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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빈

길은 결국 사람의 마을로 이어졌다. 잔솔밭을 지나 다랑이 논을 끼고 돈 길은, 지리산 산골마을에 이르렀다. 마을 사람들은 잔치를 열었다. 지리산 둘레길이 다시 열린 것을 축하기 위해서다.

27일 오후 경남 함양군 마천면 창원마을. 당산나무 아래로 주민들과 손님 200여 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지리산길' 개통식이 열린 것이다.

지리산길은 등산길이 아니다. 자동차가 휙휙 내달리는 아스팔트도 아니다. 이 길은 창원마을 사람들이 등구재 너머 인월(전북 남원시 소재)로 장을 보러 다녔던 길이다. 이 길은 마천(경남 함양) 총각이 산내(전북 남원) 처녀에게 장가갔던 길이다. 이 길을 걸어 지리산 사람들은 다랭이논(다랑이논의 산내 사투리)에 물을 대려 다녔고, 이 길을 따라 산자는 죽은 자를 묻고 돌아왔다.

그러나 지금은 인적이 드문 길. 사람들은 마을 앞 아스팔트를 타고 자동차 속도만큼 빠르게 그 길의 역사를, 사연을 잊고 있다. 그렇게 아득히 잊혀가고 있는 지리산 길이 다시 열린 것이다.

사단법인 숲길(이사장 도법)은 산림청 녹색기금 협조를 받아 800리(약 300km)에 걸친 지리산 둘레길을 이어가는 사업을 시작했다. 지리산길은 지리산의 3개 도(전남·전북·경남), 5개 시군(남원·구례·산청·함양·하동), 100여 개 마을을 이어주는 장거리 도보길이다. 지리산 옛길, 고갯길, 숲길, 강변길, 논둑길, 마을길 등을 이어 하나의 길(trail)로 연결하는 야심찬 계획이다.

이 사업은 지난 2007년 4월부터 시작돼 오는 2011년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27일 개통식을 한 지리산길은 시범구간으로 전북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 매동마을과 경남 함양군 휴천면 송전리 세동마을을 잇고 있다. 총 길이는 20.78km으로 마을과 다랑논 사이를 걸어가는 '다랭이길'과 지리산 빨치산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숲길을 걷는 '산사람길'로 구성돼 있다.

지리산길은 장소 이동과 정상 등정을 목적으로 하는 도보길이 아니다. 도법 스님은 "지리산길은 마을길과 논길, 숲길을 천천히 걸으며 스스로 느끼고 성찰하는 일종의 수련의 길"이라고 말한다.

또 도법 스님은 "여럿이 몰려와서 거리 재듯 걷지 말고 지리산 마을의 사연과 역사, 생태와 문화를 보고 느끼며 자기존재 가치를 확인하는 '주제 갖고 걷기'를 해보라"고 권유했다.

다시 길은 시작됐다. 이 길을 걸었던 그날, 그이의 눈물과 웃음, 한숨이 세월의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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