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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2월 15일. 창당 보름 만에 1인 2표제 도입이 끝내 무산되자 권영길 대표는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 농성에 돌입하였다. 2월 16일 김대중 대통령은 법안을 공표하였다. 민주노동당은 즉각 위헌소송을 제기하였다. 헌법재판소는 결국 위헌판정을 내렸고 1인 2표제는 쟁취되었다.- 168쪽

 

1인 2표제? 아마 정치 문외한인 사람 중에는 나처럼 오해 하고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즉, 나는 이 바람직한 제도는 당연히 김대중 정부가 제안하고 제도화 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숨은 공로자는 민주노동당이었다.

 

그리고 '정치후원금 세액공제' 즉, 10만 원을 정치인에게 후원하면 연말정산에서 10만원 그대로 환불 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 또한 민주노동당과 시민단체들의 주장이 관철된 것이었다. 한 지인은 자신이 좋아하는 정치인에게 10만원을 후원하고서 적금 든 기분이라며 좋아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연말연시 돈 쓸 일도 많은데 잊었던 10만원이 통장에 찍혀 들어오니 그 아니 기쁠 소냐.

 

이렇듯, 민주노동당의 출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바람직한 정책으로 국민들 마음에 서서히 뿌리내리고 있다. 때문에 지난 총선에서는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노회찬'의원의 낙마를 애석해 했다. 그것도 단 3%포인트 차이로 급조된 새파란 정치신인에게 졌으니 그 자신은 물론 그를 찍은 40%의 지역구민들은 얼마나 통절했을까.

 

그쪽과는 한참 거리가 먼 남쪽의 나도 '노회찬'이 떨어졌다는 소식에 짠하기 그지없었다. 구리 빛 얼굴의 지친 그가 그래도 웃으며 희망을 얘기하니 안도와 함께 미안한 마음이 며칠이 지나도 가시지 않았다.

 

해서 빚진 기분으로 그의 책 <힘내라 진달래>(사회평론)를 펴들었다. 지난 총선을 기점으로 그는 더 이상 민주노동당이 아닌 진보신당 사람이 되었지만 당 간판이 달라져도 노회찬은 노회찬 일 것이다. 그리고 그가 진보신당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해도 민주노동당시절의 노회찬을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노회찬의 '옛사랑'의 흔적을 훔쳐보는 느낌이다. 이토록 자부심과 애정을 갖던 당을 떠날 때의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구경꾼인 나도 그의 떠남이, '민주노동당'이라는 간판이 참으로 아까운데 그는 오죽 했을까.

 

아무튼, 추억으로 돌아가서 이 책은 2004년 1월부터 3월 말까지 석 달 동안의, 2004년 17대 총선에 임하는 민주노동당 중앙선거 대책본부의 상황기록이다. 결과적으로 이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정당 투표에서 예상외의 표를 얻어 10석으로 원내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 기록의 처음부분이 쓰여 질 때만 해도 민주노동당원이 아닌 일반사람들은 노회찬의 '노'자도 몰랐지만 이 기록의 말미에 가서는 '노회찬 어록'을 저마다 한 구절쯤은 회자하게 되었다. 노회찬 어록이 자주 회자되는 만큼 민주노동당의 인지도가 커져갔음은 물론이고.

 

당시 나는 민주노동당을 찍은 것은 아니었지만 민주노동당의 선전이 기뻤고 2008년에는 민주노동당이 그 의석에서 못해도 2배는 불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역사의 수레바퀴는 우째 거꾸로 돌아서 2배 아닌 반 토막을 내주어 망연자실.

 

다른 나라를 둘러보니, 영국은 노동당이 1900년에 만들어졌고 뉴질랜드는 1916년에, 스웨덴 사민당(사회민주노동자당)은 1889년, 독일의 사민당은 1875년, 네덜란드 사민당은 1894년 등 다들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브라질은 노동자당에서 대통령을 내었고, 볼리비아에서는 억압받던 원주민 출신이 대통령(에보 모랄레스)이 되었는가 하면 지난 총선 호주에서는 노동당이 압승을 거두었다.

 

이렇듯 세계 선진 여러 나라들은 다들 노동자당이 '떵떵'거리는데 우리는 왜 '보수'도 못 되는 '수구'들이 창궐하는지... 물론 그렇기 때문이야말로 진보정당은 우리에게 더더욱 소중하고 2008년 총선이 준 이 부끄러움은 다음 총선에서 충분한 '거름'이 될 것이다.

 

이 책의 끝부분에서 저자는 '민주노동당은 마중물'이라 하였다. '마른 펌프에 부어넣는 한 바가지 마중물처럼 저 지하에서 도도히 흐르는 수맥을 끌어올려 만물을 푸르게 할 것이다'라고. 아무렴 민주노동당은, 진보신당은 머지않은 미래에 5천만의 가슴속에서도 푸르게 흐를 것이다. 아, 그러면, 우리나라도 노동자당이 집권 한 번 해 보겠지요?

 

뱀 꼬리: 김밥 할매들, 내 말 좀 들어 보소

 

가끔씩 미담사례로 뉴스를 장식하는 사연들에서 김밥 할매들은 빠지지 않는 주인공들이다, 김밥, 떡볶이 팔아 평생 모은 돈 1억여 원을 유명 사립대학에 기부했다는 뉴스를 볼 때면 그 선의는 충분히 공감이 가나 내 마음 한쪽은 씁쓸하였다. 

 

"아, 할매요. 이제 '그 대학' 다니는 학생들 중에는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 별로 없어요. 이 왕 좋은 일에 할 거면 확실하게 본전 뽑는 곳에다 투자하세요. 최고 경영자나 장관출신 총장들이 기업들 돌아다니며 강연 한 번 하면 후원금이 수십억씩 쏟아지는 그런 대학에서는, 할매 돈 별로 빛 안 납니다. 차라리 가난하지만 정직하게 일 많이 하는 할머니와 출신 성분이 같은 민주노동당 의원들에게 기부하세요"라고 말하고픈 마음 굴뚝같다.

 

아마 길을 내지 않아서 그렇지 이 땅의 똑 소리 나는 김밥할머니 한 분 당 진보정당의원 한사람씩만 책임지면 가난한 진보정당 의원들은 힘이 펄펄 날 것이다. 나는 김밥할매가 아니라서 1억은 꿈도 못 꾸고 책 한권으로 때우지만 책 한권으로 때우는 사람 10만 명이면 김밥 할매 한 분과 당당히 맞설 수 있을까나.


힘내라 진달래 - 제13회 전태일문학상 특별상 수상작

노회찬 지음, 사회평론(2004)


태그:#노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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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이 순간 그 순간 어느 순간 혹은 매 순간 순간들.... 문득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런 순간을 살고 싶습니다. # 저서 <당신이라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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