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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기찻길을 바라보면 이따금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다. 가슴 저리게 그리운 것이 흘러간 지난 세월인지, 또는 잃어 버린 사람들인지 알 수 없지만 뜨거운 땡볕 내리쬐는 한낮에 울컥 치미는 그리움을 안고 무작정 기차를 타고 떠나고 싶었다.

 

정동진역에서 고달픈 삶을 던져 버리다

 

나는 지난달 17일 우리 학생들의 수학여행 덕분에 정동진역(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1리)에 갈 수 있었다. 우리가 정동진역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께. 시골 역의 소박함이 묻어나는 역사에도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정동진(正東津)은 서울 광화문서 정동방에 위치한 나루터 있는 부락이라 해서 그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사실 위도상으로는 서울 도봉산의 정동방에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하나 옛사람들의 계산이 크게 빗나가지는 않은 것 같다.

 

정동진역은 우리나라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역으로 김종학 연출, 송지나 극본의 TV 드라마 <모래시계(1995)>가 방영된 뒤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그리고 해돋이 열차가 운행되면서 이름난 해맞이 관광 명소로 떠오르게 되었다.

 

나는 끝없는 정동진역 기찻길을 바라보면서 40여 년 전, 바닷가 작은 마을에 첫 기적 소리를 힘차게 울리며 요란스럽게 도착했을 증기기관차의 늠름한 모습을 머릿속에 그렸다. 아마 경사가 났다며 조용하던 마을이 몹시 떠들썩했을 것이다. 순박한 마을 사람들은 호기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일찌감치 기차 구경을 하러 나왔겠지.

 

예전이나 지금이나 설렘, 막연한 기대감, 작은 희망, 그리고 슬픔에 젖은 그리움 등이 느껴지는 곳이 기찻길인 것 같다. 어쩌다 야간열차를 타야 할 때면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우리들의 피곤한 삶처럼 막연한 두려움이 스멀스멀 엄습해 오기도 하지만 말이다. 

 

빗속에도 밀려오는 파도와 장난치는 아이들의 경쾌한 소리를 들으며 바다와 맞붙어 있는 듯 보이는 정동진역의 운치 있는 풍경 속으로 나는 지친 마음을 던져 버렸다. 무엇이 우리를 정동진역으로 오게 하는 것일까. 낭만에 젖고 싶어서, 또는 사랑하는 사람과 추억을 쌓고 싶어서? 그곳에 가 보지 않으면 결코 알지 못하리라.

 

풍경이 달린 팔각구층석탑의 오대산 월정사로

 

비에 축축히 젖은 정동진역을 뒤로하고 우리는 오대산 월정사(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오후 3시 20분께 월정사에 도착했다. 어느새 비도 멎었다. 월정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자장 율사에 의해 세워졌다고 전해진다.

 

당나라에서 돌아온 자장이 오대산을 문수보살(文殊菩薩)이 머무는 성지라고 여겨 지금의 절터에 초암(草庵)을 짓고 문수보살을 친견하고자 하였다는 거다. 월정사의 본당인 적광전 앞뜰에는 팔각구층석탑(국보 제48호)이 서 있다. 우리나라 북쪽 지방에 유행했던 다각다층석탑(多角多層石塔)의 하나로 고려 초기 석탑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팔각 모양의 2단 기단(基壇) 위에 9층 탑신(塔身)을 올린 뒤 아랫부분은 돌로, 윗부분은 금동으로 만들어진 머리 장식을 얹어 마무리했다.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급격히 줄어드는 여느 석탑과 달리 2층 탑신부터 거의 같은 높이를 유지하고 있는 탑신부가 인상적이다. 게다가 1층 탑신의 4면에 불상을 모셔 두는 네모난 작은 감실(龕室)을 마련해 두었는데, 남면의 감실이 가장 크고 문틀을 단 흔적도 있다.

 

지붕돌은 가볍게 들려 있는 여덟 귀퉁이마다 청동으로 만든 풍경을 달아 놓아 화려한 느낌을 준다. 나는 바람의 향기를 음미하고 있는 듯한 풍경들의 아름다움에 금세 빠져 들었다. 지금 성보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는 석조보살좌상(보물 제139호)이 그 석탑을 향해 오른쪽 무릎은 꿇고 왼쪽 다리를 세워 앉은 채 두 손을 가슴에 모아 공양드리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한다. 높이 1.8m의 보살상으로 머리에는 높다란 관(冠)을 쓰고 재미있게도 오른쪽 팔꿈치 아래 동자상(童子像)을 받침으로 괴고 있었다는 거다.

 

월정사는 몇 차례 화재와 6·25 전쟁의 참화로 칠불보전을 비롯한 많은 건물들이 불타고 소장 문화재와 사료들을 잃는 비운을 겪었다. 그러나 적광전 앞에 늘씬한 자태로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듯 서 있던 팔각구층석탑의 아름다움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마침 동료 선생님의 동생이 월정사 단기출가학교의 1기 졸업생인 인연으로 운 좋게 단기출가학교장인 동은 스님의 차 대접을 받은 일은 더더욱 기억에 남는다.

 

백초차에 박하 잎을 섞은 것으로 담백하면서 향긋했다. 우리 삶도 그렇게 소박하면서 은은한 아름다움을 지닐 수 없는 것일까. 요즘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안전한 먹을거리를 요구하는 것이 우리들의 당연한 권리가 아닌가. 이제 하루하루의 식탁이 과연 우리에게 행복을 줄 수 있을까 하는 불안으로 마음이 뒤숭숭해진다.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 중부고속도로 호법 분기점→원주-강릉 방면→강릉 분기점 강릉 방면→안인, 정동진 방면

* 강릉 I.C→영동고속도로→진부 I.C→월정사

* (원주)중부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진부 I.C →월정사


태그:#정동진기찻길, #오대산월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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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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