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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주년 세계노동절 기념대회가 5월 1일 오후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열렸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앞 8차선 도로에는 1만 여명(경찰 추산 8000명)의 노동자들이 빽빽히 들어찼다. 거리에 선 노동자들이 일제히 머리 위로 "비정규직 정규직화, 사회양극화 막아내자"는 글귀가 적힌 피켓을 들어올리며 "투쟁"이라 외쳤다.

 

이날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전면 재개정 및 특수고용 노동3권 보장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기본권 보장 및 단체협약 적용 ▲친재벌정책 중단 및 일방적 FTA 추진반대 ▲의료·교육·사회서비스 시장화 저지 ▲공공부문 사유화와 구조조정 중단 ▲기초연금 15% 쟁취와 공무원 사학연금의 올바른 개혁 ▲한반도 대운하 사업 중단 등을 정부에 요구했다.

 

행사는 전반적으로 평화적으로 진행됐다. 민주노총과 경찰 간의 합의에 따라 기동대 역시 배치되지 않았고 청계광장까지의 행진도 폴리스라인 안에서 평화롭게 진행됐다.

 

그러나 이곳에 모인 1만여명의 분노와 실망은 대단했다. 모두들 뜨거운 한숨과 함께 긴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포기'를 말하지는 않았다. 

 

탄압받는 재벌기업 노동자 "우리 회사가 얼마나 대단한지 아나?"

 

이날 만난 한솔홈데코의 박정우 부반장과 노양재 총무처장은 "회사는 15년 가까이 근무한 노동자들을 대화상대로 여기지 않는다"며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는 이들"이라고 평가했다.

 

한솔홈데코 전북 익산공장은 지난 3월 14일부터 49일째 직장폐쇄된 상태다. 직장폐쇄는 단 이틀 동안 이뤄진 총 8시간의 부분파업이 이유였다.

 

지난해 9월 한솔홈데코 전북 익산 공장의 노동자들은 "한솔홈데코가 매각된다"는 언론보도를 보고 고용보장을 위해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이미 아산 공장의 경우 매각이 진행됐고 그 과정에서 현장 노동자 100여명 중 반수 이상이 구조조정 당한 전례까지도 있었다. '무노조 경영'이 원칙인 '범 삼성가' 기업 중 하나인 한솔홈데코는 당시 노사협의회만 있었다.

 

박 부반장은 "아산공장이 매각될 때는 사실 내 자신의 일이라 생각하지 못했다"며 "정작 내 일이라고 여겨지자 가만 있을 수 없어 노조를 결성했다"고 고백했다. 노조 설립 이후 회사는 공공연히 노조활동에 대한 탄압을 시작했다.

 

전에는 하지 않던 차량검문을 실시하고 공장 곳곳에 CC-TV를 설치했다. 관리자들에게는 노조원들의 흠결을 잡아내기 위해 무전기·녹음기·카메라 등을 지급했다. 박 부반장은 "애초 매각 이유를 설명할 때는 '경영상 수억의 적자가 나서'라고 했는데 노조 설립 후 한 달 보름 동안에만 회사가 노무관리를 위한 회의비용, 노무사 고용 등을 위해 사용한 돈이 수억대가 넘는다"고 말했다.

 

회사는 지난 2월 1일 공장의 기계를 관리하는 보전팀 44명을 총무팀으로 인사발령 냈다. 이 보전팀 44명에 포함된 노조 간부는 모두 14명이나 됐다. 그들이 떠난 일자리는 하청업체 노동자가 대신했다. 이 업체 대표이사로 등재된 사람은 한솔홈데코의 전직 임원이었다.

 

회사는 보전팀을 외주화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노조 측은 이 모든 과정이 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한 회사의 공작이라고 보고 있다.

 

이어 보전자 44명에게 직업훈련대학에 '전직예정자교육'을 수행하라고 인사명령이 내려왔다. 노조 측이 "교육 후 현업복귀가 가능한 것이냐"고 물었지만 그에 대한 답은 없다. 조합원들이 부당성을 주장하며 인사발령난 총무팀으로 출근하자, 회사는 이들을 무단결근으로 처리해 월급도 주지 않고 있다.

 

박 부반장은 "지방노동위원회에 중재요청이 들어가 있고 노동부 직원이 매일 왔다 갔다 하지만 결론나는 것은 없다"며 한 마디 더 덧붙였다.

 

"우리 한솔이 얼마나 대단한 기업인 줄 아나? 직장폐쇄로 조합원의 승용차가 공장 안에 있어 빼내올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경찰서에 연락해 순경 2명이 공장 안에서 차를 빼주려 왔는데 공장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우리를 아는 정보과 형사가 와서 겨우 차 뺐다. 그런 기업이다."

 

사지로 내몰리고 있는 공기업 노동자들

 

공기업 역시 '비즈니스 프렌들리' 시대를 비켜가지 못한다. 서울도시철도공사 노동자들도 지난 14일 철도공사가 발표한 구조조정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도시철도공사의 정용우 역무본부 사무국장은 "내가 알기론 공기업·사기업 통틀어 최초로 '근무형태변경'이란 것이 시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도시철도공사(사장 음성직)는 지난해 8월 창의조직 프로그램을 가동시키고 총정원의 10% 정도 되는 690명 정도를 강제퇴출시키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정 사무국장은 "퇴출프로그램인 '서비스지원단'으로 310명 정도가 빠지면서 정상적인 역사 운영 자체가 힘든 상황"이라며 "현재 야간업무 지원반으로 구성된 75명의 경우 전날 전화로 근무지를 연락받고 당일 밤 10시부터 오전 7시 30분까지 혼자서 근무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인력감축에 대해 노조는 "안전불감증을 부추기고, 잦은 시설물고장이나 빈발하는 사상사고 및 특별한 사태에 대해 무방비 상태가 될 것"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노조의 예상대로 지난 4월 23일 길동역에서 야간지원근무 중이던 직원 1명이 취객으로부터 폭행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이 직원은 입술 안 쪽이 찢어지고 치아가 흔들리는 등 전치 2주의 부상을 입었지만 지원 인력이 없어 경찰의 조사를 받고 다시 되돌아가야 했다.

 

특히 정 사무국장은 "공사가 모든 근무형태지시에 대한 공식적인 문서를 남기지 않는다"며 "서비스지원단 310명, 이 중 연수원에서 '창의업무전담팀' 즉 구조조정에 관한 업무를 다루는 TF팀 7개에 151명이 있는데 이 모든 과정이 '구두'로 진행된다"고 밝혔다.

 

노조는 이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며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공사의 태도는 전혀 변화할 조짐이 없다.

 

지난 24일 KBS <생방송 세상의 아침>에서 "무인매표 시행으로 인해 시민들의 지하철 이용에 불편을 겪고 있다"는 내용의 보도가 나오자 음성직 도시철도공사 사장은 '역 직원 여러분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통해 "이 방송 모두가 조작된 연출이며, 방송사와 관련자 모두에게 응분의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비정규직 투쟁의 '아이콘' 이랜드 사태, 끝나지 않았다

 

지난해 비정규직 투쟁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이랜드노동조합원들도 눈에 띄였다. 이들은 지나가는 시민들과 거리의 노동자들에게 얼린 물병을 팔고 있었다. 이미 노조의 재정은 극히 나빠진 상태. 민주노총에서 나오던 지원금도 끊긴 지 오래다.

 

김경욱 이랜드노조 위원장은 "곧 어린이날이 다가오는데 선물이라도 할 수 있도록 조합원들에게 10만원이라도 쥐어주고 싶다"며 답답한 마음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랜드 투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지난 30일 노동절 전야제 문화제는 홈에버 월드컵경기장 점에서 열렸다. 그 자리에서는 수천의 대학생과 노동자들이 모여 이랜드 노조원들을 응원했다. 이랜드 그룹의 타 계열사들도 같은 날 노동자들의 분노를 그대로 뒤집어썼다.

 

김 위원장은 이런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현재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이랜드 매각설에 대한 걱정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현재 롯데와 홈플러스가 이랜드 매입을 둘러싸고 경쟁을 벌이고 있다"며 "악덕기업 이랜드가 양쪽의 경쟁으로 홈에버 매각 때 막대한 차익을 얻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투쟁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그는 "이랜드와 같은 악질기업이 이득을 얻는 것은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만약 홈에버가 매각되더라도 인수하는 측이 노조를 인정하지 않거나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이 없는 기업이라면 투쟁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당당히 말했다.

 

 

태그:#노동절, #민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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