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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10년만에 찾은 행복을 만껏 누리기 시작한 가다미사라씨.
▲ 다미사라씨 결혼 10년만에 찾은 행복을 만껏 누리기 시작한 가다미사라씨.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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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만난 것은 작은 시골학교의 교실에서였다. 충남 태안에도 몇 년 전부터 많은 외국인이 결혼과 동시에 이주를 해왔으나 이들을 위해 한글이나 문화를 교육하는 곳은 없었다. 그러던 중 이주 여성인 그녀가 자녀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키면서 변화가 생겼다.

한글공부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그녀로 인해 수업이 개설되었고 많은 변화를 거쳐 지금은 태안읍 여성회관에 결혼이민자 가족지원센터가 들어섰으며 이곳에서 이주여성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실시되고 있다. 태안군 이주여성들의 한국배우기에 디딤돌 역할을 한 그녀의 이름은 가다미사리(40)다.

교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그녀가 있었다. 태안읍 화동초등학교(교장 이병선) 조재신 교감 선생님이 직접 수업하는 한글수업에 2명의 수강생이 앉아있다. 원래는 수강생이 6명인데 몇몇은 고국에 일시 방문했고 일부는 임산부가 되어 거동이 불편해 오늘 수업은 그야말로 과외수업이다.

근데 오늘은 수업이 잘 되지는 못할 듯하다. 수업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미사라씨가 섬성씨를 나무라기 시작한다. 이유인즉 다미사라씨는 섬성씨가 한글공부를 게을리 한다는 것이다.

결혼과 동시에 한국으로 귀화해, 올해 3학년이 된 상희라는 이름의 자녀를 둔 다미사라씨는 섬성씨도 곧 있으면 아이가 학교에 입학한 것을 알기에 하루라도 빨리 한글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다미사라씨는 상희도 학교에 입학하고 아이들과 언어소통이 안 돼 자주 싸웠다고 한다. 또 대부분의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상희와 달리 많은 것을 미리 배우고 입학해 학습 진도를 따라가기는 것도 어렵다고 한다.

“애기 위해서 빨리 배워야 해요. 근데 태국사람 게을러요. 날씨 더워서…. 애기가 선생님말 이해 못 해요.”

하지만 섬성씨는 다미사라씨의 핀잔이 싫다. 마주치기만 하면 “공부해라 공부해라”며 싫은 소리로 핀잔만 하니 섬성씨로서는 자꾸 위축만 되고 섭섭하다. 이날도 섬성씨는 예전 일까지 들추며 서투른 한국어로 교감 선생님에게 다미사라씨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전하다 끝내 눈물을 보였다.

섬성씨가 눈물을 보이자 다미사라씨도 미안했는지 “미안해, 언니가 미안해”하며 연신 사과를 한다. 그래도 섬성씨의 맘은 좀처럼 누그러들지 않는다. 끝내는 조재신 교감 선생님이 중재에 나서 화해를 시키고 다시 한글공부를 시작한다.

오늘은 청개구리에 대한 이야기로 한글공부를 한다. 손가락으로 낱말 하나하나를 가르치며 조재신 교감이 읽어주면 다미사라씨와 섬성씨가 뒤이어 따라 읽는다.

태안군 화동초에서는 매주 금요일 한글교실이 열린다.
▲ 한글교실 태안군 화동초에서는 매주 금요일 한글교실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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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신각신 끝에 수업이 시작됐지만 10여 분만에 섬성씨의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섬성씨가 집으로 갔다.

수업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자 조 교감은 대화방을 열어 '다미사라씨가 마음 약한 섬성씨에게 좀 더 한글지도를 친절하게 해 줘라', '요즘 남편과는 잘 지내느냐', '농사일은 잘 되가냐'는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수업 방식을 전향했다.

“물론 한글 공부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한국문화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해요. 또 자꾸 대화를 하다 보면 한국어 실력도 향상되고, 자신감도 갖게 되고, 그래서 주로 대화를 많이 하는 방식의 수업을 선호해요. 대개 이주여성들이 남편을 비롯한 주변인과도 대화가 적어 답답해하는 경향이 태반이죠.”

수업을 마치고 학교급식을 먹고 나서야 집으로 향한 다마사라씨와 함께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모국인 태국에서도 직장에 다니지 않고 10여 년간 여행을 하며 지냈다는 다미사라씨는 활발하고 적극적인 성격이었다. 허나 농사일은 힘들고 어려워 하지 못한다며 남편 가재구(48)씨에게 모두 위임했다고 한다.

“농사일 못해요. 힘들어. 아빠가 다해. 나는 안 해. 난 그냥 가끔…. 혼자서 못 하는거 있을때.”

“태국에서도 일 안 해. 막 여행. 돈?(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만들며) 그냥… 길거리 꽃 팔고, 섬에 들어갈 때 싼 거 가지고 들어가서.”

여행경비 마련을 위해 거리 식물이나 생활필수품을 저가로 구입해 가는 곳마다 노점상을 열었다는 그녀는 돈을 버는 방식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결혼 후 남편이 일을 나가도 사업자가 임금을 체벌하는 경우가 많아 임신부 시절에는 쌀이 없어 국수로 하루 세끼를 때우고 이웃들의 도움을 받았다는 그녀가 작년부터 친구의 도움으로 태국산 야채농사를 짓겠다며 태국을 다녀온 친구 편에 씨앗을 구해 농사를 시작해 작년 4000만원의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처음 농사를 시작할 때 남편의 반대도 있었지만 그녀는 자신이 있었기에 남편을 설득했다고 한다. 야채농사가 제법 수익을 가져오자 남편도 달라졌다. 하루 종일 농사일로 지친 피곤한 몸을 이끌고도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남편 옆에서 그녀도 한글공부를 한다고 한다.

나란히 앉은 다미사라씨부부가 태국산 채소를 다듬고 있다.
▲ 부부가 나란히 나란히 앉은 다미사라씨부부가 태국산 채소를 다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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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행복한 가정이 있기까지 다미사라씨에게 어려움도 참 많았다. 친구가 한국으로 시집간다는 말에 “나도 한국가고 싶다”며 지난 1998년도 필리핀에서 지금의 남편을 처음 만나 그 자리에서 100쌍의 커플이 합동결혼식을 올리고 한국에 왔다.

인천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부부는 남편은 중장비 기사로, 목수로, 막노동판을 누비며 돈을 벌기 위해 애를 쓰고 다녔지만 좀처럼 돈을 모으지 못했다. 부부는 자주 싸웠다. 그렇지만 말이 통하지 않아 갈수록 대화도 단절되고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도 줄어만 갔다.

힘들었다. 남편이 일터로 나가면 홀로 남겨진 그녀는 입을 굳게 다물 수밖에 없었다. 태국에서의 활발하고 적극적이었던 성격은 갈수록 찾아보기 힘들었고 혼자 보내는 시간은 길어졌다. 그렇게 힘들게 살던 중 한글을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고 남편과의 대화를 시도하고 남편도 마음을 열어 줄 것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나브로 열어가던 마음은 그녀가 병을 앓게 되면서 건강상의 문제로 남편의 고향인 태안으로 내려오면서 비로소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 갔다. 허나 상희(10)의 학교 입학이 코앞으로 다가왔을 때까지도 다미사라씨는 이웃주민들과 이렇다 할 대화를 한 적이 없다. 또다시 변화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애기가 학교 가서 나도 한국어 배웠어요. 아빠, 애기랑 말이 안 돼, 무슨 말인지 몰라. 공부했어요.”

한글공부를 하면서 태국에서처럼 다시 활발함과 적극적인 성격을 찾게 된 다미사라씨. 허나 문화차이로 인한 시댁식구와의 거리와 이주 여성에 대한 편견으로 속앓이는 계속됐다.

그녀는 한국 사람들이 타 문화를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매우 소극적이라고 말한다. 태국에선 학교에 입학하면서 타인과 타 문화를 접할 때 항상 열린 마음으로 이해심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친다고 한다.

다미사라씨의 가족. 왼쪽부터 남편 가재구씨.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인 상희. 그리고 다미사라씨.
▲ 가족사진 다미사라씨의 가족. 왼쪽부터 남편 가재구씨.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인 상희. 그리고 다미사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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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둥글게, 한국사람 태국사람 이해 안 해. 문화차이 이해 안 해. 태국에서는 학교 가면 둥글게 둥글게 가르쳐요.”

시댁 식구들도 그녀가 이주 여성이란 편견으로 다미사라씨에 대한 믿음이 적어 경제권을 넘겨받기에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뉴스 보면 태국사람 도망가는거 많이 나와요. 뉴스 보면 마음 아파요. 그래서 오해 많아요. 동네 사람들 태국 사람 보면 에이 도망가. 돈 뜯어 먹고 도망가. 돈 벌어서 그거 가지고 애기 놓고…. 용돈 하나도 안 줘요.”

“태국 사람들 노력 많이 해야 해요. 태국 가고 싶은 마음 없어야 해요. 한국사람 부지런해요. 게으른거 없어야 해요.”

다미사라씨에 의하면 한국사람과 결혼을 하고도 언어소통 문제와 문화차이로 인해 모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을 한국생활 초기에 대다수의 이주 여성들이 하고 있으며 일부는 실제로 이혼을 하고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이제야 한국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된 다미사라씨는 요즘 일주일이 하루 같이 여겨질 만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월요일과 목요일, 금요일에는 한글공부를 하기 위해 한글교육 교실에 나가고 있고 나머지 화요일과, 수요일에는 그녀가 살고 있는 인근 지역을 그녀의 애마 오토바이를 이용해 산책을 즐기고 있으며 주말이면 타지역으로 여행을 계획해 떠나기도 한다. 

집에 있을 경우엔 대체로 식구들을 위한 음식을 만들어 볼 때가 많다는 그녀는 이젠 한국음식도 TV 요리프로그램과 책자를 보며 따라하기를 거듭해 미숙하지만 흉내는 낼 수 있을 정도가 됐다. 또, 육류보다 야채를 즐겨 먹는 가족들의 식성으로 별다른 조리를 하지 않아도 식단을 꾸리기에는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본래 여행을 좋아하는 그녀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특히 한국인과 결혼해 귀화한 다른 이주 여성들과의 만남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대화처럼 편안하다.

그래서일까? 지난달 30일 태안군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소장 조한숙)에서 처음으로 태안군 이주 여성들의 실태를 조사하고 만남의 시간을 마련한 자리에서의 그녀의 모습은 흥분된 마음을 감추지 못한 순박한 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타를 찾은 이주 여성의 아이와 시부모, 남편들이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한 모습
▲ 가족 나들이 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타를 찾은 이주 여성의 아이와 시부모, 남편들이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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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이주 여성들도 아이와 함께 혹은 시부모, 남편과 동반해 이야기 꽃을 피우며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내내 환한 웃음이 잠시도 얼굴을 떠나지 않았다.

조한숙 소장은 “이주 여성들이 갈수록 태안군에도 늘어나고 있어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구상하던 중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을 위한 모임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됐다”며 “올 4월부터 문을 연 태안군 결혼이민자가족센터는 이주 여성들의 한국생활 적응을 위해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제는 한국가정도 이주 여성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이들을 우리 가족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며 정부에서도 지대한 관심을 보여줘야 할 시기이다.”고도 전했다.

한국생활이 어느 정도 적응이 되면서 다마사라씨에게는 꿈이 생겼다. 바로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다. 그녀는 마침내 한국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할 때가 되면 한국 대학에 진학해 교육을 받고 싶다고 했다. 앞으로도 그녀의 한국 도전기는 끝이 없을 것 같다.

태안군 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타를 찾은 이주 여성들이 처음으로 단체만남을 갖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단체사진 태안군 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타를 찾은 이주 여성들이 처음으로 단체만남을 갖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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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태안군, #이주 여성 , #다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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