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2일 오후 5시 30분, 서강대학교 이냐시오관 앞에 관광버스 두 대가 나란히 섰다. 주변에는 과엠티, 동아리엠티, 농활의 기대에 한껏 부푼 1, 2학년 학생들이 짐을 들고 여기저기 둥글게 모여 있다. 그러나 이 버스의 손님은 따로 있다. 바로 '여성과 취업'을 수강 중인 3, 4학년 학생들이다.

 

'여성과 취업'은 과목명처럼 여성의 수가 전체 수강생의 90% 이상으로 정해져 있다. 허전하던 두 대의 관광버스는 여학생들의 조잘조잘 떠드는 소리로 금방 채워졌다. "여자애들은 학년 높아지면 엠티 잘 안 따라가잖아요, 얼마 만에 가는 엠티인지." 7학기를 맞은 구홍림(국문)씨는 고학번 여학생들이 단체생활을 즐기거나 집단적인 모임에 참여하기보다는 개인적 교류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여성과 취업' 수업이 굳이 바깥으로 나가는 '리더십 세미나'를 마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리더십 세미나'를 준비한 서강대 취업지원팀 유희석 팀장은 "1박 2일 동안 단체활동을 하면서 여학생들의 팀워크를 기르고 적극성을 기르는 것이 목적"이라며 "여성이 업무능력이나 지적인 면은 높게 평가받지만 리더십, 상황대처능력 등으로 인해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여성과 취업' 수업은 1999년 여성학 연계전공이 개설된 이후 매년 마련되었다. 여성이 겪는 취업현장의 문제를 실용적이고 구체적으로 짚어주면서 사회의 여성차별구조를 인식하고 대안을 마련하도록 돕는 수업이다. 2006년부터 취업정보팀이 '여성과 취업' 수업에 공동으로 참여하면서 '리더십 세미나'도 커리큘럼에 들어왔다.

 

쉴새없이 떠드는 사이 버스는 방이동 서울올림픽파크텔에 멈춰섰다. 방을 배정받자 수업을 같이 들을 뿐 별 교류가 없던 학생들 사이에서 민망함이 잠시 흘렀다. 1박 2일의 훈련과정을 거치기 위해 속속 방에 짐을 풀고 세미나실에 모여들었다.

 

"최근 여성들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졌지만, 우리의 조직문화는 아직도 여성의 참여가 구조적으로 제한되는 '유리천장'이 존재하지요. 남성공동체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고 자신은 어떤 태도를 지닐지 주체적으로 결정해야합니다."

 

조옥라 여성학전임교수는 서강대 학생문화처장이자 여성취업의 전문가로서 '조직문화와 여성'에 대해 강연을 했다. 조 교수는 "여성 자신에게 맞는 공동체와 조직력을 능동적으로 선택하라"고 주문했다.

 

이어지는 학생들의 조별 주제 발표도 '자신의 조직문화 적응과 인간관계를 위한 전략 세우기'로 이루어졌다.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 가운데 '여성다움 전략의 안이함'을 꼬집는 상황극을 준비한 조가 1등을 차지했다.

 

"김 과장님, 커피 타왔어요."  

"아, 정말 미스 박이 사근사근한 게 여성스럽고 좋아. 저런 친구가 커피나 타지 일은 제대로 할까."

 

김 과장이라는 남성상사가 부당한 커피심부름을 시킬 때 어떻게 반응해야할 것인가에 관한 상황극이다. 학생들은 모성, 귀여움, 섹시함 등의 '여성다움' 고정관념에 맞춰 전략을 세우는 것보다는 당당하고 주체적인 '능력 중심' 전략이 장기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아래 대사 처럼 말이다.

 

"김 과장님, 커피 여기 있습니다. 나중에 저도 일할 때 커피 좀 부탁드려요."

 

학생들이 상황극에 몰두한 사이, 다른 방에서는 간단한 간식과 함께 취업지원팀의 상담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조민정(정외)씨가 "기자가 되기 위해 바로 취직 준비를 하는 것과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 중 고민"이라고 털어놓자 취업지원팀은 "직업 현장에 빨리 부딪혀보고 진로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이 좋겠다"고 답했다. 취업지원팀은 실패를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는 여학생들에게 직업에 대한 자신감을 갖도록 격려했다.

 

취업과 진로, 인생에 대한 고민들을 나누며 밤이 서서히 깊어갔다. 조용히 섞여 있는 소수의 남학생들에게도 다가가 말을 걸어보았다. 여학생을 대상으로 하고 여성학적 관점을 기반으로 하는 이 수업에서 남학생들은 무엇을 얻고 있을까. 조영일(경영)씨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볼 수 있어 좋다"며 "세상을 보는 나의 프레임이 많이 바뀌었다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조씨는 여성의 현실에 대해 인지하는 것은 단지 여성의 몫만이 아님을 시사했다.

 

다음날 아침, 재미있는 외부진행 프로그램이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로탈출, 파이프라인, 협동줄넘기, 주사위글자 등의 능동적 과제를 수행하면서 팀워크를 기르는 '도전! 180초를 잡아라'라는 단체게임이다.

 
처음에는 손가락만 까딱거리며 귀찮아하던 여학생들도 파이팅을 외치는 구호소리가 커져가면서 몸놀림이 박력 있게 변했다. 이날 오전 기온이 26도를 웃돌고 그늘 한 점 없는 직사광선 아래에서 연습을 하는 모습은 평소 수동적인 여학생의 이미지와는 달랐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팀원에게 사기를 북돋아주는 적극적인 여성의 잠재력이 빛을 발했다.

 

이 프로그램을 진행한 하이컨설팅의 김영걸씨는 "구성원 간, 팀 간에 새로운 신뢰와 공감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프로그램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어려운 과제들을 해결하고 함께 즐거워하며 "평소 안 해본 거라 못 할 줄 알았는데 팀원들과 뭉치니 엄청난 시너지가 생기는 것을 발견했다"고 이학미(국문)씨는 놀라워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의 발걸음은 조금 더 가벼워지고 서로에게 더욱 친밀해진 듯하다. 오늘 학생들은 여성의 취업난과 편파적인 조직문화에서 살아남기 위한 '체력'을 비축해서 돌아갔을까.

 

조옥라 교수는 "막연히 돈 벌기 위한 취업이나 진로선택은 장기적으로 견뎌내기 힘들다"며 "여성이 독립적인 자기 생활에 대한 의지를 갖고 직업관을 확립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대학교육이 여성취업을 위해 힘써야 할 부분은 앞으로 더욱 많다. 서강대는 '여성과 취업' 이외에도 여학생 취업을 돕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마련하고 있다. '여학생 취업 특별 프로그램'을 통해 특강이나 여학생들만의 진로컨설팅을 진행하고, 매년 5월 말 여학생캠프를 운영한다. 조 교수는 "여러 지원 덕택에 작년에 비해 우리 학교 여학생 취업률이 4% 이상 높아졌다"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제 블로그 ansi.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서강대, #여성과취업, #리더십세미나, #조옥라, #여성취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