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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감기나 몸살 증세가 있어도, 감기약은 먹지 않는다. 따뜻한 물을 몸에 충분히 뿌려 충분히 샤워를 한 뒤에 잠을 푹 자면, 그 증세가 곧장 사라진다는 것을 몸으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그 전에는 나도 작은 감기 증세에도 전국민이 복용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일반화된 알약과 물약이나, 병원에서 처방하고 약국에서 타가는 '조제약'을 주로 복용했다. 그러던 내가 감기에 걸려도 약을 먹지 않게 된 계기는 한 편의 만화였다.

의외의 정보를 안겨다 준 만화 <쿠니미츠의 정치>

<쿠니미츠의 정치>라는 만화가 있다. 23권에 이르러, 주인공 '쿠니미츠'가 친구가 갑자기 몸살 기운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향했다가, "쉬면 된다"는 이야기만 할 뿐 흔한 알약 하나 처방하지 않는 의사를 황당해 한 나머지, '울컥' 한 장면이 있다.

그런 '쿠니미츠'를 제압한 의사의 한마디는, "의사는 약장수가 아니야! 병을 고치는 게 의사지!"라는 강한 어조의 한마디였다. 그런 다음에 이어진 만화 속 의사의 한마디를 돌아보도록 하자.

"약을 먹는다고 병이 낫는 게 아니야. 오히려 약 때문에 병에 걸릴 수도 있지. 단순한 감기몸살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의사는 필요없어. 어지간히 악화돼서 폐렴이라도 일으키지 않는 한, 약 같은 것 안 먹어도 그냥 나아. 아무것도 안하고 쉬기만 해도 나을 병에 듣지도 않을 약을 주는 건 양심적인 의사가 할 일이 아니야."

물론, "병원이나 약국에서 구한 감기약을 먹고 감기기운을 떨어트린 적이 한두번이 아닌데 무슨 이야기냐"고 되물을 분들도 계실 것이다. 만화 속 의사의 이야기를 다시 들어보자.

"약만 안 먹었으면 더 빨리 나았을지도 몰라. 감기를 낫게 하는 것은 약이 아니라 자기 몸이거든. 감기에 걸렸을 때 열이 나게 하는 것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인간이야. 인간의 몸에는 병원균과 싸우는 '면역'이라는 기능이 있는데, 바이러스를 없애기 위해 활동하기 시작하면 인간의 몸은 열을 내게 돼 있지.

그러면서, 열이 오르면 바이러스는 활동을 멈춰. 고열이 지속되면 감기 바이러스는 면역에 져서 증식하지 못하고 점점 줄어든다네. 그렇게 해서, 열이 점점 줄어든다면 그건 '면역의 승리'를 의미하지.

그런데, 일반적으로 쓰이는 감기약(해열제나 소열제)으로 억지로 열을 내리려 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약해졌던 바이러스가 기운을 되찾아서는 도리어 늘어나게 되는 거야. 그뿐이 아니라 정말 목숨이 위험한 병을 일으킬 때도 있지."

만화 속의 허무맹랑한 이야기 정도로만 치부하지는 말라는 의미에서, 책도 한 권 소개하겠다. 미요시 모토하루의 <의사와 약에 속지 않는 법>이다. 그의 책에 이런 부분이 나온다.

"대부분의 사람은 감기에 걸려 열이 나기 시작하면 해열제를 먹어 열을 내려야 비로소 안심한다. 그러나 1994년 오사카시립대학 의학부 소아과 미야다 유스케 의료진은 감기나 인플루엔자의 발열에 해열제를 사용하면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병을 더디 낫게 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검진 결과 고열로 감기 또는 인플루엔자라고 진단받은 0세부터 18세까지의 293명의 환자를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즉 해열제를 사용하지 않은 191명의 그룹과 해열제를 사용한 102명의 그룹으로 나누어 37.5℃ 이상의 열이 있는 기간을 비교해 본 것이다. 


결과는 놀랍게도 해열제를 사용한 그룹은 감기가 낫고 체온이 37.5℃ 이하까지 떨어지는 데 평균 3.47일이 걸린 데 반해, 해열제를 사용하지 않은 그룹은 평균 1.99일이 걸렸다.

즉 해열제는 효과가 없었을 뿐 아니라 감기를 연장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감기에 해열제를 사용하면 오히려 자연치유를 방해하고 완치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린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뿐 아니라, 뇌막염이나 폐렴 등의 합병증도 해열제를 사용하는 사람에게서 더 많이 발생했다. 해열제라는 약이 감기를 악화시키고 뇌막염이나 폐렴 등의 병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스티븐스-존슨 증후군'과 '레이 증후군'

<이영돈 PD의 소비자 고발>
 <이영돈 PD의 소비자 고발>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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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에 방영된, KBS1 TV의 <이영돈 PD의 소비자 고발>은 '스티븐스-존슨 증후군' 환자들의 고통을 방영해 시청자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스티븐스-존슨 증후군'은 약물의 특정 성분이 알러지 반응을 일으켜 인체의 피부와 점막을 벗기면서 실명과 사망에 이르게 하는 '약물 부작용'을 의미한다. 이 병을 앓고 있는 환자는 총 136명이다. 남녀비율은 67:69, 나이대도 1~86세로 다양하다. 연령과 성별의 차이와 무관하다는 것, 결국 "누구라도 방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방송이 소개한 실제 환자는, 이미 한쪽 눈이 실명된 상태에서 나머지 한쪽 눈의 시력도 나빠지면서 항암제 투여까지 하고 있지만 상황은 더 악화되기만 한다는 이상돈씨. 하지만, 항암제도 오히려 부작용을 유발했다. 그 독성으로 인해 방광에 출혈이 생겨 그 핏덩어리를 제거하는 수술만 20여 차례 넘게 받았다는 것이다.

2006년에 스티븐스-존슨 증후군 판정을 받은 주장근씨의 경우에는, 전신에 걸친 물집, 그리고 피부와 점막이 녹으면서 화상환자같은 증세를 보이고 있다. 물론, 그 역시 실명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눈의 점막이 모두 벗겨져 인공눈물에 의존해 눈을 뜨고 있는 것이다. 이상재씨와 주장근씨 모두 '감기약'을 먹고 이렇게 됐다고 한다.

'스티븐스 존슨 증후군' 환자의 몸이다. 피부가 벗겨지며 각막이 녹아내려 눈조차 뜨기 어렵다. 이 병에 걸린 이유는, "단지 감기약을 먹었을 뿐인데..."다. 감기약의 부작용, 그 가능성을 말해주는 의사와 약사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스티븐스 존슨 증후군' 환자의 몸이다. 피부가 벗겨지며 각막이 녹아내려 눈조차 뜨기 어렵다. 이 병에 걸린 이유는, "단지 감기약을 먹었을 뿐인데..."다. 감기약의 부작용, 그 가능성을 말해주는 의사와 약사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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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쿠니미츠의 정치>에서는 '인플루엔자 뇌증'이라는 질병을 소개한다. 그런데, 이 병명은 '레이 증후군'의 일본식 표현이다.

1963년에, 오스트레일리아의 병리학자 '레이(Reye)'가 보고한 질병으로서, 감기나 천연두와 같은 바이러스 질환에 걸린 어린 아이들이 해열제로써 아스피린을 복용하다가 걸릴 수 있는 병이라고 한다. 원인은 불명하지만, 아스피린을 복용했던 아이들이 이 병에 걸리는 사례가 많다. 뇌와 간의 기능이 저하되면서 뇌질환이 유발된다. 심할 경우엔 사망까지 이른다.

미국에서는, 이 병을 우려하며 독감이나 수두에 아스피린을 복용시키지 말 것을 권유하면서 '레이 증후군'이 거의 사라졌다고 하지만, 국민적으로 약의 오남용이 일반적인 한국과 일본에서는 여전히 조심해야 할 질병이다.

가벼운 감기라 할지라도, 병원에서 처방하고 약국에서 조제받는 '조제약'에는 그 증상에 따른 다양한 감기약이 들어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상승작용으로 인해 부작용이 발생할 확률이 비약적으로 늘어난다고 한다.

네덜란드와 같이, "보통 감기에는 약을 처방하지 말라"는 제시선이 있고 항생물질의 과도한 투여를 법적으로 막는 나라에서는 감기 해열제에 대한 내성균이 거의 검출되지 않는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약의 부작용'으로 인해 유발되는 질병들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감기약이나 두통약을 먹지 않는다. 안먹어도 금방 낫는다는 점도, 몸으로 직접 체험했다.

'후생노동성 낙하산 인사'와 17년째 미뤄진 '의료사고분쟁조정법' 통과

해당 제약사가 <이영돈 PD의 소비자 고발> 측에 보내온 공문이다.
 해당 제약사가 <이영돈 PD의 소비자 고발> 측에 보내온 공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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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돈 PD의 소비자 고발> 의료담당 전흥렬 PD가 S제약을 방문하니, 이런 화이트보드가 눈에 띄었다.
 <이영돈 PD의 소비자 고발> 의료담당 전흥렬 PD가 S제약을 방문하니, 이런 화이트보드가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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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니미츠의 정치>에 '만화 캐릭터'로써 출연한, <환자여! 암과 싸우지 마라>라는 책의 저자 콘도 마코토는 '레이 증후군'의 책임을 일본 후생노동성과 제약회사에 돌린다. 그는 돌려 말하지 않았다. 제약회사에 낙하산으로 취업한 인사들, 그리고 그들과 연계된 후생노동성이 약의 판매를 위해 병의 존재를 밝히길 꺼린다는 이야기다.

'인플루엔자 뇌증'이라는 병명 자체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인플루엔자'라는 병명이 들어 있기에 '인플루엔자'로 인한 질병으로 오인한 일반 사람들이, 예방접종이나 약의 복용을 더더욱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심리적 허를 노렸다는 이야기였다.

국내에서는, <이영돈의 소비자 고발>도 지적했듯이 '의료사고분쟁조정법'이 17년 넘게 표류되고 있다. 1991년에 법으로 제정됐다는 '의약품부작용 피해구제사업' 역시 시행되지 않고 있다.

'레이 증후군'의 '약 부작용'에 의한 질병을 감추기 위해 '인플루엔자 뇌증'이라는 교활한 병명을 활용하는 일본에서도, '스티븐스-존슨 증후군' 환자에 대해서는 의료비와 장애수당, 사망 시의 유족연금을 국가에서 지급하면서, 피해구제 심사기구를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실제로, 일본의 스티븐스-존슨 증후군 환우회장은, 일본 정부로부터 시력장애 2급 판정을 받고 3개월 단위로 우리 돈으로 680만원에 해당하는 돈을 지급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보건복지가족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2006년의 피해구제비용은 최대 14억 4천만원, 하지만 그조차도 제대로 이뤄지는 것일까?

아니다. 5개 지역약물신고센터가 집계한 스티븐스-존슨 증후군 환자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136명이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청은 2002년부터 올해까지 27명이 보고됐다고 밝혔다고 전해진다.

나머지 109명은 구름에 뜬 존재일까? 정부와 제약회사가 '낙하산'이라는 매개체로 사실상 담합한다는 일본의 사례, 과연 일본만의 일인 걸까? '의료사고분쟁조정법' 내지는 '의료사고 피해구제법안'이 17년 넘게 표류한 이유는 과연 뭘까?

한번쯤, '감기약' 없이 버텨보자

<이영돈 PD의 소비자 고발>이 다룬 '스티븐스-존슨 증후군', 마찬가지로 약의 오남용과 부작용에서 비롯되는 '레이 증후군', 누구라도 안심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이영돈 PD의 소비자 고발>이 다룬 '스티븐스-존슨 증후군', 마찬가지로 약의 오남용과 부작용에서 비롯되는 '레이 증후군', 누구라도 안심할 수 없는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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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약' 없이 금세 감기가 나았다는 내 사례, 물론 개인적인 경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성'이라는 것이 바이러스에게도 해당될 수 있다는 상식을 인지하며, 한번쯤 감기약 없이 자신의 몸을 믿고 버텨보는 것은 어떨까? 충분한 휴식과 샤워, 이런 근본적인 수단으로서 대처해보자는 이야기다.

우리의 약물 오남용이 일상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 가볍게나마 고민해봐야 할 이야기다. 몸을 믿고, 가벼운 병은 몸 스스로가 퇴치할 수 있는 능력을 믿는 것도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래도 혹시나 약을 먹는 순간이 온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은 귀찮더라도 설명서를 읽어봐야 한다는 것, 그리고 조제약의 경우엔 그 성분이 무엇인지 꼭 확인해야 한다는 점이다.

약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한국인, 보다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때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영돈의 소비자 고발, #감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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