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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마포구 도화동에서 대흥동에 있는 직장으로 출근을 하는 방법은 여러가지입니다.

간혹 출근을 하기 전에 은행에 들러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보통 3가지 방법중에서 제 출근길이 결정되어집니다.

직장이 영어학원인 까닭에 오후 2시 30분에 첫수업이 시작하는 월·수·금요일은 오전 11시까지 출근을 하기에 서두르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서 대부분 잎의 빛깔과 크기가 하루가 다르게 초록으로 짙어가는 은행나무가 울창한 염리초등학교 옆담을 따라 걷다가 곧 화사한 덩쿨장미가 가득 피어 날 아파트 담장을 끼고 걷습니다.

또 다른 출근길은 마을버스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앞 마을버스 정류장을 지나치는 순간, 우연하게 때 맞춰 마을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면 저도 모르게 마을버스에 몸을 싣곤 합니다. 마을버스를 타고 4번째 정류장인 신석초등학교 앞에서 내리면, '정말 이곳이 서울 하늘 아래 존재하는 골목일까?'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직장인 영어학원까지는 도보로 불과 2~3분 거리밖에 안 되는 골목이지만, 그 골목에는 아주 오랜 세월 그곳에 자리 잡고 삶의 터전이 되었을 가게들이 오손 도손 얼굴을 맞대고 다정한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아, 제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곳 식당에서 식사를 해 보지 않은 사람은 쉽게 찾아 올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작은 식당하며, 찾아 오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을 것 같은 작은 구멍가게, 도대체 언제부터 그곳에 자리잡았는지 문을 열고 주인아저씨께 여쭤보고 싶어지는 오랜된 간판의 식육점과 떡 방앗간, 그리고 세탁소까지.

가게마다 출입문 앞에는 크고 작은 화분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요, 그 골목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화분에는 화초보다는 상추나 토마토, 고추모종이 더 많이 심겨져 있습니다.

하루 하루가 아주 빠른 속도로 변해가고, 미국산 수입소고기와 광우병, 한반도 대운하와 FTA문제로 복잡해 뉴스시간이면 눈과 귀를 닫고 싶은 요즘, 이 골목길에 들어서면 시간도 잠시 쉬어갈 것 같은 삶의 여유가 느껴집니다.

이름모를 식당앞의 사랑초 화분
 이름모를 식당앞의 사랑초 화분
ⓒ 한명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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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에서 피고 지는 딸기꽃
 화분에서 피고 지는 딸기꽃
ⓒ 한명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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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식당 앞에 자리 잡은 화분에는 여느새 가녀린 분홍꽃을 피운 사랑초와 그 크기도 다양한 화분들이 보기 좋게 놓여져 있습니다. 하얀 딸기꽃이 지면 그 자리에 앙증맞은 딸기가 나올까요? 이 골목에서는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만약 딸기가 보기좋게 익어간다면 그 모습도 여러분께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할미꽃과 동거하는 고추모종
 할미꽃과 동거하는 고추모종
ⓒ 한명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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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꽃송이가 조그많게 오그라들었지만, 도심의 골목길에서 고개숙여 활짝 핀 할미꽃을 보노라니 얼마나 반갑던지요. 달려가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들여다보고 싶은 충동을 몇 번이나 느꼈습니다. 할미꽃을 심은 화분의 주인은 골목길을 오고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적지않은 즐거움을 선물했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을까요?

골목길 시멘트 틈을 비집고 자란 잡초
 골목길 시멘트 틈을 비집고 자란 잡초
ⓒ 한명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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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에 줄 지어 선 국화 화분들
 계단에 줄 지어 선 국화 화분들
ⓒ 한명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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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앞에 주루룩 놓인 화분들
 대문앞에 주루룩 놓인 화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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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담 틈새를 비집고 자란 이름모를 풀이 자신의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고, 가을이면 화사한 꽃을 피워 골목길을 지나는 이의 마음을 기쁘게 해줄 국화 화분이 대문앞 계단에 보기좋게 줄 지어 서 있습니다. 바로 옆집의 대문에는 몇 개의 화분이 사이좋게 나란히 봄볕을 마음껏 즐기고 있습니다. 마치 아침에 출근하는 주인을 손 흔들어 배웅했다가 늦은 밤중에 퇴근할 때도 반갑게 맞아 줄 것 같습니다. 

골목길 빨래줄에 펄럭이는 이불과 이웃하고 있는 화분들
 골목길 빨래줄에 펄럭이는 이불과 이웃하고 있는 화분들
ⓒ 한명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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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상자에 심겨진 상추와 고추
 나무상자에 심겨진 상추와 고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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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가는 빨간 열매가 열릴 토마토
 언제가는 빨간 열매가 열릴 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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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에 길게 늘어진 빨래줄에는 이불자락이 바람에 펄럭이고, 그 아래에는 여러 채소가 심겨진 화분이 나란히 나란히 서 있습니다. 피곤한 몸으로 퇴근하여 마주한 저녁밥상에 화분에서 자란 상추와 풋고추를 올리고 삼겹살 파티라도 벌인다면, 온 가족의 스트레스가 한 방에 날아갈 것 같습니다. 노란 작은 꽃이 진 자리에 토마토가 빨갛게 익어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이 골목길이 더 좋아질 것 같습니다.

옹기 종기 몸을 맞대고 대화라도 나누는 걸까요?
 옹기 종기 몸을 맞대고 대화라도 나누는 걸까요?
ⓒ 한명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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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양각색의 지지대에 몸을 기대고 있는 고추 모종들
 각양각색의 지지대에 몸을 기대고 있는 고추 모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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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싹을 틔운 모습
 이제 막 싹을 틔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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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육점 출입문 앞에 놓인 화분에는 이제 막 둥근 떡잎 두개를 나란히 펼치고 나온 새싹이 있습니다. 어떤 채소인지 궁금하게 만듭니다. 며칠 후 이 앞을 지날 때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겠지요?

키 큰 두릅과 친구사이인 상추와 고추
 키 큰 두릅과 친구사이인 상추와 고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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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에 심겨진 화초와 딸기모종, 상추
 화분에 심겨진 화초와 딸기모종, 상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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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초보다 채소가 더 많이 심겨진 화분이 줄 지어 서 있는 용강동 골목길에는 하루 하루를 숨가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찾아 볼 수 없는, 잠시 쉬어 가고 싶은 삶의 여유를 느낄 수 있어서 좋습니다. 며칠동안 이 골목을 지나치지 못하면 그 안부가 궁금해지고, 골목길을 가다보면  발걸음을 멈추고 싶어지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출근길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 블러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화분, #텃밭,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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