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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지성이라는 노암 촘스키는 유럽에서 위험인물로 분류된 적이 있다. 바로 프랑스의 '포리송 사건' 때문이다. 프랑스의 한 교수가 2차 세계대전 동안 나치가 가스실을 사용해서 유태인을 학살했다는 주장을 부인해서 해임을 당한 사건이 있었다. 물론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과 언론은 이 교수를 미친 혹은 비윤리적인 사람으로 매도하기 바빴다.

하지만 촘스키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이에 대한 탄원서에서 촘스키는 '그가 어떤 말을 하건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어선 안 된다'며 그를 옹호했다. 당시 촘스키는 나치에 관한 그의 주장은 동의할 수 없지만 동시에 우리는 그의 표현의 자유 또한 침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우리 마음에 드는 표현만을 인정한다면, 우리가 그들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습니까?"라고 촘스키는 우리에게 되묻는다. 촘스키의 생각은 간단하다. 이 세상에는 옳은 주장도 그른 주장도 없다. 다만 공론의 장에서 자유로운 생각들의 경합이 있을 뿐이다. 그 논리가 탄탄하고 설득력이 있다면 살아남을 (혹은 선택 되어질) 것이고, 아니면 자연히 도태될 뿐이다. 이것이 바로 촘스키가 자유로운 표현의 자유를 주장할 수 있는 근거이다.

물론 촘스키의 이런 주장은 공론의 장에서 자유로이 경합을 벌이는 여러 주장들을 선택할 대중들이 합리적이라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런 믿음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다. 대중은 이성적이지도 합리적이지 않다. 아니 오히려 집단지성에 의한 의사결정과정은 심각하게 왜곡 될 수 있다고 그들은 말한다. 다원적 무지나 침묵의 나선에 의해서 말이다.

확인되지 않은 가설을 '확대 재생산' 하는 언론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3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촛불문화제를 열고 있다. 교복을 입고 집회에 참석한 여학생들 이명박 대통령을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3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촛불문화제를 열고 있다. 교복을 입고 집회에 참석한 여학생들 이명박 대통령을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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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학에 토대를 두고 발전을 해온 비판이론의 경우도 이 이슈에 있어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그들에 따르면 대중은 언제든지 선동될 수 있다. 그것이 정부에 의한 프로파간다든지 미디어의 부추김이든지 각종 이데올로기든지 말이다. 

이번 광우병 논란에서 국민들이 보인 태도는 한국 내에서 대중들이 어떤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이다. 공론의 장이 올바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유로운 여러 주장들이 있어야 하고, 주장은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이런 공론의 장에서 언론의 역할을 무엇일까? 사실을 올바로 확인해주며 공론의 장을 마련해 주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번 광우병 논란에 대한 언론은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대중에게 '교육시키는' 임무만을 수행했다.

광우병 파동에 관한 사실로 알려진 보도들은 전부 가설에 의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최근 급증한 치매를 근거로 광우병의 확산을 이야기한 대목이 있다. 치매는 여러 뇌질환중 주로 노인층에게 나타나고 있고 광우병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언론은 CJD(크로이트펠트 야콥병), vCJD(인간 광우병), 알츠하이머 등의 원인을 광우병으로 몰아갔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사실을 재창조 한 것이다.

한국인이 광우병에 특히 취약하다는 주장도 근거 없음이 밝혀졌다. 광우병에 걸린 사람들이 MM유전자를 갖고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학자들은 MM유전자와 광우병과의 인과관계를 아직 분석해 내지 못했다. 선행관계는 있지만 인과관계인지는 확인된 바 없다는 것이다.

마치 내가 매일 아침 쓰레기차를 본다고 해서 쓰레기차가 나 때문에 내 앞을 지나가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물론 더 연구를 해봐야겠지만 아직 확증되지 않는 가설을 진실인 것인 양 보도한 언론의 무책임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의 이런 확인되지 않는 가설들은 으레 그랬듯이 인터넷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며 광우병 괴담으로 발전해 나갔다. 그리고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다.

광우병에 대한 공포, 대중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실 공포는 대중의 행동을 조작하기 위해 사용된 아주 고전적인 수법이다.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간간이 사용되는 걸 보면 그 효과가 매우 톡톡한가보다. 재밌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공포가 극에 달한 대중은 폭력성을 띤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공포감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사건의 해결보다는 쌓여있는 당장의 압박을 해소시킬 수 있는 희생양을 요구한다.

사실 로마시대의 사형 전 죄수를 대중 앞에서 행진 시키는 것이나, 그리스 로마시대의 희생양 제도를 언급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2008년 대한민국에서도 그런 사례들은 도처에 널려있기 때문이다. 최근 혜진·예슬이 사건만 보아도 그렇다. 대중은 공포에 질려 범인을 사형시킬 것을 주장했다. 범인의 사형은 범죄 감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잠재적 범죄자들은 자신의 형량을 따져가며 범행을 저지르지 않기 때문이다.

정말 재범을 막고 범죄율을 낮추고 싶었다면 대중들은 사회적 차원의 시스템 확립과 범죄자들의 재교육을 요청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대중들은 살인을 선호했다. 인터넷과 방송, 신문들을 통해 그들은 공공연히 살인을 논하였다. 그렇다. 우리는 한 인간을(범죄자이긴 하지만) 죽일지 말 것인지를 공공연히 논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무런 원칙 없이 단지 더 많은 사람이 원하기 때문에 말이다. 혜진·예슬이를 죽인 범인과 사건 방지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음에도 범죄자를 죽이라고 말하는 폭력적인 대중과의 차이는 무엇인지 묻고 싶다.

일단 광우병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도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 일단 희생양은 정부로 잡은 듯하다. 그리고 매우 감정적인 욕설과 주장들을 뱉어내고 있다. 물론 대다수의 국민이 반대할만한 결정을 해놓고도 국민을 충분히 설득시키지 못한 이명박 정부는 그 잘못이 크다. 하지만 우리는 좀 더 냉철이 조목조목 그 잘못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정부 정책, 공론의 장에서 마음껏 까발려 보자!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3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을 가득 메우고 저마다 촛불을 들고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3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을 가득 메우고 저마다 촛불을 들고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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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에 휩싸여 이명박 대통령의 미니홈피를 습격해서 폐쇄시키는 것보다 더 나은 논리와 방식을 가지고 말이다. 제대로 된 반대여론은 오히려 상황을 올바로 이끌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감시해야 될 일과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검역체계에 관한 감시, 유통과정, 원산지 표시 등 국민들이 감시해야 할 이슈가 넘쳐나고 있다.

가족과의 저녁식사 시간에 통일 문제로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다. 이슈에 무관심한 한 누나가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딴 건 미리 생각해서 무엇하냐"고 말이다. 그런 건 내가 생각하지 않아도 남들이 다 알아서 해줄 거니깐 걱정 말라고 한다. 사실 지금까지 대중들의 태도도 이와 다르지 않았나 싶다. 정치와 사회이슈에 무관심했고 결국 내가 아님 남들이 해결해 주면 무임승차할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결국 모두 그런 생각을 했고 아무도 나서서 해결해 주지 않았다. 결국 자신의 건강이 위협받는 상황까지 오자 공포에 질린 대중들이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사실 이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본다. 사람들이 정부의 정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인터넷 종량제에 대한 논의도 시작된 듯하다. 건강보험에 관한 큰 이슈도 우리는 잊지 말아야한다.

공론의 장에서 정부의 정책을 마음껏 까발려 보자. 마음껏 놀아보자. 다만 낚이지만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공포에의 소구에, 민족주의에 언론의 포퓰리즘, 정치적 선동에 좀 더 현명히 대처하는 법을 함께 생각해 보자. 


태그:#광우병, #반론, #한우, #민족, #촘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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