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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엔 많은 축제와 행사가 각 지역마다 열립니다. 또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 챙겨주고 기억해야 하는 날들도 몰려있습니다.

 

그 5월에 쓸쓸한 등을 보이는 분들이 있습니다. 나이 드신 할아버지 할머니입니다. 지난 어린이날,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과 함께 놀이공원이나 동물원 등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모습을 봤습니다. 부모와 손잡고 나온 아이들은 환하게 웃습니다. 아이들의 환한 모습에 젊은 부모들도 환하게 웃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얼굴엔 환한 미소가 없습니다. 그들의 손을 잡은 손자손녀도 없습니다. 그저 끼리끼리 모여 앉을만한 곳을 대충 찾아 쭈그려 앉아 쉽니다. 잔치 구경을 나오긴 했지만 흥은 젊은 사람들의 몫일뿐, 노인들의 몫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는

눈물로

진주를 만드신다.

 

그 동그란 광택(光澤)의 씨를

아들들의 가슴에

심어 주신다.

 

씨앗은

아들들의 가슴속에서

벅찬 자랑

젖어드는 그리움

 

때로는 저린 아픔으로 자라나

드디어 눈이 부신

진주가 된다.

태양이 된다. 

 

- 정한모의 '어머니'의 한 부분

 

노인들은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참새마냥 담벼락 댓돌 옹기종기 앉아있습니다. 곱게 옷을 입고 있지만 표정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무심하게 오고가는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한때는 누구보다 고왔을 얼굴은 주름으로 가득합니다. 어린 자식들의 양식으로 나누어줬을 봉긋했던 사랑의 젖가슴은 세월과 눈물로 말라버렸습니다.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입니다. '어머니는 눈물로 진주를 만드신다'는 시인의 말처럼 우리들의 어머니는 지금껏 당신의 눈물과 한숨과 희생으로 자식들을 진주로 만들기 위해 온 힘을 쏟았습니다. 그렇게 온 진액을 다 내어준 어머니는 진주가 되고 태양이 된 자식들을 바라보며 벅찬 자랑을 느끼기도 하지만 지난 세월의 그리움에 젖기도 합니다.

 

군대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훈련병 시절, 조교는 고된 훈련을 마치고 뜨겁던 연병장 바닥에 누은 우리에게 '어머니의 마음'를 부르게 했습니다.

 

'낳~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평상시 불렀을 적엔 별 감흥이 없던 노래가 그땐 왜 그리 울컥함으로 다가왔는지 눈물 콧물 흘리며 목청껏 시골에서 흙범벅이 되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때만 해도 아직 젊었던 어머니는 올해로 팔순이 됩니다. 검정머리는 백발이 되었고, 반듯했던 허리는 구부정합니다. 튼튼했던 두 다리는 이제 지팡이 없으면 걷지를 못합니다. 흘러간 세월에, 못난 자식들에게 당신의 모든 진액을 다 내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끔은 아버지의 등이 그립기도 합니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 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아버지의 동포(同胞)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英雄)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 김현승의 '아버지 마음' 중에서

 

"당신은 왜 어머니만 생각해. 아버님은 생각하지 않고? 어머니의 반절만이라도 아버님 생각해봐라."

 

가끔 아내는 내게 핀잔 아닌 핀잔을 합니다. 아버지보다 어머니에게 마음을 쓴다는 이유입니다.

 

사실 아버지는 어머니보다 살가운 존재는 아닙니다. 어렵습니다. 늘 술을 많이 드시지만 자식들에게 술주정 한 번 한 적 없습니다. 어머니는 가끔 눈물을 보이지만 아버진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젠 아버지의 주름진 눈과 조금은 굽은 등을 보면 마음이 짠해집니다.

 

'아버지'하면 떠오르는 게 ‘등’입니다. 아버지의 등. 아버지가 지금의 내 나이쯤 됐을 때 아버지의 등에 업혀 당신이 불러주는 노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병약한 어린 나는 그때의 아버지가 내준 등이 어찌나 포근하고 든든했는지 모릅니다. 가끔 내 어린 자식들에게 내 등을 내줄 때면 아버지의 등을 생각하곤 합니다.

 

벤치에 앉아 노인들이 장기를 두고 있습니다. 몇몇은 구경을 합니다. 주변의 시끄러운 소리에도 눈길 주지 않고 장기판만 바라봅니다. 나도 물끄러미 장기판을 바라봅니다. 당신들이 할 일이라곤 장기를 두는 일밖에 없는 듯 매일같이 나와서 저렇게 장기를 둔다고 합니다.

 

그 옆에 짚신을 만들어 팔고 있는 할아버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내 아버지도 짚신을 잘 만들었습니다. 짚신을 만드는 아버지 옆에서 "아버지, 짚신은 왜 만들어요?"하고 물으면 "왜 만들긴 장에 내다 팔아 너그들 맛난 거 사줄려고 그러지"하며 웃어주었습니다.

 

그때 내게 등을 내주시고 짚신을 만들어 맛난 거 사준다고 했던 아버지. 늘 술을 가까이 하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가끔은 원망스러워 했던 적이 있던 아들. 그러나 이젠 압니다. 아버지가 가장 외로운 사람이란 걸.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라고 말한 시인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젠 아버지의 눈물을 볼 수 있습니다. 술잔 속에 말없이 홀로 녹여야 했던 그 많은 눈물들을. 그렇기에 가끔은 아버지의 등이 더욱 그립기도 합니다.


태그:#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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