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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일부터 시작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서 특이했던 점 중 하나는 중고등학생들의 높은 참여 비율일 것입니다. 어른들이 만들어 주신 경쟁의 숲을 뚫어내어 제 삶을 찾아가기도 힘든 그들이 옳지 않은 것에 대항해 거리로 나서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뭉클해졌었습니다. 사회의 구조적이고도 고질적인 문제점들을 예리하게 분석하여 바꾸어나가야 할 대학생으로서 나는 과연 얼마나 진실되게 삶을 살아내고 있는지를 자문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하지만 지난 수요일부터는 학교 차원에서 10대들을 집회에 나가지 못하게 한다고 합니다. 집회 참여 사실이 발각되면 벌점을 준다고 위협합니다. 850여명의 장학사들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촛불집회 장소를 돌아다니며 곳곳에 숨어 있는 중고등학생들을 찾아내어 혼냅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무엇이 공부입니까? 부끄러운 일입니다. 자신과 타인들의 공동체적 삶에 적극적 개입을 실천하면서 생활정치를 체득해 가야 할 아이들에게 그것을 권장하고 격려하지는 않고, 혼낸다니 이건 도대체 무슨 미친 말일까요. 이게 교육입니까? 아이들이 일반 사회 시간에 배우는 집회의 자유는 누구에게 허용되는 권리인 것인지, 그들이 얼마나 황망해 할지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합니다.

 

학생들은 대다수가 쇠고기의 안정성에 대한 그릇된 정보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촛불집회에 나서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 말합니다. 광우병이라는 것이 워낙 아직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질병이기 때문에 우리들의 정보가 그릇되었는지 옳은지는 사실 아직까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문제는 모르기 때문에 위험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않고 무조건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언론 통제를 시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임에도 10대들은 교실에 처박혀 경쟁을 강요받기만 해야 한다는 건 옳지 않습니다. 아니, 중고등학생들이 먹는 쇠고기만 광우병에서 안전할 리는 없는데 대체 왜 그들의 참여는 가로막을 수 있는 것입니까?

 

배후 세력 음모론이 끊임없이 제기됩니다. 어린 학생들이 좌파의 정치적 선동을 받아 움직이고 있다고 합니다. 이젠 10대들의 정치적 자기결정권을 부정하는 프레임을 선정하고 나서는 것이지요. 동시에 촛불집회에 나서는 열정을 '순수하지 못한 것'으로 폄하함으로써 이중의 효과를 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식으로 나오다니, 과연 똑똑한 보수세력입니다. 그렇습니다만 너무나 비겁합니다. 

 

각하께서는 며칠 전, 쇠고기 수입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두 FTA를 반대하는 사람들이라고 일성을 날리신 바 있습니다. 한 - 미 FTA를 반대하는 것도 10대들에게는 자유로운 일로 남아 있어야 하는데 마치 FTA반대하는 것은 시뻘건 일부 좌파들에 불과하다는 것처럼 부정적으로 들립니다. 배후 세력이건 정치적 선동이건 야당의 음모건 10대들의 움직임과 그것들을 엮어서 생각하지는 않아야 합니다. 선동, 음모 등의 단어가 적합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정치적인 움직임에 10대들이 발맞추어 함께 나가는 것 역시 학생들의 정치적 결사권입니다. 참견하지 마세요 각하.

 

열심히 공부해야 할 착한 학생들이 거리로 나서서 나쁜 영향을 받고 빨간 물 들어 투쟁만 배우는 것 아니냐고 걱정합니다. 물론 학생의 본분은 공부이지요. 그렇지만 그 공부가 우리 나라와 같은 교육 체계 속에서 세대 내 경쟁에 뛰어드는 것을 의미한다면 어떻습니까. 미친 경쟁의 교육, 극도로 긴장된 사회진입의 장벽 속에서 10대들은 죽어가고 있습니다. 모두가 1등을 할 수는 없고 모두가 의사나 판사나 교수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것인데 왜 우리는 애써 모른 척 하고 있는 걸까요.

 

그리고 이젠, 학생들의 사회 참여조차도 못 하게 가로막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런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교육 속에서 우리들의 10대가 자라난다니 끔찍합니다. 상생보다는 경쟁을, 타인의 삶에 대한 관심보다는 보다 많고 짙은 쾌락을, 적극적 참여보다는 정치적 냉소를 그대로 지니고 살아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10대들이 교육받아야 할 나이인 것은 맞습니다만, 그것이 그들을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로 귀결되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적극적인 의사 표현과 정치적 참여는 가르쳐야 할 중요한 덕목입니다. 이것은 쉽게 배울 수 없는 덕목이라는 점에서 현재의 촛불집회들이 시의적절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발 그들이 주체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놔둡시다. 새 시대를 열어젖힐 우리들의 10대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생활정치를 영위할 수 있도록, 시민적 덕목을 체득해나갈 수 있도록 도와줍시다. 제발 그들이 집회에 나가서 뭘 보고 듣든 간에 알레르기 좀 일으키지 맙시다. 10대들은 바보가 아니고, 무엇을 주입시킨다고 그대로 다 빨아들이는 백지나 스폰지 같은 상태인 것도 아닙니다.

 

학교에서의 학습이 아닌, 바깥에서의 체험이 어떻게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좀 더 두고 보면서 우리의 학생들에게 경험의 기회를 제공합시다. 적절한 지도는 곁들여지면 충분한 것입니다. 통제는, 적절한 지도가 아닙니다. 10대들의 정치참여를 가로막는 미친 나라의 미친 교육자들은 새로운 세대의 앞길을 가로막지 말고 좀 사라져 주셨으면 합니다.


태그:#쇠고기, #광우병, #촛불집회, #10대, #정치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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