았더라면, 더 생산적인 곳에 투입되어 경제적 효과를 낳을 수 있는 자원들을 단속과 검역에 동원해 엄청난 비용까지 들이게 된다. 이는 분명 밑져도 한참 밑지는 장사이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형국이며, 있는 둑을 터놓고 강가에서 모래를 채취하여 모래주머니를 쌓는 격이다.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과 김성이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이 2일 오후 서울 세종로 외교통상부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관련 담화문을 발표한 뒤 강문일 국립수의과학검역원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과 김성이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이 2일 오후 서울 세종로 외교통상부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관련 담화문을 발표한 뒤 강문일 국립수의과학검역원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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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시장경제의 전제 조건

다섯째, 더군다나 수입된 쇠고기에 대한 정확한 정보에 대해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는 정보 격차가 발생한다. 즉 30개월 이상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오직 축산업자만이 알게 되는 정보 비대칭성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축산업자, 도축업자, 수출업자, 수입업자, 그리고 유통과 판매에 이르기까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보다는 은폐, 위장 혹은 둔갑의 사례가 흔히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축산업자-도축업자-수출업자-판매업자-수입업자-유통업자-판매자에 이르는 수많은 경로를 따라 최종 소비자에 이르기까지 정보가 왜곡되지 않고 안전하게 전달할 책임을 국민은 정부에 위임한 것이다. 또한 위험을 흡수하고 위험에 대한 노출을 가능하면 줄이기 위해 제약을 부과할 책임도 정부에 위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소는 안전하다'는 주술만 외우고, 나머지는 민간과 소비자가 알아서 하는 것이 원칙이라니 이들은 시장경제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작자들이다.

여섯째, 광우병 쇠고기를 수입하여 최종소비자가 소비하게 될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될 지를 살펴보자. 정부 행위에 대한 불신과 광우병 쇠고기에 대한 위험이 확산되면 쇠고기 관련 업체들이 '유탄'을 맞을 수 있다. 이미 한우 값은 폭락했으며, 유통업체에 대한 소규모 정육점 및 음식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일곱째, 혈액으로도 전염되는 광우병 쇠고기 소비는 타인의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외부불경제를 유발한다. 만약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발생하거나 인간 광우병 환자가 발생하게 되면 한국 사회에는 엄청난 혼란과 사회적 불신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조류독감이 발생한 것이 언제인데 이제 서울 한복판까지 상륙했다하니, 현 정권의 위기관리와 통제 능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광우병 쇠고기 수입 논란으로 사회적으로 엄청난 비용을 치르고 있는 것과는 비교도, 계산도 불가능한 천문학적인 비용임에 틀림없다.

시장주의자들이여, 시장경제의 현실을 제대로 알아라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미국의 축산업자들에게는 엄청난 이득이지만, 한국의 축산업자와 소비자는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만 한다. 시장경제를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밑지는 장사를 하는 것이다. 통상 시장경제에서는 구매자가 우월적 지위에 서는 것이 일반적인데도, 이렇게 졸속적인 협상결과를 도출한 것은 미국 앞에서만 서면 너무도 작아지는 뿌리 깊은 미국숭배 근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국민의 속은 아랑곳하지 않고 잘된 협상이라고 자랑하고 박수까지 쳤겠는가. 한국사회에서 시장을 숭배하는 자, 미국을 숭배하다 보니 이런 아둔한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 정부의 시장주의자들은 민영화, 감세, 규제완화를 핵심 경제정책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정책들은 재벌과 소수 특권층에게만 유리하며 국민경제에는 지극히 해로운 정책들이다. 오죽했으면 집값을 올리기 위해 뉴타운 정책을 추진한다는 정신 나간 발언들을 서슴없이 하겠는가. 이 자들은 자신들이 숭배하는 미국에서 왜 어처구니없는 서브프라임 사태가 벌어졌으며, 왜 그렇게 양극화가 심해졌는지 전혀 모르는 자들이다.

세상은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을 이 정권은 되새겨야할 것이다. 이들은 시장경제의 작동 원리와 시장실패에 대응하여 정부규제가 왜 필요한지를 배울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밑지는 장사나 투기에만 정신이 팔려 심각한 경제위기를 초래하게 되지 않을까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82%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와 관련해 재협상이 필요하며, 75.1%는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지 않다는 우려를 보이고 있다(5월 7일 동서리서치 결과). 쇠고기 수입이 왜 문제가 되며 나 자신과 국가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국민은 제대로 알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작 시장주의자들은 시장경제를 몰라도, 우리 국민들은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말이다.

정부는 15일로 예정된 농림부 고시를 연기하고 재협상만이 이 난국을 벗어나는 길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만약 재벌총수가 노동자를 억누르듯이 국민의 저항을 무시하고 짓밟는다면 정부는 더 큰 저항과 위기에 직면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옛말에도 권력은 움켜쥘수록 빠져나가고 베풀수록 들어온다는 말이 있지 않았던가.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새사연)의 대안정책 웹사이트 이스트플랫폼(www.epl.or.kr)에도 실렸습니다. 기사를 쓴 여경훈 기자는 새사연 연구원입니다.



태그:#미국사 쇠고기 수입, #시장주의자, #외부불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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