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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 소설 읽는 노인>과 그림책 작가 존 버닝햄의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 그리고 비틀즈 멤버 폴 매카트니의 <How many people>이란 노래의 공통점은 뭘까요?

 

흔히 '지구의 허파'라 부르는 아마존 생태계와 고무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생존권 보호를 위해 헌신하다 집 앞에서 농장주에게 피살당한 브라질 환경운동가 치코 멘데스를 기리는 책과 노래들입니다.

 

기차를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환경 문제를 살짝 언급해 보기에 좋은 버닝햄의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는 집에서 읽어줄 때보다 기차 안에서 읽어주면 더 좋아하는 '경춘선 특급 열차용' 그림책이기도 합니다.

 

전국에서 가장 시끄러운 기차는 아마도 시험기간 끝난 후나 개강 전후의 경춘선일 듯 싶습니다. 출퇴근 하는 분들은 괴롭겠지만, 한 자리에 가만히 있지 않으려는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엄마에게는 오히려 제일 마음 편한 기차이기도 합니다. 엠티 가는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주는 과자 맛과 이십대 청춘들이 마냥 귀여워 해주는 바람에 기차 안에서 보채거나 엄마를 힘들게 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학교에 가려면 일찍 자라는 엄마가 다녀가신 후, 아이(<지각대장 존>에 나오는 존 패트릭 노먼 맥허너시를 닮은 아이라 쿠하와 저는 그냥 존이라고 부릅니다)는 장난감 기차의 기관사가 됩니다.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

 

기차에 올라탄 코끼리, 물개, 두루미, 호랑이, 북극곰 등 여러 동물들에게 아이가 하는 말입니다.

 

덩치 큰 코끼리가 어울리지 않게 공손한 자세로 서서 "제발 나도 기차에 태워 줘. 사람들이 내 상아를 잘라 가려고 해. 자꾸 이러다간 우리 코끼리들은 살아 남지 못할 거야"라고 기차에 태워줄 것을 부탁합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나타나는 동물들은 모두 사람들 때문에 살아남지 못할 거라며 아이의 선처를 호소하지요. 더운 곳에서는 코끼리가 뿌려주는 물을 맞으며 놀고, 눈이 내리는 곳에서는 눈싸움을 하며 북극 소풍을 즐깁니다. 물론 아이의 꿈 속에서요.

 

아이 엄마가 일찍 자라고 할 때와 맨 마지막 장에서 얼른 일어나 학교에 가라고 할 때, 꿈이라는 것을 눈치 채겠지만, 꿈과 현실을 완벽하게 구분하는지 알 수 없는 쿠하 또래의 아이들에게는 이런 책들을 읽어 준 뒤에, "어젯밤에 꿈에 누가 나왔어?"라고 아침에 물어보면 갖가지 대답이 나옵니다. 하루는 강아지가 꿈에서 손가락을 물었다면서 아침부터 울기도 하고, 어떤 날은 꿈에 엄마가 나왔다면서 슬쩍 엄마젖을 만지기도 합니다.

 

한글의 맛을 잘 살린 그림책 <기차 ㄱㄴㄷ>

 

이 책 한 권이면 아이 한글 인지는 특별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기다란 기차가

나무옆을 지나

다리를 건너

랄랄랄 노래를 부르며

마을을 거쳐서

비바람속을 헤치고

숲속을 지나

언덕을 넘어서

자동차 사이를 빠져 나와

창문을 닫고

커다랗고 컴컴한 터널을 통과해서

넓은 풀밭을 가로지르면,

해는 벌써 지고 있어요."

 

책 전체가 리듬감을 잃지 않으면서 기차가 지나가는 풍경을 탁월하게 묘사한 '한글 잔치'입니다. 한글을 가르치고 싶은데 자모를 구분한 낱말 카드로 하고 싶지 않거나, 통문자로 응용하는 교재가 지나치게 요령 피운다는 생각이 든다면 한글을 소재로 한 그림책으로 다가가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색감도 예쁜 책 <기차 ㄱㄴㄷ>은 너무 어린 아기들보다는 문자에 흥미를 갖기 시작한 두 돌 이후의 아이들에게 더 반가울 책입니다.

 

<잘 자요, 달님>의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이 쓴 <작은 기차>는 아이의 눈으로 봐야 하는 그림책입니다. 상식적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진행하는 기차 그림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글밥은 "서쪽으로 가요"를 반복합니다. 엄마 눈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지요.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되는 <잘 자요, 달님>이지만 친한 언니로부터 선물 받았을 때, 좀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정신분열증 환자가 쓴 책이 아닐까?'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초록색 방안에 있는 모든 사물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하는 책 내용은 그렇다 치더라도, 눈이 아플 정도로 채도가 높은 컬러로 그린 그림들과 갑자기 나타나는 흑백 정물들의 교차 편집이 그리 편안하게 다가오지 않았거든요.

 

헌데 보면 볼수록 아이가 좋아하고, 책을 읽어준 뒤에는 제 눈에 보이는 모든 물건들에게 잘 자라고 인사하기 시작하더군요. 어른들 눈에는 이상해 보일지 몰라도 적어도 13개월 아이의 마음은 꿰뚫은 것 같았습니다.

 

<작은 기차> 역시 처음에는 '이게 뭐냐?' 하는 기분이 든 책입니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대단히 잘 만든 책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역작입니다.

 

이 책은 표지부터 읽어줘야 하는 책입니다. 회색 기차 옆에 놓여진 여행 가방 두 개. 가방 위에 얹어진 작은 기차 선물 상자가 보이세요? 책을 펼치면 상자 속 기차가 밖으로 나오고, 왼쪽에는 회색 기차가 지나가는 그림이 이어집니다. 오른쪽에는 장난감 기차가 지나가는 그림이 등장하구요.

 

언덕과 사막, 목화 따는 흑인, 강과 산 등 다양한 풍경과 반복되는 문장들이 묘한 조화를 이루는 이 책은 읽을수록 중독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기차 그림책은 '토마스와 친구들' 시리즈 중에서도 <시계놀이 소리책> 입니다. 대개 남자아이들이 토마스에 열광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을 텐데요, 여자아이들도 토마스 좋아하는 애들 많습니다. 쿠하도 토마스 주제가를 흥얼거리면서 도서관에 가면 토마스 시리즈부터 꺼내 옵니다(집에는 한 권도 없거든요).

 

요즘 시계, 시간, 달력 등 숫자가 그려진 것들에 부쩍 관심을 갖는 편이라서 시계 놀이책을 특히 더 좋아합니다. 소리나는 것이 신기한 지 꾹꾹 눌러보기도 하고, "십이분 오십분"이라는 알 수 없는 시간으로 읽으면서 스스로 뿌듯해 하는 아이의 흉내내기 모습이 재미있기도 하고, 웃기기도 합니다. 아직 시간 읽는 법을 알려주지는 않았지만 이런 놀이책으로 자연스럽게 흥미를 갖게 하려고 합니다.

 

춘천에서 할머니 댁이 있는 서울로 8개월 때부터 20개월 째 매주 한 차례씩 경춘선을 타고 다니는 쿠하는 기차 타는 게 익숙해서인지 몰라도 기차 그림책도 무지무지 좋아합니다. 탈 것에 관심 있는 아이나, 기차를 무서워하는 아이(의외로 있더라구요)에게 그림책으로 칙칙폭폭 기차를 친구로 만들어 주세요.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

존 버닝햄 지음, 박상희 옮김, 비룡소(1995)


태그:#기차, #쿠하,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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