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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적, 정의를 훔치다>
 <의적, 정의를 훔치다>
ⓒ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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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의적, 정의를 훔치다>란 책은 얼마전 종영한 KBS 드라마 <쾌도 홍길동> 최종회를 인상깊게 보고 나서 관련 서적을 뒤적이다 우연히 발견한 책이다. 원래 민주노동당 기관지인 <이론과 실천>에 연재했던 글이라고 하는데 민주노동당과 의적의 만남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도 자못 궁금하다.

국내에서 의적에 관한 연구가 본격화된 것은 1978년 에릭 홉스봄의 <의적의 사회사>가 소개되면서부터라고 한다. 물론 그 이전에도 홍길동, 임꺽정, 장길산, 일지매 등을 대상으로 한 문학작품, 논문 등이 발표되었지만 '의적'이란 개념을 연구 대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데는 홉스봄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홉스봄에 의하면 보편적이고 불변의 현상인 의적 행위는 억압과 가난에 항거하는 국지적 농민소요다. 그것은 부자와 억압자에 대한 복수의 함정이고, 억압자를 짓누르고 싶어하는 막연한 바람이며, 개인적 탈법 행위의 정당화다. 그러나 그 희망은 매우 온건하다. 그것은 전혀 새롭고 완전한 세계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정당하게 취급받는 전통사회를 꿈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적을 농업사회에서 공업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산물로 보는 홉스봄의 시각은 오늘날 적지 않은 학자들로부터 비판받고 있다. 그 이유는 미국, 호주처럼 이미 자본주의가 본격화된 시기에 의적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는데, 홉스봄의 이론으로는 이런 현상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홉스봄의 <원초적 반란>과 <의적의 사회사>가 지니는 의의는 세월이 흘러도 퇴색하지 않을 것이다.

박홍규의 <의적, 정의를 훔치다>는 <원초적 반란>, <의적의 사회사>의 연장선상에서 세계 각국의 전설적인 의적들을 소개하고, 의적이 발원하는 사회적 배경에 대해서도 나름대로의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저자의 전공 분야가 다름아닌 법학이란 점이다. 엄밀히 말하면 의적(義賊)도 범법자인데 법과 정의 사이에서 저자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 궁금하지 않은가?

그러나 저자는 별 망설임 없이 이렇게 반문한다. "예수님과 소크라테스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도 바로 법이었지 않느냐?"고…. 그는 역사는 도덕이나 법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즉, 역사적 판단은 역사가의 주관이 아닌 당대의 민중이 갖는 일반적인 의사를 객관적으로 확인하는 차원에서 내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의적과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논리들, 예컨대 "그 시대의 권위와 위엄은 사회질서 차원에서라도 보호되어야 마땅하다"는 논리에 대해서도 이렇게 대답한다. "대개 의적이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현상은 그 사회가 썩고 병들었을 때 발생한다. 따라서 그 사회의 기득권층이 건전하고 깨끗하다면 대중이 의적에 열광할 이유도 없을거"라고….

여기에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이자면, 대중이 의적에 열광하는 현상은 일종의 아이러니를 내포한 것으로 보인다. 즉, "대중은 정치인으로 하여금 대중을 대신해 손에 피를 묻히도록 하고 그 대가로 부와 권력을 쥐어 주지만 그 피는 원죄처럼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는 명제가 성립한다면 정치인이 대중의 대리인이었듯이 의적 역시 대중의 대리인으로 선출되어 정치인을 단죄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바로 여기에 대중의 아이러니, 비애가 숨어 있다.

이 책에도 적혀 있듯이 오늘날 의적은 비현실적인 존재다. 홍길동, 임꺽정, 장길산, 로빈 후드, 스텐카 라진 등과 같은 전설적인 의적들도 현행법에 의하면 한낱 도둑에 불과하다.
사실상 의적은 현실이 아닌 이미지로서만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 이미지는 강력한 상징기호로 현실 속에 군림하며 대중으로 하여금 꿈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도록 독려한다.

홍길동, 임꺽정, 장길산, 일지매, 쾌걸 조로, 로빈 후드, 스텐카 라진, 풀란 데비, 빌리 더 키드… 오늘날 우리는 그들을 영화, 연극, 드라마, 소설, 심지어 관공서 문서(홍길동) 속에서도 만날 수 있다. 만약 그들이 단순한 범법자에 불과하다면 그토록 오랫동안 대중의 관심 속에 머물 수 있었을까?

<쾌도 홍길동>의 마지막 장면처럼 지금 이 시간에도 '의적' 홍길동은 어디선가 우리를 굽어보고 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홍길동은 철저한 자기부정에 의해서만 이상향을 완성할 수 있다. 세상이 그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 비로소 홍길동이 꿈꾸던 율도국도 완성될 테니까. 그같은 철학적 역설이 홍길동을 더욱 신비롭고 매력적인 인물로 만드는 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박홍규, <의적, 정의를 훔치다>, 돌베개, 2005, 가격 12000원.



의적, 정의를 훔치다 - 박홍규의 세계 의적 이야기

박홍규 지음, 돌베개(2005)


태그:#홍길동, #의적, 정의를 훔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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