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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딸은 모녀 사이일까, 친구사이일까? 아버지와 아들은 협력 관계일까, 경쟁 관계일까? 부부는 끝까지 남남일까, 신비로운 '한몸'일까?

MBC 다큐멘터리 '가족' 제작팀에서 내놓은 <가족>을 읽으며 내내 질문했다. 가족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참 많이 궁금했고 질문하고 싶었다. <가족>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어렵게 말문을 열고서는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지난날을 회상하는 듯 말했다. 그들에게 가족은 언제나 '오래된 필름'같은 것이었다.

가족사진이 한 장 필요했다. 가족사진을 눈 앞에 놓고서는 책 읽을 때마다 틈틈이 사진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 아버지와 나는 어떤 관계였나, 어머니와 나는 어떤 사이였나,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떻게 살아오셨나 등등 책 속 이야기는 곧 내 이야기가 되었다. 오래도록 아니 영원히 남을 '가족' 이야기를 찾아서 <가족> 속으로 들어가본다.

"우리 엄마 돈은 찢으면 피난다"

<가족> 겉그림.
 <가족> 겉그림.
ⓒ 북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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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일까? 엄마 돈은 찢으면 피가 날까? 어머니도 여자, 자신도 여자, 애지중지 기른 자녀도 여자. 그렇게 '한 지붕 세 여자' 가정을 이루며 살아온 이가 있었다. 늘 수수하게 사셨지만 억척같이 살아오신 어머니의 삶을 회상하는 딸의 고백은 그 모습 그대로 사진같았다. 어머니처럼 젊은 나이부터 남편 없이 아이를 길러 온 경험도 있어서인지 어머니 삶과 어린시절을 회상하는 딸은 그 모습 그대로 또 딸을 길렀던 것 같다.
"엄마가 정말 검소했어요. 쓸데없는 데 돈을 안 써요. 우리 엄마 돈은 찢으면 피 난다, 이런 말이 있어요. 하도 돈을 아껴가지고 우리 어마 돈은 짖으면 거기서 피가 난대요. 썩은 것도 아깝다고 다 주워먹고. 우리 몸이 내성이 배갖고 웬만히 썩은 거 먹어도 설사를 안 해. 근데 너무 웃긴 게 친척이나 주위에 어려운 사람들이 와서 죽는 소리 하면 몇백만 원씩을 텅텅 주는 거야. 십원을 아깝다고 버둥버둥 떠는 사람이 어려운 사람 오면 그 돈 못 받을 거 알면서도 주는 거예요. 아휴, 그러니 우리 엄마 초등학교도 안 나오셨지만 제가 존경을 안 할 수가 없죠."(<가족>, 94~95)

어머니 삶을 전부 만족스러워하는 건 아니지만, 딸은 어머니를 존경하고 있었다. 여자인 어머니의 삶을 잘 모를 수밖에 없는 아들로 살아온 나는 '어머니와 딸'을 이해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다. 여자 세 사람만 어우려져 사는 가정 풍경은 더더욱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 역시 억척같이 살아오신 어머니 삶을 인정하고 존경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머니 외엔 남자 셋만 북적대던 가정을 이끌어오신 주역이었으니까.

두 달여에 걸쳐 800여명과 이야기하고 그 중에서 열 아홉편을 추스려 내놓은 <가족>. 우리 시대 가족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기 위해 그 흔한 내레이션이나 자막 없이 방송했던 다큐멘터리 <가족>. 방송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담고자 했던 책 <가족> 역시 외부 설명은 다 빼고 오로지 인터뷰 내용으로만 채워져있다. 본 대로 말한 대로 담은 우리 시대 한국 가족 이야기가 바로 <가족>에 담겨 있었던 게다.

어머니와 딸 이야기로 시작된 <가족>은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남남으로 만나 '한몸'이 되는 부부 이야기를 담았다. 그리고 그 안에는 다르지만 같은 가족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잘 살았어도 못 살았어도 가족이기에 함께 부대끼며 살았던 사람들, 싫든 좋든 가족이기에 상대방 삶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사람들. 같으면서도 다 다른 수많은 한국 가족이야기를 압축해서 보려니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득찼다.

가족, 가까워 더 많이 싸우며 사랑 키우는 '애증'관계?

"아버지의 어떤 모습들이 기억나세요? 아버지 모습이 생각나기보다는 어머니나 누나들이나 하는 이야기가, 제가 가지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 저도 고집스러운 아버지의 모습이 싫었지만 아버지와 꼭 같게 저도 고집스런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거. 뭘 하건 간에 아버지의 꼼꼼함이 예전에는 귀찮았는데 제가 아버지의 꼼꼼함을 가지고 있다든가 이런 모습 속에서 누나들이나 엄마는 제가 아버지하고 꼭 닮았다고 생각하시는 거 같아요. 그때는 왜 그게 싫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때는 왜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대해 거부감을 먼저 가졌는지 반성을 하게 되죠."(같은 책, 221~222)

온 몸으로 아파하며 낳은 자식이기에 어떤 식으로든 강한 애정을 주고받는 관계가 어머니와 딸 관계이다. 반면, 아들은 아버지와 대개 털털하고도 묵직한 관계를 맺고 산다. 가까이서 주고받는 애틋함보다는 멀찍이서 소리 없이 주고받는 신뢰로 뭉쳐있는 게 대부분의 부자 관계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를 보면서 나 역시 애틋함보다는 은근한 신뢰 관계로 아버지를 대하지 않았나 싶다. 굳이 다 듣지 않아도 금방 머리를 끄덕이는 아들과 아버지 이야기들이다.

'전쟁 같은 사랑'이라는 제목을 달고 소개된 뮤지컬 배우 박해미씨와 황민씨의 부부이야기. 익숙한 사람들 이야기로 첫 문을 연 부부이야기어서 그런지, 아직 혼자인 나도 선뜻 부부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같이 살아도 여전히 남남이라고도 하고, 어쨌든 같은 방향을 보고 한 길을 같이 가는 동반자라고도 하고 등등. 다들 부부에 대한 정의가 달랐다. 아이 없이 오로지 부부관계에만 집중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이미 세상을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며 못다 한 사랑을 곱씹는 남편 이야기도 있었다. '가족은 애증관계다'라고 하는 게 딱 맞겠다 싶을만큼 어쩜 다들 그리 붕어빵 처럼 같은 말을 하는지 새삼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가족에게 듣지 못한 이야기, 이 책에서 발견하고 싶다

딸과 어머니, 아들과 아버지, 남편과 아내는 각각 서로 다른 관계여도 한 지붕 아래 사는 '가족' 관계임은 똑같았다. 그리고 가까이 살기에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다 보고 사는 사이라는 것도 똑같았다. 말하자면, 서로 서로 다른 생각과 다른 삶을 엮어가며 가족이라는 끈을 더욱 든든하게 만들어왔다는 점도 똑같았다.

갈수록 다문화가정이 많아지고 핵가족 현상도 심화되며 저출산 상황이 여전히 심각한 한국사회에서 끈적끈적한 가족 이야기는 듣는 것만으로도 감동이다. 내 가족을 앞에 두고 직접 이야기를 듣는 것같은 느낌을 주는 <가족>을 옆에 두고 한동안 우리 가족을 돌아보고 싶다. 가족사진 한 장을 늘 옆에 끼고 다니면서.

다 큰 성인이지만 여전히 부모님 삶과 마음을 다 모르는 아들로서 <가족>을 보는 맘이 내심 설렌다. 꼭 알아야하지만 가족에게서 듣지 못한 이야기들을 이 책에서 발견하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의 모습도 <가족>에 담겨 있을까? 눈으로 한 번 읽는 것으로는 부족할만큼 깊은 가족사랑이 넘치는 <가족>을 이제는 마음으로 다시 읽어야 할 듯하다.

덧붙이는 글 | <가족> MBC 다큐멘터리 가족 제작팀 지음. 북하우스, 2003.



가족

MBC 다큐멘터리 가족 제작팀 엮음, 북하우스(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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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가족, #부모, #자녀,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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