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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황사의 창건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자연석 지대석 위에 조성되어 있어 흥미롭다.
▲ 미황사 사적비 미황사의 창건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자연석 지대석 위에 조성되어 있어 흥미롭다.
ⓒ 정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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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남쪽 끝에 자리한 아름다운 사찰인 미황사에는 재미있는 창건 설화가 전해져 온다. 이 창건설화는 1692년(숙종 18) 민암이 지은 '미황사사적비'에 기록되어 있다.

미황사사적비는 거창한 용머리가 조각된 지대석 위에 있는 것이 아니고 자연석의 바위 위에 조성되어 있는 사적비여서 더욱 흥미있다. 이 사적비에는 미황사가 어떻게 해서 창건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있다.

내용인즉슨  통일신라 때 인도에서 불경을 싣고 온 한 석선(배)이 땅끝마을로 들어와 미황사를 창건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 창건설화는 불교가 직접 이곳 미황사로 전래되었다는 것을 말해 주는 '남방전래설'을 뒷받침하는 기록이기도하다.

'신라 경덕왕 8년(749년)에 홀연히 돌배 한 척이 땅끝마을 사자포구에 와서 닿았다. 배 안에서 천악범패의 소리가 들려 어부가 살피고자 했으나 번번이 멀어져 갔다. 의조스님이 이를 듣고 장운, 장선 두 스님, 향도 백여명과 함께 목욕하고 경건하게 기도를 올렸다. 그러자 비로소 돌배가 바닷가에 닿았는데 그 곳에는 주조한 금인(金人)이 노를 잡고 서 있었다. …… 그날밤 의조스님이 꿈을 꾸었는데 금인이 말하기를 "나는 본래 우전국(인도)왕으로 여러 나라를 두루 다니며 경전과 부처님 모실 곳을 구하고 있는데 이곳에 이르러 산 정상을 바라보니 1만불이 나타나므로 여기에 온 것이다. 소에 경을 싣고 가다 소가 누워 일어나지 않는 곳에 성상을 봉안하라"고 일렀다.'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미황사도 분주하다.
▲ 미황사 대웅전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미황사도 분주하다.
ⓒ 정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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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 절 미황사에 인도인들이 찾아왔다.
▲ 미황사를 찾은 인도인 땅끝 절 미황사에 인도인들이 찾아왔다.
ⓒ 정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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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난 11일 지금으로부터 약 1259년 전 인도에서 불상과 불경을 들고 이곳 땅끝에 불교를 전하러 온 불승들이 다시 나타났다.

미황사사적비에 전하는 금인들과 범패를 든 사람들이 다시 환생한 것일까. 부처님오신날을 축하하러 온 사절단으로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이 땅끝에 대한 먼 동경심만큼이나 인도에 대한 것은 우리에게 상상의 세계 속에 있지만 이제는 그 시공을 쉽게 넘나들고 있다.  

굳이 무슨 문화제 때문이라고 하지 않아도 저 멀리 이역 인도에서 이 땅끝마을에 나타난 것이 모두에게는 신기함일 것 같다. 이제는 TV를 통해 쉽게 전해져 오는 그 먼 나라 사람들 모습 때문에 그 신비로움이 작아졌다 해도 땅끝 사람들이 인도에서 온 사람들을 맞이하는 것은 상당한 신비로움이다.

명목상의 이 행사는 미황사가 주최한 땅끝문화제의 일환이다. 지난 10일 고산 윤선도가 은둔지로 삼은 보길도를 지나 땅끝 뭍으로 나와 11일 다시 미황사에서 그 오래전 인도의 우전국 사람이 전해준 흔적을 재현한 것이다.

이들의 모습은 인도 바울예술단의 '호리볼'로 재현됐다. 인도의 전통예술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음악회가 끝나고 참가자들과 한판의 놀이판이 벌어졌다.
▲ 참가자들과의 어울림 음악회가 끝나고 참가자들과 한판의 놀이판이 벌어졌다.
ⓒ 정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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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실록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그래서 미황사가 있는 달마산 또한 눈부시게 아름답다. 미황사 뒤에는 달마산의 기암이 병풍처럼 둘러치고 있으니 한 폭의 산수화다. 해가 질 무렵 쨍쨍한 오월의 햇살은 석양 무렵이 되면서 서서히 황금빛으로 변하다가 다시 어둠에 묻힌다. 해를 안고 저물어 가는 미황사의 대웅전 또한 그 빛깔 속에 물들다 어둠에 포위된다. 산의 중턱에 자리한 미황사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

저물어 가는 석양빛을 등지고 들려오는 범종의 소리가 하루의 끝을 알렸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경건해진다. 벌써 아득한 시간이 되었지만 6시 국기하강 시간에 들었던 애국가 소리를 추억처럼 떠올리게 하는, 하지만 어둠에 묻히며 저물어 가는 산사의 종소리는 모두에게 강요하지 않는 참선의 시간이기도 하다.

전통문화를 가장 잘 지켜오고 있는 나라 중에 하나인 인도이고 보면 인도 바울예술단의 모습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그 문화적 생소함을 충분히 느끼게 하였다. 그리고 곧 그것은 우리의 오래전 문화와도 매우 상통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함께 느끼고 공감하고 더불어 즐거움으로 하나가 된 것은 서로의 마음이 통하고 그 오래전 천년이 넘는 시간 속에서도 이곳 땅끝을 찾아온 석선의 조상이 다시 환생했다는 것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었을 것 같다. 

미황사는 서쪽을 향하고 있어 석양의 모습이 아름답다
▲ 미황사의 노을 미황사는 서쪽을 향하고 있어 석양의 모습이 아름답다
ⓒ 정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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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에 경을 싣고 가다 소가 누워 일어나지 않는 곳에 성상을 봉안하라 하였다. 이에 소등에 경을 싣고 가는데 소가 한번 눕더니 벌떡 일어나 다시 걸어갔다. 그러더니 산골짜기에 이르러 누워 일어나지 않았다. 이에 소가 처음 누운 자리에 통교사를 짓고 뒤에 누워 일어나지 않은 자리에 미황사를 지어 불상과 경전을 모셨다. 미황사의 '미'는 소의 아름다운 울음소리에서 따왔고, '황'은 황금빛을 따와 이름 붙였다.'

미황사는 이렇게 지어졌다고 한다. 땅끝 바다를 통해 먼 세계에서 새로운 문화가 그렇게 들어온 것이다.


태그:#미황사, #인도, #호리볼, #땅끝마을, #부처님오신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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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를 중심으로 지역의 다양한 소재들을 통해 인문학적 글쓰기를 하고 있다. 특히 해양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16세기 해남윤씨가의 서남해안 간척과 도서개발>을 주제로 학위를 받은 바 있으며 연구활동과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녹우당> 열화당. 2015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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