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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은 서구 배척 운동으로 들끓고 있다. 베이징올림픽 성화 봉송을 방해한 사람을 척살하자는 구호가 난무하는가 하면, 티베트 독립 움직임을 이해하려는 중국인을 인터넷상에서 집단 암매장하는 민족주의 움직임이 고조되고 있다. 반(反)서구, 반티베트 물결의 선두에 선 80후 세대를 다각적으로 진단하는 시리즈 4편을 모종혁 통신원이 전한다. [편집자말]
지난 19일 안후이성 허페이시 까르푸 매장 앞에서는 수천 명의 시위대가 몰려 매장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을 제지하고 반까르푸, 반프랑스 구호를 외쳤다.
 지난 19일 안후이성 허페이시 까르푸 매장 앞에서는 수천 명의 시위대가 몰려 매장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을 제지하고 반까르푸, 반프랑스 구호를 외쳤다.
ⓒ 장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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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프랑스 최대 소매 유통기업인 까르푸는 중국 내에서 벌어지는 '까르푸 불매운동'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 18~20일 중국 전역에서 반(反)까르푸 시위는 최고조에 달했다. 수도 베이징을 비롯하여 상하이, 광저우(廣州), 선전(深圳), 칭다오(靑島), 허페이(合肥), 우한(武漢), 시안(西安) 등 곳곳의 까르푸 매장 앞에서는 불매 운동과 반프랑스 시위가 벌어졌다.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천 명까지 모인 시위대는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매장으로 들어가려는 손님들을 제지하기도 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중국 내정을 간섭하고 베이징올림픽을 방해하려는 서구 세계에 중국인의 단결된 힘을 보여줘야 한다"며 티베트 독립을 지원하는 기업으로 지목된 까르푸를 성토했다. 베이징에서는 주중 프랑스대사관 앞에서도 시위가 벌어져 프랑스가 티베트 독립을 암암리 지원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까르푸 불매운동과 반프랑스 시위가 벌어지는 것은 지난 7일 프랑스 파리에서 벌어진 성화 봉송 저지 사건 때문이다. 베이징올림픽 성화를 봉송하는 도중 티베트 독립을 지지하는 세력의 시위로 성화가 세 번이나 꺼지고 봉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장애인 펜싱선수인 진징(金晶·여)은 봉송 과정에서 한 시위자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성화를 봉송하던 진징이 공격받는 장면은 중국 국영 CCTV를 통해 반복적으로 방영되어 중국인들을 분노케 했다.

'중국인과 중국 네티즌의 역량을 보여주자', '단결하면 중국인은 언제든 승리한다' 등 구호가 중국 네티즌 사이에 퍼져나갔다. 까르푸의 최대 주주인 프랑스 LVMH 그룹이 티베트 독립운동의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를 후원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까르푸가 반프랑스 시위대의 도마에 올랐다. '베이징올림픽을 방해하고 티베트 독립을 지지하는' 프랑스 제품의 불매운동에 중국인이 평소 손쉽게 이용하는 할인매장 까르푸가 첫 표적이 된 것.

지난 19일 영국 맨체스터 BBC 본사 앞에서 수백 명의 중국인이 몰려 BBC의 '반중 보도'를 성토하는 시위를 벌였다.
 지난 19일 영국 맨체스터 BBC 본사 앞에서 수백 명의 중국인이 몰려 BBC의 '반중 보도'를 성토하는 시위를 벌였다.
ⓒ 우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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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 봉송 저지 사건에 분노한 중국인들, 불매운동에 나서

까르푸 불매운동은 순식간에 중국 대륙 전체로 번져갔다. 중국인들은 휴대폰과 MSN, QQ 등으로 불매운동 참여를 독려하면서 전파해 나갔다. 중국 최대 검색사이트인 바이두(百度)에서 까르푸 불매운동(抵制家樂福)을 치면 35만 건의 관련 문서가 검색되고, 유명 포털사이트에서는 관련 특집이 게재되고 인터넷 투표가 실시됐다. 까르푸가 불매운동에 맞서 5월 1일 노동절을 맞아 대대적인 가격인하의 판촉활동을 전개한다는 소문까지 퍼져 반까르푸 움직임은 더욱 확산됐다.

불길처럼 번진 까르푸 불매운동은 중국 내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중국 네티즌은 중국의 저력과 힘을 보여주자며 까르푸 및 프랑스 제품 불매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지난 14일부터 포털사이트인 시나닷컴(新浪)이 까르푸 제재 여부를 놓고 실시한 인터넷 투표에서는 불매운동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88.77%로 절대 다수를 차지했다. 수백만의 투표 참가자 중 88.67%는 앞으로 1개월 내 까르푸에서 쇼핑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15일 장위(姜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까르푸 불매운동에 대해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다"며 "프랑스는 중국인이 합리적이고 합법적으로 전달하는 의견과 정서를 깊이 생각하고 반성해야 할 것"이라고 논평했다.

감정적 불매운동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다. 중국 CCTV의 유명 사회자인 바이옌쑹(白岩松)은 "까르푸에서 판매되고 있는 제품은 대부분 중국 국산이고 까르푸 노동자의 대다수도 중국인"이라며 "화내지 말고, 해야 될 일인 올림픽을 잘 준비하자"고 주장했다.

류준닝(劉軍寧) 중국문화연구소 연구원은 "까르푸가 망하면 프랑스 경제에 타격을 주는 것이 아니라 중국 경제와 중국인 노동자에게 치명타를 주게 된다"고 지적했지만, 중국 네티즌의 반발만 초래했다.

까르푸는 1995년 중국에 진출한 이래 120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2007년 매출액은 300억 위안(한화 약 4조5000억원)에 달하고 전체 유통 상품의 95%를 중국 현지에서 조달하고 있다. 까르푸가 중국 내에서 고용하는 4만여 명의 종업원도 99%가 현지 직원일 정도로, 지역경제에 대한 공헌도가 매우 높다. 이 때문인지 22일 중국정부도 "까르푸가 티베트 독립을 반대하고 베이징올림픽을 지지한다고 밝혔다"며 불매운동 확산에 고삐를 잡아당겼다. 23일 현재 중국 포털사이트의 까르푸 불매운동 관련 특집은 돌연 폐쇄되고 반프랑스 시위의 이미지가 접속 금지된 상태다.

불매운동 반대 의견에 국민적 영웅을 순식간에 매국노로 몰아

기자의 중국인 친구들도 하나둘씩 MSN의 대화명 앞에 Love China를 붙이는 홍심 애국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기자의 중국인 친구들도 하나둘씩 MSN의 대화명 앞에 Love China를 붙이는 홍심 애국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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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푸 불매운동은 경제적 이익에 얽혀 중국정부의 제재를 받기 시작했지만, 한 번 타오른 민족주의의 불길은 꺼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중국 네티즌은 메신저 프로그램인 MSN과 QQ 대화명에다 이모티콘 붉은 하트에 CHINA를 붙여 베이징올림픽을 지지하는 애국운동을 벌이고 있다. 중국에서 붉은 색은 길조를 의미하고 애국심을 상징한다. 홍심(紅心) 아이디 운동은 조국을 위해 애국하는 마음을 바친다는 기치로, 이미 수백만의 중국 네티즌이 참여했다.

티베트 사태와 관련하여 중국에 비판적인 보도에 앞장선 미국 뉴스채널 CNN에 대한 공세도 강화되고 있다. 중국 네티즌 사이에는 CNN을 비판하는 노래가 등장하여 급속히 퍼지고 있다. 한 여성가수가 부른 'CNN처럼 굴지 마'란 3분 분량의 노래는 CNN의 보도 행태를 비판하고 조롱하는 내용으로 뮤직비디오도 함께 만들어져 유행하고 있다.

지난 22일에는 베이징 변호사 14명이 CNN과 뉴스 진행자 잭 캐퍼티를 상대로 "중국인의 명예와 존엄성을 훼손해 심한 정신적 피해를 끼쳤다"며 베이징시 차오양(朝陽)법원에 100위안(1만5천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캐퍼티는 중국인을 깡패들(goons and thugs)로, 중국산 제품을 쓰레기(junk)로 지칭한 뉴스 논평을 냈었다.

시나닷컴이 운영하는 '분열 반대, 성화 보호' 서명 사이트에는 네티즌의 발길이 줄을 이어 23일 현재 793만 명이 서명했다. 텅쉰(騰訊)이 올림픽 성화를 수호하자며 모집한 참가자는 3000만 명을 넘어섰다.

해외에 거주하는 중국인들도 티베트 시위대에 맞서 친중국 시위를 벌이고 있다. 중국 대륙이 까르푸 시위에 몸살을 앓은 날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세계 각지에서는 올림픽 개막식 보이콧을 규탄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미국과 유럽의 화교들은 친중국 시위대를 지원하기 위해 1만 장의 오성홍기를 보내자는 운동도 펼치고 있다.

민족주의의 불길이 과열되면서 인터넷 마녀사냥도 일어나고 있다. 파리의 성화 봉송을 이끌고 시위자에 맞서 성화를 지켜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진징이 하루아침에 매국노로 전락했다. 진징이 중국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까르푸 불매운동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데는 반대한다"고 말하자, 중국 네티즌의 공격 대상으로 변했다. 23일 <남방도시보>는 "진징이 네티즌에게 민족 반역자로 매도되면서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상하이에 거주하는 진징과 가족은 가정생활에 심각한 지장을 받고 있는 실정"이라고 보도했다.

중국인은 티베트 사태를 베이징올림픽과 결부시키면서 애국심을 한껏 고양시키고 있다. 시나닷컴이 운영하는 '분열 반대, 성화 보호' 서명 사이트에는 네티즌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중국인은 티베트 사태를 베이징올림픽과 결부시키면서 애국심을 한껏 고양시키고 있다. 시나닷컴이 운영하는 '분열 반대, 성화 보호' 서명 사이트에는 네티즌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 시나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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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에 대한 환상 버린 80후 세대, 중화민족 부흥에 열광"

까르푸 불매운동과 반서구 시위를 주도하는 것은 10대 청소년과 20대 대학생 및 직장인들이다. 지난 19일 안후이(安徽)성 허페이에서 열린 까르푸 불매운동에 참가했던 장웨이는 "운동 참가자 대부분은 20대 젊은이들로 휴대폰과 인터넷으로 서로 연락을 주고받아 모였다"고 전했다.

영국 맨체스터에서 벌어진 반BBC 시위에 참석했던 우첸(29·여)도 "반중 보도만을 일삼는 BBC에 유학생들이 중국의 힘과 저력을 보여줘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각 대학 중국인 유학생회를 통해 나왔다"고 밝혔다. 그는 "시위 참가자는 대다수 20대였다"면서 "시위 열기도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고 말했다.

이들은 1979년 한 가정 한 자녀 정책 이후 태어난 외둥이로 '80후(後) 세대'로 불린다. 80후 세대는 개혁개방정책 이래 고도로 발달한 경제성장의 혜택을 고루 받으면서 자랐다. 지난 5년간 중국 경제가 연평균 10% 이상 성장하고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4위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면서 80후 세대의 국가적 자부심은 어느 세대보다 강하다.

80후 세대는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을 내세운 중국 지도자의 국가방침에 열광적이다. '분열 반대, 성화 보호' 사이트에서는 "아편전쟁 이래 중국을 유린하고 지배했던 서구 열강이 옛 추억에 사로잡혀 중국을 얕잡아 보고 있다",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 독립주의자는 중화민족의 비상을 막는 제1 공적", "서구 언론이 강대국으로 나아가는 중국을 시샘해서 중국 때리기(China Bashing)에 나서고 있는 것" 등의 댓글을 쉽게 볼 수 있다.

왕샤오둥(王小東) 중국청소년연구센터 부연구원은 "2005년 일어난 반일 시위와 이번 까르푸 불매운동 및 반서구 시위에 80후 세대가 주력으로 참여한 데에는 민족 번영에 대한 자신감과 국가 이익에 자신을 부합시키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서구 언론으로부터 21세기 중국 민족주의의 대표인물로 꼽히는 그는 "80후 세대는 기성세대보다 외국어가 능숙하고 인터넷도 능통하며 해외 사정도 밝다"면서 "이전 세대는 외국인에 대한 맹목적 신뢰를 보냈지만 80후 세대는 다년간의 경제발전과 생활향상을 통해 서구에 대한 환상을 버렸다"고 말했다.

높은 민족주의 열기를 내뿜는 것과 달리 80후 세대는 중국 사회의 본질을 캐고 문제점을 찾는 데는 눈을 감고 있다. 농민과 농민공 인권옹호단체에서 일하는 훠옌핑(35·여)은 "도시빈민과 농민의 인권과 권익을 위해 활동하는 시민단체에서 80후 세대를 보기란 그리 쉽지 않다"면서 "80후 세대는 이벤트성 민족주의 활동에는 열광적이면서 사회적 약자에 관심을 보이는 데는 인색하다"고 꼬집었다.

홍콩의 저명한 시사평론가 딩왕(丁望)도 "중국 젊은이들은 자유로운 서구세계의 시민사회와 언론공간의 영역에 비해 전체주의적인 중국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며 극단적으로 획일화된 중국 사회의 분위기를 비판했다.

지방정부의 부동산 재개발사업으로 거주지에서 쫓겨난 주민들이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80후 세대는 도시 빈민, 농민, 농민공 등 사회적 약자의 인권문제에는 무관심하다.
 지방정부의 부동산 재개발사업으로 거주지에서 쫓겨난 주민들이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80후 세대는 도시 빈민, 농민, 농민공 등 사회적 약자의 인권문제에는 무관심하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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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80후 세대, #중국 민족주의, #까르푸 불매운동, #베이징올림픽, #티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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