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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놀랍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5월 2일 오전만 해도 촛불집회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2만 개는 족히 넘어 보이는 엄청난 촛불의 행렬이 미국산 광우병소 수입에 반대해서 청계광장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촛불은 지금까지도 계속 타오르고 있다. 2002년 미선이 효순이 촛불시위, 2004년 대통령 탄핵 저지 시위, 그리고 2008년 미국산 광우병소 수입반대 시위는 인터넷을 통해 들불처럼 확산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필자는 이번 촛불시위를 보면서 인터넷 공간을 통해 미디어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음을 절실하게 느꼈다.

 

첫째로, 새로운 언로가 확실하게 열렸다는 점이다. 이번 집회는 당장 뚜껑을 열기 전에 그 누구도 참가자 규모를 예측할 수 없었다. 보통 민중운동 진영에서 집회를 할 때면 각 단위별로 참가자를 조직하고 이를 중앙에 보고하면서 대략적인 참가자 규모를 파악할 수 있지만, 인터넷을 통해 무작위 대중들에게 제안된 이번 촛불 시위는 집회를 제안하고 준비한 사람조차 참가자 규모를 파악할 수는 없었다. 

 

기존의 집회처럼 각 운동조직들의 조직계통을 가동해 동원되지도 않았고, 언론에서 집회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알려준 것도 아닌 상황에서 2만 여명의 엄청난 대중들이 촛불을 들고 청계광장으로 모였다. <PD수첩> 방송을 보고 충격을 받은 네티즌들은 한 네티즌의 촛불집회 제안글을 너나 할 것 없이 퍼나르기 시작했다.

 

미디어라는 영어의 원래 의미는 '매개물'을 의미한다. 신문이나 방송은 정보나 소식들을 대중들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한다는 의미에서 '미디어' 즉 '매개물'이다. 이런 의미에서 네티즌들이 퍼나른 게시물과 댓글, 그리고 그런 내용이 담긴 개인의 블로그는 모두 다 '미디어'의 역할을 했다. 기존의 미디어들이 다뤄주지 않아도, 그리고 자신의 탄탄한 조직이 없어도 2만 여명의 대규모 촛불집회는 이런 새로운 '미디어'에 의해서 조직되었다.

 

둘째로, 정보에 대한 일반인의 접근권이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이번 촛불시위를 취재하면서 많은 집회 참가자들과 인터뷰를 했던 한 기자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 기자는 집회 참가자들 대부분이 자신의 확고한 반대논리와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거침없이 얘기하는 것에 놀랐다고 필자에게 말했다.

 

예전 같으면 광우병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도서관을 찾아가서 관련 서적을 찾아본다던지, 신문의 지난 기사를 일일이 찾아가면서 관련 내용을 찾아보는 수고를 들여야했다. 입시에 시달리는 학생들이나 직장에서 하루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는 직장인들, 그리고 가정을 일을 책임지는 주부들이 그런 일에 시간을 들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인터넷의 발달로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얻는데 드는 시간과 비용이 획기적으로 단축되었다. 이제는 누구나 궁금한 것이 있으면 네이버 지식인을 찾아보라는 말을 할 정도로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취득은 보편화되었다.

 

대중들은 인터넷을 통해 광우병에 대한 제반 지식과 정보를 얻은 후에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이성적인 판단을 하고 촛불을 든 것이다. 단순히 감성적 호소에 근거한 분노가 아닌 이성에 의한 분노는 쉽게 가라않지 않는다. 지식은 힘이라 했던가, 인터넷은 학자들만의 전유물이던 지식을 대중들 속으로 가져온 큰 역할을 했다.

 

인터넷 공간의 이러한 가능성이 미디어 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그리고 미디어 환경의 급격한 변화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는 이 엄중한 질문에 책임 있는 대답을 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미디어, #광우병, #촛불시위,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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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피아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등 여러 권의 책을 쓴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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