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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왜 그렇게 서둘렀을까? 혹시 쇠뿔도 단김에 빼려고 했던 건 아닐까? 그러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야말로 느릿느릿한 소걸음으로 통상 협상을 벌여야 했다. 이 대통령 본인의 말대로 "국민 생명보다 귀한 것은 없으며, 어떠한 것도 이와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최근 한국인들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여론이 성난 황소처럼 거세다. 그동안 소 닭 보듯이 사태를 방치했던 정부와 한나라당이 뒤늦게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옛말 그대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형국이다.

 

이야말로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 아닌가? 그런데 한국의 이런 논란을 예의주시하면서 소리 안 나게 웃는 나라가 있다. 다름 아닌 호주다. 한국과 미국은 심각하기 그지없는데 호주가 웃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만큼 광우병에 자신이 있다는 의미의 웃음일까?

 

2700만 마리의 비육우를 사육하는 호주

 

그렇다면 호주 쇠고기는 100% 안전한가? 호주 쇠고기 수출업자들이 '클린&세이프(Clean&Safe)' 마크와 '호주 청정우' 상표를 붙여서 한국 소비자에게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것을 그대로 믿어도 될까? 진위 여부를 떠나서, 지금은 그 말을 믿고 싶다. 기왕지사, 2007년 한 해만 약 15만톤의 호주산 쇠고기가 한국에 수출되어 소비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학자 데카르트는 "믿고 싶은 모든 것을 의심하라!"고 말했다. 그래서 기자는 호주의 비육우가 사육, 도축, 수출되는 모든 과정을 의심쩍은 눈빛으로 장기간 취재했다. 2004년과 2008년 두 차례에 걸쳐서, 쇠똥냄새 나는 축사와 왠지 찜찜한 도축장을 6주 동안 헤집고 다닌 것.

 

2004년에는 호주축산공사 마켓 담당 매니저였던 알리스타 럭스턴씨와 동행하여 호주 비육우의 50.9%가 사육되는 퀸즐랜드 주를 답사했고, 2008년에는 축산 농가 농부인 레이 싱글톤씨와 함께 호주 비육우의 20.4%가 사육되는 뉴사우스웨일즈 주 일대를 누비고 다녔다.

 

호주는 매우 넓은 나라다. 반면에 인구는 2100만 명을 약간 웃도는 정도다. 1평방킬로미터에 대략 두 명 정도가 살고 있는 것. 그 텅 빈 대륙의 푸른 초원에서 약 2700만 마리의 비육우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그러나 그림처럼 아름다운 풀밭에서 자란 비육우의 쇠고기는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 일정 기간 곡물 사료를 먹인 다음에 도축해야 육질이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나기 때문이다. 그에 관해서 호주축산공사 알리스타 럭스턴 매니저로부터 다음과 같은 설명을 들었다.

 

미국산 쇠고기와 호주산 쇠고기의 차이는?

 

"호주는 국토가 넓기 때문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큰 초지가 조성되어 있다. 또한 깨끗한 비와 눈부신 햇살을 받고 자란 광활한 목초지에서 생산된 식육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두 가지 방식으로 비육우를 사육하고 있다. 호주나 미국 시장으로 내다파는 쇠고기는 풀만 뜯어먹고 자란 그래스페드(grassfed) 쇠고기다. 반면에 한국과 일본 등지로 수출하는 쇠고기는 일정 기간 곡물을 먹여서 키운 그레인페드(grainfed) 쇠고기다.

 

호주의 초지가 좋은데도 곡물을 먹이는 이유는 풀만 뜯어먹은 소의 고기는 육질이 질기고 고소한 맛이 없어 한국인의 입맛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곡물을 먹이는 게 아니다. 비육우는 보통 1년 정도 키워서 도축하는데, 도축하기 100~120일 전부터 곡물을 먹인다. 그러면 살코기에 마블이 생겨서 차돌박이용 쇠고기를 생산할 수 있다. 이건 순전히 한국과 일본 시장을 위한 사육 방식이다."

 

이렇듯 곡물 사료를 먹인 그레인페드는 맛이 좋긴 하지만 광우병 발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미국, 영국, 아일랜드, 캐나다 등에서 광우병이 발생한 이유가 곡물 사료에다 동물의 뼛가루를 혼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지의 풀이나 순수 곡물만 먹인 소에서 광우병이 발생한 사례는 없다. 호주나 뉴질랜드 소에서 지금까지 광우병이 전혀 발생하지 않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안전성에 유독 신경 쓰는 호주 축산업

 

뿐만 아니라 축산농가로 직접 찾아가서 확인해본 결과 여러 가지 시스템이 운용되고 있었다. 전국 곡물 비육장 인증 제도, 전국 가축 식별 제도, 꼬리/귀표 시스템, 전국 농장 식별 코드 등의 시스템이 그것이다. 그 상세한 내용을 호주축산공사에서 제공받은 자료를 토대로 아래와 같이 정리해보았다.

 

▲ 전국 곡물 비육장 인증 제도(NFAS) : 수출용 곡물 비육의 위생 및 생산 관리 매뉴얼에 따라 사료와 용수의 안전성, 수의학적 치료, 살충제 검사 등을 꼼꼼하게 점검한다.

 

▲ 전국 가축 식별 제도(NUS) : 라디오 주파수 기술을 이용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저장하는 제도로 질병 통제와 원인 규명에 활용한다.

 

▲ 꼬리/귀표 시스템(Tail/Ear Tag System) : 소를 매매하거나 도축할 때는 꼬리/귀표가 부착되어 따라다니고, 소에 남아 있는 모든 잔류물 상태가 중앙데이터 베이스를 통해 철저하게 관리된다.

 

▲ 전국 농장 식별 코드(PIC) : 소의 이력을 추적하는 기본 시스템으로 호주의 모든 농장엔 주정부가 발행하는 8자리 숫자 식별 코드가 있다.

 

소의 일생이 다 읽히는 이력 추적 시스템... 미국은 제대로 가동 안 돼

 

호주축산공사의 피터 위크스 연구원은 '전국 농장 식별 코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였다.

 

"호주에선 한 마리의 소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도축될 때까지 따라다니는 8자리 숫자로 된 식별 코드가 있다. 그 소의 성장 과정을 추적하는 시스템으로, 소가 태어나면 위 속에다 컴퓨터 칩을 집어넣고 필요할 때 스캐너로 읽으면 즉석에서 모든 자료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시스템은 호주의 한 축산 농부가 발명한 것이다.

 

호주는 1975년부터 이 추적 시스템을 운용하였고 1996년부터는 전국적으로 이를 의무화하여 현재 모든 소 개체의 생산, 가공, 유통 과정이 추적 가능하다. 이런 방식으로 모든 비육우에 대한 추적 시스템을 완성한 국가는 호주가 유일하다."

 

반면 미국산 쇠고기의 이력 추적 시스템은 거의 가동되지 않는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해도 어느 목장에서 사육된 소에서 발병했는지 확인하기가 어렵다. 한국 정부도 지난해 5월 국제수역사무국(OIE)에 제출한 비공개 의견서에서 "미국의 이력 추적 시스템이 완전하지 않아 2005년과 2006년에 잇따라 광우병 소가 발생했지만 어느 농장에서 발생했는지는 밝히지 못했다"고 우려했다.

 

한국엔 "미국산, 세계에서 가장 안전" 강조하면서 호주산 대량 수입하는 미국

 

한국의 수입 쇠고기 시장은 지난 3년 동안 호주와 뉴질랜드산 쇠고기의 독무대였다. 2003년, 캐나다와 미국에서 연이어 광우병이 발생하자 한국 정부에서 두 나라의 쇠고기 수입을 중단시켰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한국에 쇠고기를 수출하는 나라의 순위는 미국(68%), 호주(22%), 뉴질랜드, 캐나다 순이었다.

 

특히 2007년은 호주산 쇠고기의 한국 수출이 정점에 이른 해였다. 한국 쇠고기 수입 총량의 73%(약 15만톤)를 호주산이 차지했고, 미국산이 7%, 기타가 20%였다.

 

호주축산공사 자료에 의하면, 호주는 전 세계 180개 국가에 쇠고기를 수출하고 있다. 호주산 쇠고기의 주요 수출 시장은 일본(43.5%), 미국(33.2%), 한국(13.6%) 순이다.

 

 

그런데 언뜻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쇠고기 주요 수출 국가인 미국이 호주산 쇠고기를 대량으로 수입한다는 대목이다. 미국 내에서도 지역마다, 사람마다 입맛이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이 자국 쇠고기는 팔고 호주산 쇠고기를 들여오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과연 그것뿐일까?

 

이에 대해 자신의 비육우 농장에서 생산되는 쇠고기의 대부분을 미국으로 수출한다는 레이 싱글톤씨는 "미국인들 중에 풀만 먹고 자란 그래스페드 쇠고기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있어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싱글톤씨는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믿지 못하는 일부 미국인들이 광우병 발생 기록이 없는 호주산과 뉴질랜드산 쇠고기를 찾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부연했다.

 

이 이야기를 듣는 동안 기자의 머릿속에는, 이번 한미 쇠고기 협상에 대한 한국인들의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미국 정부에서 "국내 및 해외의 모든 소비자들에게 미국산 쇠고기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사실을 확신시켜주고 싶다"(워싱턴 현지시간으로 지난 4일 오후, 리처드 레이먼드 미국 농무부 식품안전담당 차관)고 한국 특파원단을 상대로 강조한 사실이 떠올랐다. 묘한 중첩이다.

 

 

호주산이든 미국산이든 중요한 건 안전성

 

오는 5월 15일부터 미국산 쇠고기가 한국에 상륙하면 호주 축산 농가와 쇠고기 수출업체들은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이를 두고 시드니에서 쇠고기 수출 사업을 하는 한인동포 김홍범씨는 "호주 축산 농가와 쇠고기 수출업체들은 폭탄을 맞은 거나 다름없다"면서 "이미 한국의 쇠고기 수입업자들이 호주 쪽에 오더(주문)를 하지 않는 상태"라고 밝혔다.

 

사실 호주는 한국 시장을 놓고 벌어지는 쇠고기 수출 경쟁에서 미국의 맞수가 될 수 없다. 우선 호주산 쇠고기는 육질이나 맛에서 그레인페드 위주의 미국산에 뒤진다. 더욱이 미국산 쇠고기는 관세의 영향으로 호주산보다 훨씬 싸게 수출된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 합의안을 보면, 한국은 미국에 현행 40%인 쇠고기 관세를 협정 발효 시점부터 단계적으로 낮춰 15년 후에 철폐하기로 했다.

 

어디 그뿐인가. 내륙의 오랜 가뭄으로 물 부족 현상을 겪고 있는 호주 축산 농가들은 곡물 가격 폭등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게다가 호주 달러의 지속적인 강세로, 특히 미국에 아주 불리한 상황이다.

 

이런 악조건에서 호주가 미국을 상대로 한판 승부를 펼칠 수 있는 분야가 '현재까지 광우병 발생 0%' 등을 내세운 쇠고기의 안전성이다. 호주 농민과 정부 기관이 안전성 문제에 유독 신경 쓰는 것도 따지고 보면 적정한 이윤을 남기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한국 소비자에게는 결과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게 있다. 기자가 호주에 오래 머물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호주산 쇠고기를 홍보하려는 생각은 조금도 없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한우 대신 한국인의 식탁에 오르는 쇠고기가 미국산이든, 호주산이든 기자와는 개인적으로 아무 상관이 없다.

 

다만 먹을거리 선택에서 안전성 문제는 무엇보다 중요하며, 그에 대한 검증은 아무리 철저해도 지나치지 않음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쇠고기 수입 협상을 하면서, 한 마리의 소가 탄생해서 식탁에 오를 때까지 전 과정의 안전성 문제에서 미국산이 그 이외 국가들의 쇠고기보다 정말 우수한지를 한국 정부 당국자들이 얼마나 고려했을지 의문이다. 이번 한미 쇠고기 협상이 못내 아쉬운 것도 그 때문이다.

 


태그:#광우병, #미국쇠고기, #호주쇠고기, #그래스페드, #그레인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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