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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주세요."

 

2일 밤 서울 청계광장을 가득 매운 촛불바다 속에서 터져 나온 한 여학생의 목소리.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던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을 향한 것이었다. 이에 강 의원은 "국민들과 함께 검역주권을 찾아오는 데 앞장 서겠다"고 쉰 목소리로 화답했다.

 

그는 이어 "정부는 미친 소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른다, 국민 건강권을 조공으로 갖다 바쳤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강기갑! 강기갑!"을 연호하며 환호성을 울렸다.

 

강기갑을 연호하는 목소리는 정부에 대한 불신감을 표현하는 또 다른 어법이었다. 특히 이날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은 이날 오후에 있었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정부 합동 기자회견에 대해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이날 3시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은 '광우병 괴담'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 당국자들이 총출동한 자리였다. 하지만 이들이 보여준 건 미국 검역 시스템에 대한 무한한 신뢰였다. "국민 건강"이란 말은 듣기 어려웠다.

 

지금껏 국민의 이익에 반하는 정부의 행보를 지켜봤던 이라면 누구나 '대한민국 정부 실종 사태'에 적잖이 놀랐을 터. 이날 정부는 마치 국민이 아닌 미국 축산업자의 대변자임을 공식적으로 자처하는 것 같았다.

 

"협의는 (국민) 여론 갖고 하는 게 아니다"

 

 

"재협상은 없다."

 

단호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총괄하는 이상길 농림수산식품부 축산정책단장은 "이번 협의는 양국 간 신뢰의 문제"라며 그 이유를 밝혔다. 미국과의 신뢰가 국민 건강보다 더 중요하다는 투였다.

 

정부는 지난달 22일 한미 쇠고기 협상 결과에 따른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입법예고의 취지는 국민 여론을 수렴하기 위한 데에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이 단장의 말은 충격적이다. 그는 "위생조건 협의는 여론을 가지고 하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입법 예고의 취지를 깡그리 무시했다. 국민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찬성하든 반대하든, 내 갈 길을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일까?

 

점입가경은 이럴 때 쓰는 말일 터, 이 단장의 '발언'은 계속됐다. 그는 "과학적 기준을 가지고 해야지, 정치적인 요구를 해선 안 된다"고 못 박았다. 국민 건강보다 한미FTA 조기 비준을 위해 굴육적인 한미 쇠고기 협상을 벌인 건 정부였음을 잊은 듯 했다.

 

이어 기자들이 "현재 국회다수인 야당이 재협의를 요구하면 안 될 이유가 있느냐?"고 물었다. 국회에서 특별법을 만들면 하위 법령인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개정안의 효력이 제한된다는 지적이었다.

 

이 단장은 거침이 없었다. "재협의는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의 재협의 요구마저 그는 가볍게 무시했다. 불과 30분 전, 그는 "협상 합의문을 지금이 아닌 7일 청문회 때 공개하겠다"고 했는데 그 이유로 든 것이 국회가 국민의 대의기관이라는 점이었다.

 

미국 검역시스템에 대한 무한 신뢰... 기자들 폭소, 시민들 분통

 

 

이러한 이명박 정부의 당당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 답은 다음 장면에서 엿볼 수 있다. 이상한 논리로 미국 검역시스템을 옹호하는 장면이다.

 

정부는 이날 기자회견 내내 미국의 광우병 통제 시스템의 완벽함을 옹호하며 그 이유로 "미국은 국제수역사무국(OIE)이 정한 광우병 위험 통제국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기자들이 "지난 2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사상 최대의 쇠고기 리콜 사태가 발생했고, 4월엔 버지니아 주에서 인간광우병으로 의심되는 증상을 보인 22세 여성이 사망했다"고 지적했지만 정부는 귀를 막았다.

 

이상길 단장은 "97년 8월 이후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발견되지 않았다, 미국 시스템은 현재로도 완벽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다시 기자들은 "국제수역사무국의 기준은 너무 느슨하다, 광우병 위험 통제국 평가 기준에 인간 광우병 발병 여부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는 미국에서 인간 광우병이 발생해도, 수입중단 조치를 취할 수 없게 한 한미 쇠고기 협상 결과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전달한 것. 이에 대한 이 단장의 답이 가관이다.

 

"인간을 수입하는 게 아니라, 축산물을 수입하는 것 아니냐."

 

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폭소를 터트렸고, 이를 생중계로 지켜보던 시민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이날 기자회견 장소가 정부중앙청사가 아닌, 미국육류수출협회 강당이라고 해도 의심할 이는 없을 듯 했다.


태그:#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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