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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시 서포면에 건립된 '귀향 기원 위령비'는 오는 10일 제막식을 앞두고 천막으로 덮어씌워져 있다.
 사천시 서포면에 건립된 '귀향 기원 위령비'는 오는 10일 제막식을 앞두고 천막으로 덮어씌워져 있다.
ⓒ 사천진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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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가미카제(神風) 특공대원으로 입대했던 탁경현(1920년생·'미쓰야마 부미히로'로 창씨개명) 등을 기리는 위령비가 건립되어 논란을 빚고 있는 속에, 광복회 울산경남연합지부가 오는 10일 예정된 제막식 때 항의하겠다고 밝혀 관심을 끈다.

'귀향 기원 위령비'는 경남 사천시 서포면에 세워졌는데, 오는 10일 낮 12시 제막식을 거행할 예정이다. 이 위령비는 일본 여배우 구로다 후쿠미씨가 재정지원을 하고 사천시가 터를 제공했으며, 고승관 홍익대 교수(조형대학 프로덕트디자인)가 제작했다. 현재 위령비는 천막으로 가려 놓은 상태다.

사천 서포 출신인 탁경현은 1945년 5월 11일 가미카제 특공대원으로 출격해 전사했다. 위령비 제막식은 탁경현이 전사한 날을 기념해 출격 하루 전날 열린다. 이날 제막식에는 구로다 후쿠미씨를 비롯해 일본에서 30여명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대한광복회 울산경남연합지부는 반발하고 나섰다. 김형갑 지부장은 "어느 나라 사람이건 가미카제는 일본천황에게 충성을 다한 극우였다. 한국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의든 타의든 일본천황을 위해 맹세했다면 가미카제의 한 조직원이었다. 일본을 위해 죽은 사람을 어떻게 기린다는 것이냐"라고 말했다.

김 지부장은 "마산·창원·진주·진해 등 각 지회별로 최대한 회원들을 동원하기로 했다. 위령비 건립에 반대하는 현수막을 들고 제막식 행사장에 갈 것이다. 실력으로 저지하더라도 광복회원의 정신으로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6일 사천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위령비 건립 반대 입장을 낸 사천진보연합은 7일 저녁 전체 회의를 열고 제막식을 물리적으로 막을 것인지 여부에 대해 논의한다.

사천진보연합 관계자는 "광복회에서 연락이 왔더라. 제막식을 막을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구체적인 대응책은 전체 회의를 통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천시장은 제막식 참석하지 않는다"

김수영 사천시장은 이날 위령비 제막식에 참석하지 않는다. 사천시청 관계자는 "김 시장은 제막식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면서 "제막식을 연기할 지 여부에 대해 실행위원회 측과 논의를 하고 있는데, 늦어도 8일까지는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 시행할 때는 서포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했고, 시민 전체 여론은 수렴하지 못했다. 당시 몇 사람이 반대하기는 했지만 나중에는 동의해 주었다"면서 "시민 전체로 확산될 것에 대해 예측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처음에는 일본 여배우가 지원하는 등 순수하게 좋은 뜻으로 보았다. 여배우를 통해 지역을 일본에 홍보할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다고 보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는 일본 여배우 구로다 후쿠미씨가 제막식에 참석하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다"면서 "제막식을 강행할 지 여부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실행위원회 측에 저항이 거세다는 분위기를 전달했으며, 연기하는 방향으로 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민족문제연구소 "제막식 연기하라"

사천 서포에 세워진 '귀향 기원 위령비'는 제막식을 앞두고 천막으로 덮어 놓은 상태며, 일부 비문은 일본으로 되어 있다.
 사천 서포에 세워진 '귀향 기원 위령비'는 제막식을 앞두고 천막으로 덮어 놓은 상태며, 일부 비문은 일본으로 되어 있다.
ⓒ 사천진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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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는 "위령비 건립의 적절성과 타당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했다"면서 제막식 연기를 요청했다. 민족문제연구소 7일 별도 자료를 통해 "탁경현은 일본군의 기록에 의하면 사천 출신으로 교토약학 전문학교를 졸업하였고, 육군비행학교에서 견습사관으로 교육을 받은 후 육군항공부대로 배속되어 출격명령을 하달 받았다. 당시 24세의 나이로 출격해 1945년 5월 11일 오키나와 해상에서 전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탁경현은 철저한 황민화교육하에서 강요된 '지원'에 의해 동원되어야 했으며, 거부할 수 없는 출격 명령에 몸부림치다 꽃다운 나이에 피워보지도 못한 채 결국 비극적 생을 마감한 것"이라며 "그러나 탁경현은 황민화교육과 침략전쟁의 희생자인 한편, 무고한 오키나와현민이나 연합군의 관점에서는 가해자인 성격도 부정할 수 없다"고 설명.

이어 연구소는 "일본인 구로다 후쿠미씨가 불행한 죽음을 맞이한 탁경현과 사천 출신의 희생자를 위해 위령비를 건립하여 전쟁의 비극과 평화의 존엄함을 차세대에 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면서 "강요된 희생으로 인해 억울하게 유명을 달리한 탁경현의 유족이 망자를 위로하고 추모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침략전쟁의 동조자 또는 협력자로서 사회적 지탄을 받아야 했던 고난의 세월에 대해 유족에 대한 위로와 희생자에 대한 애도의 뜻을 표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연구소는 "탁경현이 유족들의 의사에 반하여 충량한 황군의 병사로 '도죠 히데키'를 비롯한 A급전범과 함께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되어 있으며, 일본의 전쟁영웅으로 현창되고 있다"면서 "일본 각지의 호국신사에 건립되어 있는 위령비가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가해의 책임을 회피하고 해방을 위한 성전의 도구로 미화되고 있는 점에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조선인 특공대원 희생자의 원혼을 위로하고자 하는 선량한 일본시민의 양심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가해 책임을 회피하고 침략전쟁을 미화·선전하기 위한 도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또한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고 연구소는 우려했다.

연구소는 "나날이 거세지고 있는 일본 정부의 역사왜곡 기도와 수상과 각료의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계속되고 있고, 일본군 '위안부'를 비롯한 한국인 전쟁 희생자들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 현 시점에서 이번 위령비 건립의 적절성과 타당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연구소는 "방한을 계획하고 있는 구로다 후쿠미씨를 비롯한 방한 인사들과 함께 위령비의 건립 취지, 건립을 위한 과정, 유족들의 의사, 추모의식과 내용 등을 진지하게 청취하고, 한일 시민간의 합의하에서 적절한 의식과 절차를 통해 거행될 수 있도록 오는 10일 위령비 제막행사를 잠정 연기하기를 희망한다"고 촉구했다.

또 연구소는 "탁경현을 비롯한 조선인 특공대원에 대한 진상규명과 역사적 평가를 통해 적절한 방식으로 억울한 원혼을 위로하고 추도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마련해 나갈 것"을 요구했다.

사천시는 오는 10일 열릴 예정인 위령비 제막식을 연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사천시는 오는 10일 열릴 예정인 위령비 제막식을 연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 사천진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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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탁경현, #가미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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