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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사는 한인협회에서 쇠고기 논쟁에 대한 성명서를 잇따라 발표했는데, 그들의 성명서가 여론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미국에서 수십년 동안 쇠고기를 먹어온 데다가, 한국사람이기 때문에 한국인의 체질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미간의 관계에서 역할을 함으로써 존재가치를 높이려는 정치적 의도도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의문점들이 있다.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이 어떤 대표성을 가질 수 있느냐이다. 첫째 한국에 사는 사람들의 체질을 대표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수십 년 동안 살았다면 이미 미국의 식습관이 체화되었을 텐데, 우리나라의 사람들과 동일하게 비교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문제의 핵심은 '미국에서 생산된 쇠고기를 수입하는 한국사람'이기 때문에 그들의 성명서가 한국사람에게 주는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둘째는 그들이 미국에 사는 한인들을 대표할지도 의문이라는 것이다. 5월8일 <100분토론>에 전화로 참여한 미국의 주부는 그들이 미주한인을 대표하지도 않으면서 마치 대표하는 듯이 성명을 남발했다고 비판했다. 그들의 수십 장 성명서보다 한 주부의 목소리가 진정성이 있다는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셋째, 우리가 수입하려는 것은 30개월 이상이나 그 이하의 쇠고기인데, 미주 한인들은 24개월 미만의 쇠고기를 평생 먹고 살아왔기 때문에 한국의 경우를 자신들의 경험과 동일시하는 것은 어불성설에 가깝다.

 

이들 단체는 성명서에서 "미국에서 먹지 않는 불량식품을 수출하는 것처럼 국민을 오도하는 것은 일부 반미(反美)주의자나 정치적으로 불순한 목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념이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파렴치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미주 한인들의 소중한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성급하게 성명을 발표해버린 그들 역시 정치적 저의를 가지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지 않을까?

 

한국에서도 그와 비슷한 시선이 있는데, 청계천과 여의도에서 촛불을 들고 항의를 하는 초중고등학생들을 정치적 선동의 희생량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들이다. 쇠고기 문제가 무엇인가. 건강과 생명에 관한 문제이다. 정치적인 관점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보려는 모든 관점은 그야말로 정치적인 의도일 뿐이다. 그들이 이런 관점을 벗어던지지 않고서는 이 문제의 본질에 끝내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여의도에서 만난 고등학생에게 나온 이유를 물었을 때, 그는 "죽기 싫어서 나왔다"고 의연히 대답했다. 이것은 단지 목숨이 아깝다는 말이 아니라 "광우병에 걸려서 미친소처럼 죽고 싶지 않다는 말"이며 "사랑하는 사람들이랑 오랫동안 살고 싶은데, 세상에서 가장 추한 모습으로 죽게 될까봐" 두렵다는 것이다. 가장 인간적이며 본성에 충실한 답변이라고 생각한다. 어찌 정치적 저의를 가지고 이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끝으로 정치적 선전보다는 아이들과 가족의 생명과 건강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미주 주부들의 성명서를 인용한다.

 

<미주주부들의 성명서>

미주지역에 거주하는 한인주부들은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미국산 쇠고기 전면개방을 반대하며 재협상을 촉구합니다!!

 

가족의 건강과 식탁을 책임지고 있는 미주 한인주부들은 금번 미국 쇠고기 협상으로 앞으로 광우병 위험에 노출될지도 모를 한국동포들에 대한 우려와 걱정에 시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미국 내에서도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불안감과 불신은 커져가고 있습니다.

 

올해 미국 내 축산업계는 도축 직전 소의 건강상태를 확인해야 하는 현행법을 어기고 광우병의 증세가 의심되는 소를 도축하였고 이 업체의 쇠고기가 학교급식용을 비롯 미전역의 시장에 유통되어 결국 미국 역사상 최대규모의 쇠고기 리콜을 야기했습니다.

 

또한 지난달 4일, 캔자스의 Elkhorn Valley Packing LLC 라는 업체는 광우병 위험물질인 편도를 제거하지 않은 채 유통했다가 결국 냉동 소머리 406,000 파운드를 자발적으로 리콜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 캔자스 주 고급 육 생산업체인 Creekstone Farms에서 소 뼈 파동으로 막힌 일본 수출시장을 열기 위해 업체내의 자발적인 전수검사의 의지를 밝혔지만 미 농무부가 이를 최근에 불허하였습니다. 업체의 자발적인 검사마저 가로막는 미농무부의 태도는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의심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사례들은 미국 내에서 조차 쇠고기 안전성 검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더욱이 미국 내에서 동물성 사료는 아직도 사용이 완전히 금지되지 않았으며, 비인도적이고 비위생적인 축산환경 또한 지속적으로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1%도 되지 않는 광우병 검사비율로 미국 쇠고기의 안전성을 장담하기에는 큰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최근 미국 내에서도 유기농 쇠고기나 풀 혹은 식물성 사료를 먹여 키운 쇠고기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증가하고 있고, 호주 및 뉴질랜드 등 광우병 청정지역에서 수입된 쇠고기의 소비 또한 점점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미국 내 쇠고기 소비행태가 이같은 변화를 보이고 있고 쇠고기 안전성에 대한 불안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미주한인회는 미주 동포들이 먹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는 무조건 안전하다는 식의 성명을 발표하여 마치 이것이 전체 미주 한인들의 목소리인 양 사실을 왜곡하고 여론을 호도하고 있는 바, 이에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230만 재미동포 중 미 축산업의 실태를 알고 있는 한인들은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과 위생성에 비판적 의견을 가지고 있으며 미국산 쇠고기 소비에 더더욱 신중을 기하고 있음을 밝힙니다.

 

현재 미국의 축산 환경은 육우 사육, 광우병 검사, 도축 그 어느 과정에서도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데, 이번 협상의 결과로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발견되더라도 한국은 수입거부권조차 없이 국제수역사무국의 결정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검역주권도 없이 30개월 이상 소의 살코기와 30개월 이하 소의 뼈, 내장까지 모조리 수입을 하겠다는 한국 정부의 금번 미국 쇠고기 협상결과는 국민의 입장에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입니다.

 

이에 정부는 국민건강과 검역주권을 포기한 채 최소한의 안전장치마저 해제한 졸속적인 금번 협상을 무효화하고, 재협상을 추진 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는 바입니다.


태그:#한인협회, #쇠고기성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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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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