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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 직함은 국민이 부여한 바도 없고, 법률상 정확한 명칭도 아니다. 본인 스스로 회장이라는 명함을 찍고 다닌 거다. 명함 찍는 데 2만원 든다. 이건희 회장은 단 한번도 그룹경영의 지배권을 잃은 바 없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대표 전종훈 신부)이 지난해 10월 29일 서울 제기동성당에서 첫번째 '양심고백 기자회견'을 연 뒤로 꼬박 6개월이 지났다. 그간 검찰은 수사를 회피하다 여론의 압박에 밀려 검찰 특별수사감찰본부(특본)을 설치하고 수사했다.

 

그 다음에는 정치권 논리로 특별검사의 수사도 진행됐다. 그러나 김용철 변호사가 스스로 자기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했던 바와 달리 결국 삼성에게 면죄부만 주고 끝나는 결과가 됐다.

 

이에 대해 김용철 변호사와 사제단 신부들은 23일 오후 3시 서울 제기동성당 지하강당에 다시 매우 참담한 표정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머리 위로는 고통 속에 십자가를 지고 인간을 대신해 죽어간 예수고상이 부활절을 앞둔 성지가지와 함께 걸려 있었다.

 

"에버랜드 주식 5년내 매각? 선심 쓰듯 국민기만 말라"

 

김용철 변호사는 이날 "특검 수사결과는 최초에 제기된 바 있는 불법승계에 대해서도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결론을 냈다"며 "수사대상도 아니고 권한도 아닌 사항에 대해서도 결론을 발표했다"고 비판했다.

 

조준웅 특검이 필요 이상의 부분까지 수사결론을 내 사실상 이 사건에 대한 '월권행위'를 했다는 비판으로 들렸다. 김 변호사는 이어 "조 특검은 사제단과 나에 대해 명예를 손상하는 상당한 내용의 발언을 했다"며 "수사 상대방인 삼성에 대해서는 수시로 번복되는 진술을 그대로 인정해주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20회 가량 조사받는 과정에서 드러난 것은 삼성의 은닉재산을 실명화한 것"이라며 "삼성의 쇄신안을 보면 시인이나 반성도 없고, 실질적으로 뭘 잘못했다는 구체적 내용도 없다"고 성토했다.

 

또한 "차명 재산을 실명화하고, 이재용의 그룹승계 구도를 공식화했다"며 "삼성카드가 소유한 에버랜드 주식을 5년 내 매각한다고 말해 이미 법률적으로 주어진 상황에 대해서도 마치 국민들에게 선심 쓰는 것처럼 기만 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김 변호사는 "전례에 비춰 이번 쇄신안의 내용이 조금 있다해도 삼성은 그동안 대국민 사과 발표내용에 대해 약속을 지킨 바 없다"며 "<중앙일보> 계열분리에 대한 대국민 선언도 3번이나 했지만 그마저도 위장분리였다"고 못 박았다.

 

앞으로 김 변호사는 양식있는 시민들과 더불어 이씨 일가의 범죄가 철저하고 완전하게 해결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하고 싸워나갈 계획이라고 향후 활동의 일단을 밝혔다.

 

"삼성, 3대 부자세습마저 법적 정당성 얻는 혜택 누려"

 

사제단도  이날 참혹한 낯빛으로 '삼성특검과 삼성그룹의 경영쇄신안에 대한 사제단의 입장'을 발표했다. 사제단 대표 전종훈 신부는 이날 성서귀절을 인용하면서 ▲삼성특검과 삼성그룹 경영쇄신안에 대한 입장 ▲새로운 각오 등 3파트로 구분해 정리한 A4용지 3쪽 분량의 문서를 봉독했다.

 

전 신부는 "삼성특검은 의혹의 핵심이 되는 비자금 조성과 로비에 대해서는 범법당사자들의 일방적 주장과 진술을 근거로 모조리 무혐의 처리했다"며 "경영권 승계과정의 위법사항에 대해서도 경영권 방어 차원이라는 다른 동기를 인정해 책임자 모두를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또한 전 신부는 "삼성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갖가지 범죄사실로부터 완전히 자유를 누리게 됐다"며 "수많은 불법행위의 근본 이유였던 경영권의 부자세습마저 법적 정당성을 얻는 혜택을 누리게 됐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사제단은 김용철 변호사가 스스로 자신이 가담했던 범죄사실을 고백하고 시인했는데도 그의 고백을 철저히 묵살하고, 반대로 범법자들을 편들어 거꾸로 결론을 꾸며 발표했다고 비판했다.

 

전 신부는 "삼성그룹과 우리 사회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 너무나 소중했던 기회를 날려버린 조준웅 특검의 죄과를 엄중히 꾸짖고자 한다"며 "특검 결과야말로 자본에 의한 국가공권력의 매수와 타락상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가늠하게 해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아닐까 싶어 슬픈 마음을 감출 수 없다"고 한탄했다.

 

또한 삼성그룹의 경영 쇄신안에 대해 전 신부는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의 퇴진을 비롯한 인적 쇄신 등을 골자로 한 삼성그룹의 혁신안을 발표했다"며 "삼성은 먼저 자신이 범한 죄로 세상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만들고 오염시켰는지 깊이 성찰하고 낱낱이 진솔하게 고백해야 한다"고 반성을 촉구했다.

 

"부끄러운 일을 부끄럽게 여길 줄 모르게 된 게 무섭다"

 

전 신부는 "비자금 조성과 국가권력 매수를 위한 조직적 불법로비는 굉장히 무서운 범죄였다"며 "그런데도 우리 사회가 무서운 일을 무섭지 않게 여기고, 부끄러운 일을 부끄럽게 여길 줄도 모르게 된 것이야말로 더 없이 무섭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개탄했다.

 

이어 "군부통치 아래서 혹독한 시련을 겪었던 사제들은 자본이 오늘 독재권력이 되어 감찰을 비롯한 여러 국가기관을 매수하고 마비시키고 오염되는지 깊이 실감했다"며 "돈의 힘에 굴복해버린 각계의 유력자들과 돈으로 영혼을 매수하는 자들까지 결국 모두 돈의 노예가 돼버리는 현실이 너무 가슴아프다"고 말했다.

 

이날 사제단은 1987년이 절차적 민주주의의 원년이었다면 삼성비자금 사태가 발발한 2007년은 경제민주화를 위해 싸우는 원년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사제단은 많은 시민사회단체와 각계 역량이 국가권력과 재벌, 언론의 관계가 건강해지도록 파수꾼이 돼주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전종훈 신부는 "우리 사제단은 그동안의 증언을 토대로 권력과 자본의 결탁사례를 세상에 알리고 호소하는 일을 계속하겠다"며 "물신풍조에 적극 대항하지 못하고 경제적 약자들의 희생을 돌보지 못한 게으름을 참회하는 뜻으로 24일부터 26일까지 3일간 단식기도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사제단은 기업인들을 향해 "대한민국의 번영은 기업인과 노동자, 농민 등 모든 국민이 함께 일군 소중한 열매"라며 "우리 사회 약자들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사제단, 영혼을 추스르기 위한 단식기도 돌입

 

김인국 신부는 "우리는 스스로의 영혼을 새롭게 하기 위해 단식기도를 벌인다"며 "이 기도는 지난 6개월간 이 문제에 집중하면서 상처입고 시끄러웠던 것을 다시 추스르기 위한 영혼의 기도"라고 전했다.

 

이어 김 신부는 "그간 우리는 하고싶은 얘기를 다 하지 못했다"며 "국민의 오해도 생각해야 했고, 어떤 때는 증언자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도 있었다"고 술회했다.

 

그는 "이 문제를 소화할 사회 역량을 생각하고, 앞으로의 재판과정을 포함해서 권력과 삼성이 어떤 관계를 맺는가 면밀히 검토한 뒤에 활동계획을 짤 것"이라며 "향후 활동계획에 대해서도 모두 말하지 않겠다"고 함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사제단의 전종훈 대표신부와 김인국 총무신부, 김용식 통일위원장 신부, 배인호 신부를 비롯 김용철 변호사의 변호인단 소속인 이덕우 변호사와 김영희 변호사가 함께 했다.

 


태그:#삼성특검, #김용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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