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여학생 세 명이 소카초등학교 로망도서관에서 책을 고른 뒤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어떤 책을 골랐니?" 여학생 세 명이 소카초등학교 로망도서관에서 책을 고른 뒤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신향식

관련사진보기


일본 도쿄 외곽 고다이라 시(市)에 있는 소카초등학교. 도쿄의 베드 타운 격인 이곳의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한 이 학교는 일본에서 이른바 '꿈의 학교'로 통한다. 부잣집 아이들만 다니는 학교도 아니고, 그렇다고 학교 건물이 호화판이라서도 아니다.

교육 전문가들과 이 학교의 학생, 학부모들이 한 목소리로 소카초등학교를 '니혼 이치(日本 一, 일본 최고)'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학교의 도서관 때문이다.

지난 1998년 개교 20주년 기념으로 만든 이 도서관은 이름부터 '로망 도서관'이다. 그야말로 꿈을 담은 도서관을 만들어냈다는 학교 측의 자부심이 담겨 있다.

또 하나, 이 학교는 일본인이나 한국인 어느 쪽의 처지에서도 유별나게 다가온다. '과거 일본의 군국주의를 반성하여 한국에게 사죄해야 하며, 올바른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평화와 우호의 길을 나아가야 한다'고 가르치는, 일본에서는 아주 드문 교육방침을 내걸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까지 소카초등학교의 교장으로 근무하다 얼마 전 재단의 부학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와카이 사치코 여사가 학교를 방문한 기자를 반갑게 맞이했다.

역시나 가장 먼저 안내한 곳은 이 학교의 자랑거리인 '로망 도서관'. 로망 도서관에 들어서자 중앙에 '미래의 사자'라는 일필휘지가 눈길을 끈다. 이케다 다이사쿠 창립자가 쓴 이 휘호는 '나이가 어리다고 아이 취급을 하면 안 된다. 아이들은 미래를 만드는 인격자'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로망 도서관도 이같은 사상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는 설명이다.

와카이 부원장은 "창립자가 매년 입학식 때 학생들에게 'TV나 인터넷에만 빠져서는 안 된다. 독서를 많이 하라'는 메시지를 주는데 그것이 학생들의 6년 간 학교생활에 큰 원칙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일본 도서관에서 발견한 이순신 전기

도쿄 소카초등학교 로망도서관에서 학생들이 자유롭게 책을 읽고 있는 장면.
▲ "여기가 꿈의 도서관!" 도쿄 소카초등학교 로망도서관에서 학생들이 자유롭게 책을 읽고 있는 장면.
ⓒ 신향식

관련사진보기



밝은 조명에 깔끔하게 단장한 도서관에서는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책을 보는 아이, 쿠션에 기댄 채 책을 읽는 아이 등 저마다 가장 편안한 자세로 독서에 빠져든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로망 도서관의 수용 인원은 120명으로 최대 3개 학급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크기. 세계 수십 개 국 서적 3만 권의 장서를 갖추고, 도서관에서 세계 각국의 문화를 간접 체험할 수 있게 했다. 아직 활자 매체에 익숙하지 않은 저학년 학생들을 위해서는 세계 각국의 그림과 사진 책을 갖춰 독서를 돕고 있다. 얼마 전에는 몽골의 교육 관계자가 이 학교 도서관을 견학한 계기로 몽골 도서 코너를 별도로 만들기도 했다.

소카초등학교 로망도서관에 있는 한국 도서 코너. 책상 외에 책꽂이에도 한국 관련 책이 수두룩하다.
▲ "한국 도서 코너" 소카초등학교 로망도서관에 있는 한국 도서 코너. 책상 외에 책꽂이에도 한국 관련 책이 수두룩하다.
ⓒ 신향식

관련사진보기



소카초등학교 로망도서관의 한국 도서 코너에 마련해 놓은 한국 책들. 한글로 '김정호', '이순신', '허준'이라고 적혀 있는 책 제목이 정겹다.
▲ "한국 책도 있군요" 소카초등학교 로망도서관의 한국 도서 코너에 마련해 놓은 한국 책들. 한글로 '김정호', '이순신', '허준'이라고 적혀 있는 책 제목이 정겹다.
ⓒ 신향식

관련사진보기



한국 서적 코너도 따로 있는데 한글을 모르는 일본 학생들이 보기 쉽도록 그림책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특히 이 가운데는 이순신 장군의 위인전도 있어 기자를 놀라게 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파견한 침략 원정군을 물리쳐 풍전등화 조선을 지켜낸 이순신 장군의 위인전을 일본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발견할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역시 일본의 우경화를 경계하고 올바른 역사를 교육해야 한다는 이 학교 건학이념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발견이었다.

도쿄 소카초등학교 로망도서관에 있는 '책 읽어주는 공간' 빨간 색 의자에 책을 읽어주는 선생이 앉고, 카펫 바닥에 학생들이 앉아 독서삼매경에 빠진다. 저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책을 읽어주는 프로그램도 잘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 "책 읽어주는 공간" 도쿄 소카초등학교 로망도서관에 있는 '책 읽어주는 공간' 빨간 색 의자에 책을 읽어주는 선생이 앉고, 카펫 바닥에 학생들이 앉아 독서삼매경에 빠진다. 저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책을 읽어주는 프로그램도 잘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 신향식

관련사진보기



로망 도서관은 크게 <독서 공간>, <읽어주기 공간>, <연구/조사 공간> 등 세 공간으로 나눠져 있다. <독서 공간>에는 테이블 별로 갖춰진 그룹 공간과 1인용 독서 공간이 있다. 1인용 독서 공간에는 각 좌석마다 밝기 조절이 가능한 독립 조명시설이 있어 학생들이 책읽기에 몰입할 조건을 잘 갖추고 있다.

<읽어주기 공간>에서는 교사뿐만 아니라 학부모나 지역 주민, 자원봉사자 등 다양한 참가자들이 학생들에게 책을 읽어주며 독서의 즐거움을 선물하기도 한다. <연구/조사 공간>은 자연과학, 사회과학, 역사/지리, 기술/공업 등 네 부문의 관련 도서를 갖추고 있다. 학교 측은 앞으로 연구/조사 공간에 초고속 인터넷 전용선을 깔아 학생들이 멀티미디어를 활용하여  호기심을 충족하고 세상과 소통할 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다.

유치원과 초, 중, 고 등 모두 7개 학교로 구성된 소카학원과 소카대학의 이른바 '소카 일관교육'에서 이케다 창립자가 가장 중시하는 것이 바로 독서교육. 마음이 건강해야 신체도 건강하다는 교육 방침 아래 독서교육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이 학교 도서관이 일본 내에서 널리 알려지자 일본 문부과학성의 이케노보오 야스코 부대신이 특별히 참관 방문을 하기도 했다. 도서관을 학교 건물의 한 가운데 배치한 것에서도 소카초등학교 도서관의 위상을 읽을 수 있다.

대출과 반납 등 소카초등학교의 도서관리는 모두 전산처리하고 있다.
▲ "도서 관리는 모두 전산처리" 대출과 반납 등 소카초등학교의 도서관리는 모두 전산처리하고 있다.
ⓒ 신향식

관련사진보기



학생들의 독서량도 대단하다. 지난해 총 대출량이 7만 권으로 학생 1인당 무려 108권을 읽었다. 어마어마한 대출량에 기자가 잘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자 컴퓨터 바코드로 관리되는 도서관 시스템의 데이터를 보여준다. 수긍할 수밖에 없는 객관적 수치였다.

학생들이 책을 무척 많이 읽다보니 책이 금방 찢어지거나 닳아서 걱정일 정도란다. 학생들 사이에 좋은 책이라고 입소문이 나면 너도나도 빌려 보기 때문이다. 아침 조회 때 어떤 학생이 전교생 앞에서 "삼국지가 좋은 책"이라고 발표하자 이 책을 빌리려는 학생이 몇십 명씩 대기한 일도 있다고 한다.

학생들의 독서 열기로 늘 책이 부족하기 때문에 창립자가 책을 많이 기증하고, 졸업생들도 독서의 중요성을 잘 알고 서적을 증정한다. 이밖에 도서관을 방문하거나 취재한 인사들이 기증한 책도 많다.

책읽기 강요하지는 않지만...

소카초등학교는 1년에 3회 독서주간을 두고 있다. 1년에 한 차례 연례행사로 독서주간을 두는 다른 학교들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학교 차원에서 보통 졸업 때까지 6년 간 한 학생 당 500권을 읽도록 유도하고 있다. 많이 읽는 학생은 무려 5000여 권을 독파하고 졸업하기도 한다.

"2주일에 5~6권 정도는 꾸준히 읽는다. 독서가 무척 재밌다. 마법이나 불가사이한 세계, 해리포터 이야기를 흥미롭게 읽고 있다. 요즘에는 ‘매직트리 하우스’라는 책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이날 도서관을 찾은 'ㄱ'군(5학년)은 이 같이 말하며 소년 독서예찬론자의 면모를 보였다.(글쓴이 주 :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학생들의 실명을 기사에 싣지 말아 달라'는 학교 측의 요청으로 실명 대신 약칭을 씀.)

소카초등학교 학생들이 로망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는 장면.
▲ "어떤 책을 읽을까요?" 소카초등학교 학생들이 로망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는 장면.
ⓒ 신향식

관련사진보기



또 다른 학생 'ㅁ' 군(4학년)은 "편도 2시간이 걸리는 장거리를 통학하고 있다"면서 "등하교 전철과 버스 안에서도 독서를 많이 하는데 작년에만 147권을 읽었다"고 자랑한다.

로망 도서관에 대한 교직원들의 자부심도 대단하다. 미즈하타 도시아키 소카학원 교육연구부장은 "보통 일본 초등학교에서는 학생 1인당 한 달 평균 9.7권의 책을 읽는다는 통계가 있는데, 우리 학교는 학생 한 명이 한 달 평균 20권 이상 읽는다"면서 "학생들의 책읽기 열기를 가정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독서 프로그램도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또 쌍방향 독서를 지향하며 책을 읽은 소감을 토론하는 '북 토크'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4~6학년의 경우 독서토론인 '북 토크' 활동을 국어시간에 하고 있고, 저학년 때는 책 소개 수준으로 한다고.

마즈하타 교육연구부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감상문을 강요하면 책을 잘 읽지 않게 된다. 그것보다는 책에 대해 질문하고 답하는 대화가 더 효과적이다. 우리 학교는 글쓰기 교육에 비중을 두고 있고 전국대회 입상 경험도 많지만, 독서와 글쓰기를 같은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읽은 것을 글로 옮기라고 강요하면 학생은 독서 자체에 부담을 느낀다. 그냥 사람을 만나고 감사의 편지를 쓴다든지 하는 정도의 자연스러운 글쓰기 교육이 좋다. 읽은 것이 천천히 마음속에 스며들고 그것이 자연스레 글쓰기로 이어진다는 선순환 구조가 바람직하다."

한편 구체적인 도서관 운용방식에 대해 와카이 부원장은 "로망 도서실은 학교가 열려있는 시간엔 항상 이용할 수 있고 언제나 대출도 가능하다"면서 "방학에는 보안상 도서관을 운영하지 않지만, 방학 전에 7권까지 책을 빌릴 수 있고, 또 지역도서관에서도 방학 때 책을 빌릴 수 있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말한다.

독서를 강요하지는 않지만 독서 카드, 독서 이력서를 두고 관리한다. 무작정 독서를 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1년 단위 계획 아래 책읽기 지도를 한다. 그 예로 시간이 넉넉한 방학엔  장편소설을 읽게 하는 것을 들 수 있다.

마쓰나가 마코토 교장이 로망도서관에서 소카초등학교의 교훈을 손으로 가리키며 설명을 하고 있다.
▲ "평화, 인권, 환경" 마쓰나가 마코토 교장이 로망도서관에서 소카초등학교의 교훈을 손으로 가리키며 설명을 하고 있다.
ⓒ 신향식

관련사진보기



소카초등학교 학생들은 특히 평화, 인권, 환경 등 세 가지 주제의 책을 많이 읽는다. 창립자의 바람이 학생들과 일맥상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학 때는 전쟁이나 원폭, 2차 세계대전, 진주만 폭격 등 일본의 과거 역사 반성을 독서 과제로 삼기도 한다. 실제로 하와이 진주만까지 답사하여 일본의 진주만 폭격에 대한 보고서를 쓰는 학생도 있다고 한다.

도쿄 소카초등학교 로망도서관에 있는 '3년 고개'란 제목의 한국 동화책.
▲ "3년 고개..." 도쿄 소카초등학교 로망도서관에 있는 '3년 고개'란 제목의 한국 동화책.
ⓒ 신향식

관련사진보기


"일본은 역사나 문화적으로 한국에게 큰 은혜를 입은 문화 대은의 나라"라는 이케다 창립자의 역사인식에 따라 한국 역사에 대한 독서와 교육에도 신경쓰고 있다.

이 학원의 진노 노부히로 홍보실장에 따르면 이케다 창립자는 한국의 효도 문화를 높게 평가한다는 설명이다. 진노 실장은 "창립자가 평소 한국은 효의 나라, 동방예의지국이라고 강조한다"며 "효도심을 일본에 전파해 준 게 한국이란 가르침을 학교에서도 교육에 적극 반영하고 있다"고 말한다.

일본 교육계에서 들불처럼 번져나가는 '아침 독서'도 소카초등학교에서는 별다를 게 없다. 와카이 부원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 학교의 1, 2학년은 아침 독서를 하고 있다. 이들은 등교하자마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오는 것을 과제로 삼고 있다. 3학년 이상은 휴식 시간에 도서관에 가서 자유롭게 책을 읽는다. 우리 학교의 독서는 외부에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예전부터 알아서 정착된 경우다. 오고가는 전철 안에서 독서하는 게 습관이 된 학생도 많다."

소카초등학교의 또 하나 강점은 독서지도를 전문적으로 한다는 점이다. 도서관 사서 1명  과 사서교사가 3명이 연계하여 합리적으로 독서지도를 하는 것이다. 소카초등학교 졸업생으로, 로망도서관에서 3년째 사서로 일하는 모리타 사치코 씨는 "아이들이 독서가 즐겁다고 말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며 "추천 도서를 고르기 위해 매 주 10권 정도씩의 책을 읽는다"고 말했다.

도쿄 소카초등학교 1층 복도 게시판에 적혀 있는 학년별 연간 독서목표량. 5학년과 6학년은 연간 50권이지만 저학년일수록 연간 독서목표량이 많다. 저학년들이 읽는 책은 활자가 크고 그림도 많아 고학년에 비해 책을 읽는 속도가 빠른 점을 반영한 목표치다.
▲ "학년별 독서 목표량" 도쿄 소카초등학교 1층 복도 게시판에 적혀 있는 학년별 연간 독서목표량. 5학년과 6학년은 연간 50권이지만 저학년일수록 연간 독서목표량이 많다. 저학년들이 읽는 책은 활자가 크고 그림도 많아 고학년에 비해 책을 읽는 속도가 빠른 점을 반영한 목표치다.
ⓒ 신향식

관련사진보기



이런 노력이 쌓여 소카초등학교가 일본, 아니 전 세계적으로 최고 수준의 독서 학교가 된 셈이다. 취재를 마친 기자가 "독서 교육을 이렇게 열정적으로 하는 학교는 다른 나라에서도 찾기 힘들 것이다, 보람된 취재였다"고 인사하자, 마쓰나가 마코토 교장은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다"고 말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허리를 굽히며 한국말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라고 화답했다.

소카 초등학교는 어떤 학교?
홍보책자에 실려있는, 이케다 다이사쿠 소카학원 창립자.
▲ "소카학원 창립자" 홍보책자에 실려있는, 이케다 다이사쿠 소카학원 창립자.
ⓒ 신향식

관련사진보기



지난 78년 도쿄 인근 고다이라 시(市)에 설립한 사립학교로 학생 수는 한 학년 당 약 100명이다. 남녀공학의 이 학교는 창립자인 이케다 다이사쿠 선생의 뜻에 따라 '건전한 영재주의', '인간성이 풍부한 실력주의'를 교육방침으로 삼고 있다.

특히 이 학교의 독서율은 일본에서 최고 수준으로 유명한데, 학생 1인당 연간 108권의 책을 독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태그:#독서, #소카, #논술, #일본, #문자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8,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자 출신 글쓰기 전문가. 스포츠조선에서 체육부 기자 역임. 월간조선, 주간조선, 경향신문 등에 글을 씀. 경희대, 경인교대, 한성대, 서울시립대, 인덕대 등서 강의. 연세대 석사 졸업 때 우수논문상 받은 '신문 글의 구성과 단락전개 연구'가 서울대 국어교재 ‘대학국어’에 모범예문 게재. ‘미국처럼 쓰고 일본처럼 읽어라’ ‘논술신공’ 등 저술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