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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가 경제정책의 운용방향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청와대와 정부의 입장은 조변석개하고 있고, 여당은 여당대로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이 정책 방향의 주도권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당·정·청 '2인3각'의 엇박자가 장기화될 경우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대외신인도도 추락할 가능성이 높다.

 

배국환 기획재정부 차관은 29일 오전 KBS라디오 <안녕하십니까, 백운기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추경 편성과 관련해 4월 임시국회에서는 국가재정법을 개정하지 않기로 합의됐다"며 "그래서 6월 (국회)에서 법 개정과 함께 추진하는 것으로 당과 협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정부가 쓰고 남은 세금 중 여유자금이 약 4조8000억원에 이르는데, 배 차관의 발언은 "4월 임시국회에서 추경안을 편성하지 않겠다"는 27일 정부 발표와 달리 정부가 이 돈을 경기부양에 이용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청와대 "4조8천억 제대로 써야... 물 콸콸 나오려면 마중물 필요"

 

배 차관의 발언으로 시장이 출렁이는 가운데 청와대도 맞장구를 치고 나섰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오후 브리핑에서 "(배 차관의 발언은 청와대와) 조율이 됐으리라고 생각한다"며 "여건이 되면 18대 국회에서 추경을 편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추경예산을 푼다고 해도 이것이 인위적인 경기부양은 아니라는 게 정부와 청와대의 설명이다.

 

배 차관은 "작년에 예상외의 초과 세수가 걷혀서 민간부문에서 정부부문으로 지나치게 많은 돈이 들어왔다"며 "이는 인위적으로 국채를 발행해서 경기를 진작시키는 '경기 부양'이 아니라 '경기 정상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 대변인도 "(민생경제를 위해) 세계잉여금을 활용하자는 것인데 현실적으로 17대 국회에서는 여건이 어려우니 무리하게 밀어붙여 정치적 논란을 부르지 말고 18대 국회에서 (법 개정을) 검토해 보자는 취지"라고 전했다.

 

이 대변인은 논란을 예상한 듯 "추경 편성을 '한다', '안한다'가 논점이 아니다. 4조8000억원을 제대로 써야 할 것 아니냐? (펌프에) 물이 콸콸 나오려면 마중물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경기를 부양시키는 데 있어서 정부재정 투입의 효과가 불투명하고, 더 나아가 물가상승 등의 부작용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20세기 관치금융 시대처럼 손쉬운 길을 찾으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많다.

 

'큰 시장, 작은 정부'를 표방하는 이명박 정부가 예산 씀씀이를 줄이겠다고 해놓고도 18대 국회가 열리자마자 추경안 편성을 밀어붙이는 것도 정부 정책의 일관성을 흐트러뜨리는 대목이다.

 

대통령 말 바뀔 때마다 당정청 혼선도 증폭

 

한나라당 이한구 정책위의장은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정부의 추경안 편성을 결사 반대해온 인물이지만, 이 의장을 겨냥한 여당 내의 견제가 날로 강도를 더해가는 상황이다.

 

같은 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이틀 연속으로 당 공식회의에서 "앞으로 중요정책은 원내대책회의에서 결정해야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정부 정책에 협조하지 않는 이 의장에 대한 '경고'로 읽혀진다.

 

더구나 이 의장은 내달 하순으로 예정된 여당의 원내대표-정책위의장 선거가 끝나면 후임자에게 자리를 내줘야 할 형편이다.

 

여당 내에서는 이 때문에 ▲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이 의장이 물러나고 ▲ 국회가 여소야대에서 여대야소가 바뀌면 정부가 국가재정법을 바꿔서라도 추경안 편성을 강행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한나라당으로서는 야당 시절에는 노무현 정부의 방만한 예산 집행을 막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국가재정법상 추경안 편성 요건을 엄격히 제한했다가 여당이 되자 입장이 표변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당·정·청의 불협화음이 증폭되고 정책 혼선이 계속되는 상황에 가장 크게 책임을 져야할 사람은 다름 아닌 이명박 대통령이다.

 

경제정책 운용에 대한 대통령의 말이 그때그때 바뀌면서 당정청도 함께 우왕좌왕하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13일 기자회견에서는 "초과 세수를 예산(으로) 쓸 수 있도록 5월 국회가 열리면 상의해 내수 촉진시키는 일에 쓸 수 있도록 하려 한다"고 말했고, 27일 재정전략회의에서는 "예산을 늘려서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있는 예산을 매우 효과적으로 잘 쓸 수 있는 방식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내수 촉진을 위해 5월 국회에서 추경안을 편성할 준비를 지시했다가 여당 정책위의장의 반발에 부딪치자 2주 만에 기존 예산을 절감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셈이다. 그러나 29일 기획재정부 차관과 청와대 대변인의 말을 종합하면, 정부는 여전히 추경안 편성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셈이다.

 

여전히 반대하는 이한구 의장 "내가 물러나도 쉽지 않을 것"

 

그러나 이한구 의장은 "이런 식으로 가면 또 다시 여론의 질타를 받게 된다"며 추경안에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 의장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초과세수가 있으면 외채를 갚는 데 쓰는 게 맞다. 빚을 갚으면 시장금리도 내려가고 경기활성화에도 도움이 되는데, 정부가 꼭 써야겠다는 생각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 의장은 "경기가 하강하고 있다는 발표도 엉터리다. 관료주의에 젖어 정부주도 경제의 컨셉트에서 못 벗어난 사람들이 있다"고 기획재정부를 공격했다.

 

이 의장은 "여당이 국민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야 어떻게 견뎌내겠나? 내가 물러나도 (정부 방침에) 의원들이 쉽게 동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학계의 비판도 신랄하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경제 정책 운용 과정에서 많은 허점을 내보이고 있다"면서 "단기적으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무리한 정책 수단을 추진하는가 하면, 정책결정자들 사이에서도 정책운용에 대해 합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이어 "이같은 정책당국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결국 자신들 스스로 정책적으로 심각한 오류에 빠져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며 "이는 다시 기업이나 투자자 등 경제 주체들에게 불확실성을 더욱 심화시키고, 정책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태그:#이한구, #베국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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