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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짙은 꽃향기가 코끝에 와 닿는다. 아카시아 향기였다. 아, 5월이었지. 문득, 5월이면 온통 아카시아 향기 가득했던 옛 시절이 떠올랐다. 바람에 묻어오는 아카시아 향기를 맡으며 마산 무학산을 향해 간다. 무학산을 향해 가는 길에 남편으로부터 주기철 목사님의 기도바위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정말 반가운 일이었다. 그때부터 나의 산행은 무학산 그 자체보다 주기철 목사님의 기도바위를 찾기 위한 여행으로 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엔 꼭 찾고야 말리라. 지난 2007년도에는 <신사참배를 거부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책에서 알게 된 조수옥 권사가 일제시대에 와룡산 꼭대기 바위에서 기도했다는 것을 읽고 와룡산 등산 때 와룡산 정상에서 기도바위를 찾았으나 결국 안개 때문에 찾지 못한 적이 있다. 해서 이번에는 꼭 주기철 목사님의 기도바위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무학산을 오르는 임도는 시멘트 길로 잘 다듬어져 있어 시민들의 발걸음이 잦은 듯했다. 서원곡 주차장 근처에는 포장마차들이 즐비해 있고, 절에는 연등을 내걸고 있었다. 무학산은 (761.4m) 마치 학이 춤추듯 날개를 펼치고 날아갈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하여 무학산이라 부른다고 한다. 무학산 서원계곡은 숲이 울창하고 산세는 경사가 급한 편이었다. 평일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 산을 찾고 있었다.

 

 

나날이 초록을 더해가는 울창한 숲, 가파른 등산로를 지나 얼마쯤 올라가니 긴 나무계단이 나왔다. 긴 나무계단이 끝나는 곳에 ‘걱정바위’라고 이름 한 팔각정이 있었다. 팔각정에서 마산 앞바다와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왜 하필이면 ‘걱정바위’라 했을까. 걱정이 있다가도 산에 올라 바위 끝 팔각정에 서면 걱정도 씻은 듯이 사라질 것 같은데 말이다. ‘걱정바위’를 ‘희망바위’, ‘평강바위’라고 하면 어떨까.

 

정자에서 잠시 휴식하고 다시 산을 오른다. 어느 정도 올라가자 넓은 공터가 나왔다. 이곳이 ‘서마지기’라는 곳이다. 부드러운 흙으로 된 넓은 안부 옆에는 정자가 있고 그 안에서 점심 도시락을 먹고 있는 산객들이 모여 있었다. 정자 옆에 놓여있는 산림욕침대에 누워 보았다. 나무 그늘이라 시원하고 전망하기도 좋은데 사람들이 생각없이 버린 쓰레기들로 인해 파리가 맴돌아 오래 누워 있지 못하고 일어났다. 사람들이 자주 찾는 산인만큼 쓰레기는 챙겨 가면 좋을 것을.

 

 

넓게 펼쳐진 공터는 이곳이 무학산 정상 근처에 있다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평지에 가까웠다. 넓은 공터 한쪽 끝에 무학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긴 나무계단이 보였다. 무학산 정상과 마주 보이는 팔각정까지 갔다가 다시 무학산 정상으로 올라간다. 나무계단으로 된 길을 따라 계속해서 올라갔다. 산악회에서 단체로 온 사람들인 듯한 무리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계단을 올랐다.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남자분의 손에 이끌려 계단을 오르는 모습도 보였다.

 

이 계단 끝에선 마치 하늘이 손에 잡힐 듯했다. 무학산 정상표시석이 저만치 보였다. 그 옆에는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마산 앞바다와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빽빽하게 들어찬 건물들은 푸른 하늘 아래 하얗게 눈이 부시고 바다 한가운데 돋섬, 그리고 마산창원대교, 그 뒤로 크고 작은 섬들이 바다 위를 수놓고 있었다. 산정에 선 사람들은 내려가기 싫은 듯 산정에 서서 눈앞에 펼쳐진 마산시내와 그 뒤로 창원, 그리고 크고 작은 섬들, 바다 한가운데 있는 돋섬 등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정상석 뒤쪽에는 산들이 겹쳐져 있었다.

 

 

주기철 목사님의 기도바위는 무학산의 백미인 학의 머리에 해당하는 학봉에 있다고 들었다. 일단 능선을 타고 702m 봉우리를 지나 학봉으로 가기로 했다. 이제 학봉으로 간다. 왔던 길을 뒤로 하고 가지 않은 길을 간다. 무학산 정상에서 높은 돌탑으로 된 710봉우리를 지난다. 앞에 왔던 길은 비교적 가팔랐지만 힘든 줄 모르고 올랐건만, 710봉우리에서 학봉 갈림길을 지나 개나리동산을 거쳐 학봉 능선을 타고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에 길도 좁고 험했다. 사람들의 발길도 역시 뜸했다.

 

좁고 비탈진 울창한 숲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몇 번이나 미끄러질 뻔 했다. 그리고 딱 한 번 미끄러져 넘어졌다. 덕분에 오른쪽 팔 뒤꿈치가 까지고 멍이 들었다. 생각보다 아주 높이 올라왔나보다. 무학산은 생각보다 높고 깊었다. 이제 길이 넓어지면서 시야도 좀 트인다. 드문드문 만나는 산객에게 주기철 목사님의 기도바위가 어딘지 물었지만 주기철 목사님이라는 분을 모르는 듯했다. 어떤 이는 그런 바위가 없다고 하고, 어떤 이는 절에 대해 묻는 줄 아는지 엉뚱한 대답이 돌아왔다.

 

 

마산에 사는 사람들이고 마산을 대표하는 산인데도 불구하고 무학산 학봉에 있는 주기철 목사님이 생전에 기도하셨다는 기도바위를 모른다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몇 사람에게 물었지만 속 시원한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기도바위 위치를 정확하게 검색해보고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고 올 것을. 하는 수 없이 무학산 기도원에 가서 물어 보기로 했다. 기도원 원장은 ‘학봉 능선에 십자가가 표시된 바위가 있다’고 했다. 급경사에 좁은 숲길을 걸어왔던지라 학봉 가는 길은 시야가 넓게 트여 좋았다. 하지만 학봉 능선을 타고 갈수록 크고 작은 바위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어디쯤 있는 것일까. 길을 가면서도 몇 번이고 눈으로 찾았다. 마주 오는 사람에게 다시 기도바위를 물었지만 기도바위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아니, 주기철 목사님을 몰랐을 뿐 아니라 기도바위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 일제시대 때 신앙을 지키고 순교했던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도 모르고 기도바위가 어딘지도 모르는데다 기도바위가 있다는 안내표시도 없으니 답답했다. 자주 무학산에 올라온다는 어떤 중년 남자는 ‘그런 바위 없어요. 거의 매일 올라오는 산인데 한번도 그런 바위 본 적이 없어요’하고 말했다.

 

 

그래도 그 중에 아는 이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기도바위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꼭 찾으리라. 또 한 사람을 만났다. 나이가 지긋한 분이다. 역시 같은 질문을 던졌다. ‘저 위에 있는 바위인가. 예전에는 그래도 찬송도 부르고 성경책 읽고 기도하는 소리가 많이 들렸는데 요즘은 그런 소리도 끊기고 없네요’라고 한다. 그가 가리킨 바위로 올라가 보았으나 십자 표시는 보이지 않았다. 다시 찾아 헤맨다. 앗! 드디어 찾았다. 십자가 표시가 보였다.

 

 

바위 위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십자표시, 바위 옆면에 붉은 페인트로 십자가 표시를 한 것이 보였다. 여러 명이 앉을 수 있는 넓은 바위 앞에 뾰족하고 길게 뻗은 바위는 벼랑 끝에 있었다. 바람이 불면 벼랑에 떨어져 버릴 것 같은 위험한 곳이었다. 그 앞에는 마산 시내와 앞바다가 내려다 보였다. 얼마나 찾던 바위인가. 보람과 기쁨을 느꼈다. 이 바위에서 주기철 목사님은 마산 시내를 내려다보며 마산을 품고 조국을 품고 기도하셨을 것이다. 바위 끝에서 기도하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주기철 목사는 어린 시절부터 산을 찾는 습성이 몸에 배여 있었다고 한다. 고향 웅천의 천자봉, 정주 오산의 제석산, 평양의 묘향산, 금강산, 양산의 명곡리산, 부산의 구덕산, 그리고 마산에서의 무학산 등, 그가 찾아 엎드려 기도했던 산들이다. 주기철 목사는 마산에 왔을 때 먼저 기도처로 무학산을 찾았다고 그의 전기에 기록되어 있다. 주기철 목사가 밤을 새우며 눈물을 쏟았던 기도처인 기도바위는 일본 순사들이 신사참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그를 잡으러 왔을 때 바위가 십자 모양으로 갈라졌다고 전해온다.

 

 
그가 이렇듯 기도의 사람이었기에 모두가 신사참배에 찬성했을 때, 일사각오의 신앙으로 신사참배 거부하고 신앙의 순결을 지킬 수 있었고 일본군의 잔인한 고문에 굴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주기철 목사님 외에도 일제하 신사 참배 거부로 순교한 분들이 많을 것인데 잘 알려지지도 않은 것을 볼 때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주기철 목사님은 1944년 평양형무소에서 순교했고 올해로 64주년을 맞았다.

 

주기철 목사님의 기도바위를 찾았다는 기쁨과 뿌듯함을 가지고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주기철 목사님의 전기를 펼쳐 책 속에 있는 기도바위 사진과 내가 발견한 기도바위를 비교해 보았다. 어쩌나, 아무리 보아도 아니다. 내가 겨우 찾았다고 좋아했던 그 바위하고 책 속의 바위는 분명히 달랐다. 분명히 그 근처임에는 틀림없는데 도대체 어디일까. 참으로 안타까웠다. 바로 거기 주변은 분명한 것 같은데 그 바위는 아니었다. 인터넷 네이버와 다음에 검색해 보았다.

 

 

주기철 목사님의 기도바위 이미지를 찾은 것은 겨우 하나뿐이었다. 위대한 믿음의 선조들이 오늘날 점점 잊혀져 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착잡했다. 다음에 다시 무학산 학봉을 찾아야 할 것 같다. 그때는 기도바위를 비롯해 진해에 있다는 기념비와 생전에 시무했던 교회 등을 함께 찾아봐야할 것 같다.

 

무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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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화

 

산행수첩:

진행: 서원곡 주차장(팔각정.백운사 앞(10:35)-무학약수터(10:45)-암반 약수터(11:05)-너덜지대(11:25)-걱정바위(12:00)-서마지기(12:30)-703봉 정자(12:50)-서마지기(01:00)-무학산정상(1:10)-식사후 하산(2:00)-710봉(2:10)-개나리 동산(2:30)-전망바위(2:50)-무학산 기도원(3:30)-학봉정상(4:00)-학봉 하산(4:40)-서원곡 주차장(5:05)

 

특징: 약수터가 많아 좋다(무학약수. 암반약수 등 서원곡에 위치)

        걱정바위-정자가 있고, 마산 앞 바다 조망하기 좋다.

        703봉 정자-식사자리 좋음. 마산 앞바다와 시내 조망 좋음.

        정상-사방 조망 탁월함.넓은 평지로 됨

        서원곡-서마지기(완경사에 넓은 등산로.

        710봉-높은 돌탑으로 되어 있다.

교통: 북부산-마산 창원 IC- 서마산(통영 방향)-통영 커브 돌고 10분 진행:서원곡 입구


태그:#무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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