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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1

"재협상은 불가능하다." 6일 오후 한미 쇠고기 협상 협상대표였던 민동석 농림수산식품부 농업통상정책관의 말이다. 이날 오전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재협상을 검토할 수 있다"는 정부의 입장과 전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

 

# 장면 2

"미국산 쇠고기 문제는 오랜 통상 현안이다" - "일반적인 통상협상이 아니다"... 불과 몇 분 사이로 민 정책관이 내뱉은 말이다. 전혀 상반되는 내용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질의를 하던 기자가 "자꾸 얘기가 바뀌는 것 아니냐"고 지적할 정도였다.

 

이는 이날 오후 3시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 열린 미국산 쇠고기 개방과 관련한 '2차 끝장 질의응답' 기자회견장의 모습이다. 정부는 "광우병 의혹에 대한 모든 오해와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마련했다"라고 밝혔다. 4시간 동안 취재진의 질문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정부의 답변은 혼란만 가중시켰다. 협상대표를 비롯한 정부 관계자의 말은 일관성 없이 '왔다갔다' 했다. 며칠 전, 다른 정부 당국자가 했던 말과 배치되는 발언을 하고, 심지어는 스스로의 말을 뒤집는 경우도 있었다.

 

이날 기자회견은 정부의 말과는 달리, 해명은 없었고 오해만 더 쌓이게 만들었다. 취재하던 기자는 정확한 답변을 얻어내기 위해 똑같은 질문을 여러 차례 던져야 했다. 이를 지켜보던 네티즌들도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며 답답해하긴 마찬가지였다.

 

당정협의 "재협상 검토할 수 있다" -  민동석 "재협상은 불가능"

 

6일 오전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서 한나라당은 정부에 "재협상 가능성이 있느냐"고 물었고, 정부는 "재협의를 포함한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답했다. 조윤선 한나라당 대변인도, 안상수 원내대표도 "정부가 재협상이 가능하다고 약속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날 '2차 끝장 질의응답 기자회견'에서 민동석 정책관은 "재협상은 없다"고 못 박았다. "당정협의에서 '재협상을 검토할 수 있다'는 말이 나왔다"는 취재진의 지적에도 그는 "재협상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민 정책관은 "당정협의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얘기가 나왔는지 따져보겠다"면서도 "수석대표로서 협상은 종료됐고, 재협상은 불가능하다고 말씀 드릴 수 있다"고 전했다. 취재진이 여러 차례 질문했지만 그의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그러면서도 "미국의 광우병 위험 통제국 지위가 취소되는 등 특별한 상황이 있을 경우, 수입위생조건을 부분적으로 개정하자는 요구는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민 정책관은 이어 "미국이 현재 대만, 일본, 중국 등 여러 나라와 국제수역사무국 기준으로 협상을 하고 있는데, 이 나라들이 우리보다 강화된 수입위생조건을 체결하는 경우, 그 내용을 분석하고 재협의 요구를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의 말은 얼마 가지 않아 바뀌었다. 한 기자가 "일본, 대만 등이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더 강화된 수입제한 조치를 요구하고, 미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우리는 이 사례를 가지고 개정을 요구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한 민 정책관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 그는 "그것은 미국과 그 나라의 개별적인 관계"라는 게 그 이유다. 비슷한 취지의 질문에 대한 전혀 상반된 답변은 혼란을 가중시켰다.

 

혼란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민 정책관은 "협상에서 우리가 대폭 양보한 게 아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한미 쇠고기 협상은 주고받는 통상현안이나 무역협상이 아니다, 국민 건강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답했다. "주고받는 협상이 아니기 때문에 '양보'라는 개념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는 "이번 쇠고기 협상 결과는 지난해 정부의 입장과 다른 것"이라는 취재진의 지적에 대해 "통상 현안이다, 협상은 상대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관철시킬 수 없다"며 상반된 주장을 폈다. 

 

그는 이미 지난 4월18일 한미 쇠고기 협상 타결 기자회견에서 삼계탕 미국 수출, 강화된 동물성 사료 금지 조치 등을 언급하며 "이익의 균형이 이뤄졌다"며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주고받은 성공적인 협상이 되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날 같은 사안을 두고 상반된 주장을 내놓는 민 정책관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았다.

 

'무너진 원칙' 해명하다 '무너진 원칙' 드러내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부는 무너진 원칙에 대한 지적과 관련해, 해명을 하다가 스스로 원칙을 저버린 행위를 드러내기도 했다.

 

정부는 지금껏 "우리 정부는 왜 원칙을 저버리고 입장을 바꿨느냐?"는 질문에 "입장이 바뀌지 않았다,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과학적인 근거와 국제적인 기준을 가지고 협상에 임했다"고 답했다. "굳이 OIE 기준보다 더 강화된 기준을 설정할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날 민동석 정책관은 정부가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는 "한우를 수출하기 위해 미국으로부터 구제역 청정국가로 인정받아야 한다"며 "OIE로부터 지정을 받았지만, 미국으로부턴 받지 못했다, 협상 때 강하게 요청했다"고 강조했다.

 

한우 수출에 대해 미국은 우리에게 OIE 기준보다 더 높은 기준을 요구한 반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우리는 원칙을 저버리면서 수입 기준을 OIE 수준으로 대폭 낮춘 것이다.

 

이날 밝혀진 '무너진 원칙'은 이뿐이 아니다. 정부는 지난 2일 '1차 끝장 질의응답' 때 "의약품과 화장품에 사용되는 젤라틴, 콜라겐은 소가죽 등을 이용해 생산되는데, 여기엔 광우병 원인 물질인 변형 프리온이 없다"고 밝혔다. 이 역시 "OIE 기준을 따른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날 이종구 질병관리본부장은 "의약품, 화장품 등에 쓰이는 것들은 자국의 기준에 따라서 (수입)하는 것"이라며 "광우병 발생 위험국 제품에 대한 수입 금지 조치는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태그:#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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