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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달마산 미황사 모습
 해남 달마산 미황사 모습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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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땅끝 미황사에 가면 대웅전 앞에 어성초가 심어져 있다. 어성초는 산속 음지진 곳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우리나라 남부지방과 제주도, 울릉도에서 자라며 붉은 색 줄기에 이파리가 고구마 잎사귀를 닮았다. 약간 맵고 독성이 있는 약초이다.

줄기와 잎에서 생선 비린내 같은 냄새가 난다는 뜻에서 어성초(魚腥草)라 하고, 이외에 십약, 중약초, 즙체 등으로 불리며 항균과 해독작용이 강해 항암효과가 있다. 특히 소염작용이 강해 폐렴에 효과가 있고 아토피와 여드름 치료를 위한 비누에도 사용된다.

어성초 - 항균과 해독작용이 강해 항암효과가 있다. 아토피와 여드름 치료를 위한 어성초비누의 원료로 쓰인다.
 어성초 - 항균과 해독작용이 강해 항암효과가 있다. 아토피와 여드름 치료를 위한 어성초비누의 원료로 쓰인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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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진전 앞 텃밭에는 방구벌레 냄새가 나는 고소, 특이한 향기가 나는 당귀, 천궁 등의 약초와 여러 가지 채소들이 심어져 있다.

연휴를 맞아 미황사 템플스테이에 참여했다. 처음 가는 길이라 이정표만 바라보고 물어물어 해남읍을 벗어날 때 '내가 제대로 왔나' 은근히 걱정이 됐다. 하지만 안내해 준 방향으로 차를 몰고 가는데 외국에서나 본 듯한 산의 모습이 나왔다.

금강산 모습 같기도 하고 알프스 산 같기도 한 아름다운 산봉우리들을 보며 '명산이구나! 저 아래 어딘가에 미황사가 있겠지' 추측하며 꼬불꼬불한 시골길을 운전하고 가는데 아니나 다를까 미황사라는 이정표가 보였다.

미황사는 신라 경덕왕 749년에 창건한 고찰로 창건에 얽힌 설화가 재미있다. 돌로 만든 배가 땅끝의 포구로 다가왔다 멀어지기를 반복하더니 의조 스님이 기도 올리고 맞아들이자 바닷가에 닿았다.

그런데 갑자기 배에 실려 있던 흑석(黑石)이 벌어지면서 그 속에서 검은 소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커다란 소가 되었다. 그날 밤 의조 스님 꿈에 "나는 본래 우전국(인도) 왕으로 경전과 불상을 모실 곳을 구하다가, 달마산에 이르러 1만불이 나타나기에 여기가 마땅한 장소라 생각하였다. 소에 경을 싣고 가다가 소가 누워 일어나지 않는 곳에 경전과 불상을 봉안하라"고 하였다.

의조스님은 소가 누운 자리에 '미황사'를 지었다. 소의 아름다운 울음소리에서 '미'를 취하고, '황'은 금인(金人: 부처를 일컫는 말)의 금빛을 취해 '미황사'라 이름 지었다. 고려시대에는 중국의 남송에서 달마산의 명성을 듣고 일부러 참배하러 올 만큼 널리 알려진 절이다. 지금의 대웅전은 1754년 영조 임금 때 지어진 법당으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응진당, 대웅전 안에 안치된 괘불 또한 보물로 지정된 유물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배낭과 가방을 들고 종무소 템플스테이에서 수속을 밟고 방을 배정받았다. 내가 2박 3일 동안 머무르는 숙소는 '향적당(香積堂)'이다. 향기를 쌓는 곳. 이름마저 정겹다. 댓돌 마루에는 깨끗한 하얀 고무신과 등산화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두 평 남짓한 깨끗한 방에서는 아직도 장판에서 콩기름 냄새가 묻어난다. 

달마산 미황사 찻집
 달마산 미황사 찻집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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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는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사람들이 지켜야 할 내용들이 적혀 있다. 새벽 4시에 예불 참선이 있고 예불이 끝나면 대웅전에서 참선을 하거나 앞마당을 돌며 자유산책을 하는 행선 등의 시간이며, 휴대폰 인터넷 사용을 금지하고 밤 9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 반까지 묵언수행 등을 해야 한다. 특히 밖을 내다볼 때는 문만 열고 내다보지 말고 반드시 마루로 나와 쳐다보라고 적혀있다. 이는 남을 배려하라는 의미로 여겨진다.

저녁 공양을 하기 전 대웅전에서 약간 떨어진 부도전에 갔다. 부도는 스님들의 사리나 유골을 안치한 곳이다. 부도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찰의 높은 격을 나타낸다. 미황사에는 부도전이 두 군데 있다. 거의 모든 부도에는 살아생전 사용했던 스님들의 법명이 적혀 있거나 동물 그림들이 새겨져 있었지만 독특한 부도가 눈에 띄었다.

25기가 있는 미황사 부도전에는 독특한 부도가 있다. 중앙에 보이는 부도에는 법명이나 그림이 전혀 새겨져 있지 않았다.
 25기가 있는 미황사 부도전에는 독특한 부도가 있다. 중앙에 보이는 부도에는 법명이나 그림이 전혀 새겨져 있지 않았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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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사각형 형태의 부도에는 어떠한 글씨나 문양도 보이지 않고 계곡의 물결에 깎인 흔적이 그대로 묻어난다. 재질도 현무암이나 사암형태로 다른 부도와는 다르다. 세찬 물살에 오랫동안 깎인 모습은 나뭇가지 형태로 무늬가 나있고 아무리 둘러봐도 글씨나 문양은 보이지 않는다. 지나가는 스님에게 이유를 물은 즉

"나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름이 있고 없고가 뭐 그리 중요합니까? 법신에게는 아무런 차별이 없어요. 중생과 부처의 차별도 없습니다."

우문에 현답이 돼 돌아와 말문이 꽉 막혔다. 법신이라는 것은 그 모든 것의 근본이 되며 질서와 조화를 이룩하는 말할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생도 떠나고 멸도 떠난 진리 당체이다. 하나의 먼지나 삼천대천세계의 우주나 차별이란 추호도 없다. 불생불멸이고 불래불거이다.

저녁 공양을 마치고 혜오 스님과 서울에서 왔다는 아주머니, 광주시내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친다는 여선생님과 함께 차를 마시며 간단한 대화를 하곤 숙소로 향했다. 밤 10시에는 불을 꺼야 하는 수칙이라 불을 껐지만 새벽 0시가 다 돼야 잠자리에 들던 습관이 있어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하지만 내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전혀 경험해보지 않은 예불에 참석해야 한다.

스님과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불자들을 위한 정갈한 식단
 스님과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불자들을 위한 정갈한 식단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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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일까? 매 2시간마다 법고 소리와 목탁소리에 잠을 깨 시계를 확인하고 다시 잠들었다. 이것도 수행의 일종일까? 다음날 스님에게 물었더니 그럴 리가 없단다. 환청이었을까? 새벽 4시 도량석이 시작되며 목탁소리가 크게 들려 잠에서 깼다. 도량석은 매일 새벽에 도량을 돌고 게송을 외우면서 기상시간을 알리고 도량을 청정히 하는 의식이다.

도량석의 목탁소리는 중생이 놀라지 않고 잠을 깨도록 하기 위하여 작은 소리로 치기 시작하여 차차 커진다. 도량석이 시작되면 자리에서 일어나 세면을 마치고 법당에 가서 자리에 앉아 예불을 기다린다.

코끝을 자극하는 향냄새와 범종소리가 웅~웅~웅 울릴 때마다 가슴속에서 뭔가가 공명함을 느낀다. 지금껏 스님들이 독경할 때 나무아미타불만 외치는 소리만 들렸는데 오늘 처음으로 중생의 소리가 들린다. "고통의 바다를 건너 열반의 세계로…"라는 독경소리가 들렸다.

저멀리 진도가 보이는 미황사 황혼
 저멀리 진도가 보이는 미황사 황혼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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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 마을인 해남 땅끝인지라 유난히도 맑은 밤하늘의 별이 반짝이고 소쩍새와 바람소리가 묘한 감정을 불러온다. 인간이 얼마나 사람이나 동물 사물에 대해 선입견으로 판단하며 미워하는가? 내안에 네가 있고 네 안에 내가 있다는 데….

죽이고 싶도록 증오하던 자가 교통사고가 났을 때 복잡 미묘한 감정에 빠졌었다. 업보일까? 천형인 나병으로 소록도에 계시다 모든 인연을 끊고 기독교에 귀의하여 혼자 돌아가셨다는 할머니는 자식과 손주가 보고 싶어 어찌 사셨을까? 딸을 나무랐다가 집에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아 온갖 몹쓸 생각에 빠져 걱정 했는데….

중생에게는 오욕칠정이 떠나질 않는가? 고(苦), 집(集), 멸(滅), 도(道)는 나 같은 중생들에는 숙명인가? 부처님 같은 성불한 사람만이 열반에 이르고 언제나 평안과 기쁨이 넘치는 영원한 불국정토(佛國淨土)에 이를 것인가?      

주지이신 금강스님은 "내 마음 속에 구름이 있으면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광명한 태양을 볼  수가 없다"며 "내 참 주인공은 무엇일까?"로 화두를 주셨다.

 오가는 길손들의 목을 축이는 약수물
 오가는 길손들의 목을 축이는 약수물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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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해보는 합장과 오체투지로 하는 큰절이었지만,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예불을 마치고 사람들은 깜깜한 밤하늘을 보며 대웅전 앞 도량을 돌며 자유수행을 한다.

아침 공양을 마치고 달마산에 올랐다.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천개나 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다. 그 연유로 대웅전에는 대들보와 기둥에 천개의 부처님을 그려놨다던가! 부처님을 닮은 바위, 사람을 닮은 바위 등, 여러 가지 형상을 한 바위들이 금강산에 올랐던 느낌이다.

기묘한 바위로 아스라히 바다건너 보이는 곳이 완도이다
 기묘한 바위로 아스라히 바다건너 보이는 곳이 완도이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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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뒤쪽으로는 완도가 보이고 앞쪽으로는 진도가 보인다. 여기가 바로 한반도의 땅끝이다. 부드러운 아기 손과 같은 감촉의 새순들과 바다 내음, 싱그런 초록빛 새싹들이 정말 아름답다. 혼자 보기는 아까운데 혼자 왔다. 어제 오후 달마산 찻집에서 들었던 범능 스님의 노래가 생각난다.

가라 좋은 벗 있으면 둘이서 함께 가라
가라 좋은 벗 없으면 버리고 홀로 가라
달빛엔 달처럼 별빛엔 별처럼 바람 불면 바람처럼 가라  

내가 나에게 등불이 되어 그대 홀로
등불이 되어 함께 못 가도 같이 못 가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미황사에는 서울에서 4학년 때 전학와 해남서정분교 6학년에 재학 중인 미연이가 산다. 해맑은 얼굴에 지혜로운 아이다. 영국에서 3년 동안 학교를 다니고 서울로 돌아왔는데 적응을 못하고 미황사에서 가까운 초등학교에 다닌다.

"학교 선생님이 싫었다"는 미연이 얘기에 종무소에서 템플스테이 사무를 담당하고 딸과 기거하는 미연이 엄마에게 전학 온 사연을 물었다.

"지나친 경쟁, 촌지, 치맛바람이 있어야 관심을 가져주는 일부 문제 있는 교사 등의 한국 교육 문제에 염증이 나서 고민하던 중 아는 스님이 미황사를 추천해서 딸과 함께 며칠간 왔어요. 절에 머물며 딸의 의중을 물었는데 흔쾌히 응해서 정착 했어요. 애들 아빠는 해외에서 비즈니스를 하니까 서울에 안계시고 주거와 교육 직업의 3박자를 다 갖춘 셈이죠, 현재 생활에 만족해요."

저녁 공양 후 혜오 스님과 함께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과 차를 들며 대화하는 차담시간. 스님 왼쪽이 초등학교 6학년인  미연이
 저녁 공양 후 혜오 스님과 함께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과 차를 들며 대화하는 차담시간. 스님 왼쪽이 초등학교 6학년인 미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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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서 깨끗하고 좋은 음식을 먹어서 대중음식점엘 가면 혓바늘이 돌기도 한다는 미연이에게 물었다.

"남들은 학원과 과외를 몇 군데씩 다니는 데 불안하지 않니?"
"여기가 더 좋아요, 서울 사는 중학교 2학년 사촌오빠는 국어 논술에 영·수·사·과 등의 과외를 열심히 하는데 잘 하지는 못해요.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살며 자연과 함께 사는 게 너무 좋아요. 물론 나도 서울 가면 똑같이 해야 하지 않을까 걱정이에요."

미연이는 전교 1등이고 학생회장으로 외국인들이 템플스테이에 오면 안내도 곧잘 한다.    

산에서 내려오니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데 휴가를 내고 왔다는 슬픈 사연이 있는 듯한 예쁜 아가씨가 왔다. 국어 선생님과 아가씨에게 어성초와 고소 당귀 천궁 등의 잎을 뜯어 냄새를 맡아 보라고 했다.  

"무슨 냄새가 납니까?"
"아니 고기 잡으셨어요? 웬 고기 비린내가 나요."

"모두 향기가 다른 데 나한테선 무슨 향기가 나고 선생님과 아가씨는 무슨 향기가 날까요?"
"저요? 어성초요."

"비린내가 나도 훌륭한 약초예요."
"신영복 선생님은 여름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에 차라리 겨울징역이 낫다고 했어요."

오른쪽 바위사이에 도솔암이 있다. 도솔암은 통일신라 말 고승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도량이다. 정유재란 때 패배한 왜구들이 불태워 없앴으나 2002년 6월 재건했다. 일출 일몰이 장관으로 뒷쪽은 수십길 낭떠러지이다.
 오른쪽 바위사이에 도솔암이 있다. 도솔암은 통일신라 말 고승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도량이다. 정유재란 때 패배한 왜구들이 불태워 없앴으나 2002년 6월 재건했다. 일출 일몰이 장관으로 뒷쪽은 수십길 낭떠러지이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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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는 각자의 체취가 있다. 악취가 나는 사람, 아무 냄새도 안 나는 사람, 향기가 나는 사람. 나한테서는 무슨 향기가 날까? 행여 악취가 나서 사람을 쫓아 버리지는 않을까? 처음에 서먹서먹해 다시 서울로 돌아갈까 생각했다는 아가씨와 금방 친해져 도란도란 얘기하는 데 방해될까봐 인사도 안하고 멀리 떠나왔는데 핸드폰에 메시지가 떴다.

"선생님 인사드리고 떠날려고 했는데 안계셔서 이렇게 메시지로 인사드립니다."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했더니 앞으로는 '어성초' 선생님으로 불러달란다.

나는 무슨 향으로 부를까?

덧붙이는 글 | u포터와 남해안신문에도 송고합니다



태그:#미황사, #어성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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