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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발생한 산불로 꽃에 불길이 닿아 말라 버렸다.
 20일 발생한 산불로 꽃에 불길이 닿아 말라 버렸다.
ⓒ 이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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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엘리엇은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했다. 오늘 그 말을 실감한 하루였다.

20일 오후 9시 58분에 비상발령을 알리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발화지점이 명확하지 않은 산불이 충북 음성군 감곡면까지 옮겨 붙어 진화를 해야 하니, 21일 새벽 5시 30분까지 모이라는 내용이었다.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설 잠을 자고 음성군청에 도착하니 많은 직원들이 모여 떠날 차비를 하고 있다.

40분 거리에 있는 산불 현장에 다다르자 불덩이가 산허리를 감싸고 있다. 산은 이미 뿌연 연기로 가득 덮여 사람의 접근을 가로막고 있다. 현장투입을 대기하고 있는 산림담당부서 직원들과 산불진화대원들은 지난밤 산불과 사투를 벌인 때문인지 피곤한 모습이다.

산 아래에선 현지주민을 딸려 5명을 한 조로 나눈다. 중간에 혹시 발생할 수도 있을 불상사를 예방하고 응급대처를 위한 임시방편이다. 진화작업을 벌이다 허기진 배와 갈증을 달래줄 김밥 한 줄과 식수를 한 병씩 받아들고 꽃이 예쁘게 핀 복숭아 과수원을 가로질러 현장으로 향했다.

현장에서 기다리던 남원식 산림축산과 축산정책담당은 "현재는 방어선을 치는 것이 급선무"라며 "진화대원들을 따라 넓고 신속하게 방어선을 쳐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산불진화 헬기에서 쏟아지는 물을 맞으면 따갑기 때문에 몸을 최대한 낮추는 방법으로 물을 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피곤해 뵈던 산림축산과 직원들과 산불진화대원들은 불에 가까이 가자 언제 그랬냐는 듯 거친 숲을 헤치고 나갔다. 그 뒤를 따라 군청 공무원들과 마을 주민들이 방어선을 넓히며 뒤쫒았다. 언제 도착했는지 헬기는 굉음을 내며 연신 물을 퍼 나른다. 방어선이 확실히 구축되자 빠른 진화를 위해 맞불을 놨다. 다행히도 바람은 정상을 향해 불어줬다.

산림청 헬기가 물을 뿌리며 산불을 진화하고 있다
 산림청 헬기가 물을 뿌리며 산불을 진화하고 있다
ⓒ 이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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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진화현장은 헬기의 굉음이외에도 위험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 나무타들어가는 소리, 사람들의 고함소리가 뒤엉켜 호떡집을 방불케 한다. 불의 이동경로와 진화 위치, 위험상황을 알리는 무전기 소리는 모든 사람들의 촉각을 곤두서게 한다.

"선두 쭉쭉 나가고 방어선을 넓게 치세요"
"바람이 많이 불어 불이 거세니까 굉장히 위험해요. 항상 조별로 이동합니다."
"13조 좌측으로 이동하고 14조는 우측 3시 방향으로 이동해 주세요"
"최 대원 불이 내려오는 것 보면서 방어선 치란 말이야. 무조건 들어가지 말고(목청이 커진다)"
"불하고 거리 보면서 우리하고 어느 정도 떨어졌는지 계속 알려줘요."

방어선이 넓어지고 한숨을 돌릴 사이 엉뚱한 곳에 불이 붙어 진화대원들을 다급하게 만든다. 바람에 실린 불꽃이 방어선을 넘은 것이다. 한 산불진화대원은 "방어선을 아무리 넓게 구축해도 바람이 세면 이 정도 넘는 것은 일도 아니다"라며 "수 km를 날아가 불이 붙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정신없이 불을 잡기시작한지 3시간 정도가 지나자 꺼지지 않을 것만 같은 산불이 잦아들기 시작한다. 몸에 기운도 빠지고 허기가 찾아왔다. 마침 보급을 담당한 공무원들이 등짐에 주먹밥과 생수를 가지고 험한 산을 올라왔다. 정말 고맙고 이보다 반가울 수가 없다.

음성군에 따르면 이날 산불은 등산객의 실화로 발생했고 경기도 여주군 점동면 관한리 오갑산 8부 능선에서 시작됐다. 20일 오후 4시경 발화돼 산림 5ha를 태우고 21일 10시 50분경 진화됐다. 산불진화를 위해 공무원 700명, 소방대 15명, 경찰 15명, 기타 20명 등 878명이 동원됐다.

또한 산림청 헬기 11대, 등짐펌프200개, 갈퀴 600점, 소방차 1대, 산불진화차 1대, 기계화산불진화시스템 1대, 여주군헬기 1대가 투입됐다. 산불 가해자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산불이 잦아든 후 불이 덮쳤던 곳을 가봤다. 불길이 닿은 나무는 검게 화상을 입었고 예쁜 자태를 뽐내야 할 꽃들은 타버렸거나 손으로 쥐자 부서져 내렸다. 잔인한 4월이다. 산림의 중요성은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고 있다. '불조심' 구호뿐만 아니라 이제는 실천할 때다.

이선기(사진 오른쪽) 음성군 감곡면장이 산에 오르는 진화대원들의 인원을 파악하고 있다.
 이선기(사진 오른쪽) 음성군 감곡면장이 산에 오르는 진화대원들의 인원을 파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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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진화요원으로 투입된 공무원에게 김밥 한줄과 생수 한통을 건네고 있다.
 산불 진화요원으로 투입된 공무원에게 김밥 한줄과 생수 한통을 건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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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표정으로 산불 현장을 바라보고 있는 남원식(사진 오른쪽) 축산정책담당
 심각한 표정으로 산불 현장을 바라보고 있는 남원식(사진 오른쪽) 축산정책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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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축산과 오상윤(사진 왼쪽) 씨가 방어선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산림축산과 오상윤(사진 왼쪽) 씨가 방어선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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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이 무서운 속도로 번져 나가고 있다.
 산불이 무서운 속도로 번져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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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밥으로 점심을 대신하고 있는 음성군 공무원들
 주먹밥으로 점심을 대신하고 있는 음성군 공무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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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에 상처를 입은 나무
 불길에 상처를 입은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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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산에서 발견한 담배 꽁초들. 불조심 실천할 때다.
 이날 산에서 발견한 담배 꽁초들. 불조심 실천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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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충청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산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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