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인파로 꽉 찬 인사동길. 주말에 가려면 각오하고 나서야 합니다.
 인파로 꽉 찬 인사동길. 주말에 가려면 각오하고 나서야 합니다.
ⓒ 정진영

관련사진보기


토요일 오후. 인사동 길은 구경 나온 인파로 북적입니다. 아이를 데리고 나서기에 그리 좋은 조건은 아니지만, 이모님의 그림 전시회 오픈 날이어서 가족 모두 인사동으로 향합니다.

쿠하는 선물로 받은 까만 애나멜 구두가 꽤 마음에 드는 눈치입니다. 평소 같았으면 진작 안아 달라고 졸랐을 저녁 일곱 시 무렵까지, 엄마를 괴롭히지 않습니다. 물론 저 말고 다른 가족들이 교대로 안아주거나 손을 붙잡고 다녀서 그랬을 테지만, 낮잠 잘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이상하게 잘 걷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그 자리 있는 오래된 악기상가가 괜히 반가운 날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그 자리 있는 오래된 악기상가가 괜히 반가운 날이었습니다.
ⓒ 정진영

관련사진보기


목적지는 인사동 사거리 '아카갤러리'였지만, 인사동 입구에 자리한 악기전문 낙원상가로 먼저 갑니다. 쿠하는 23개월 무렵 강호동의 '무릎팍도사'에서 바이올린 연주자 장영주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본 후로 줄곧 바이올린과 첼로를 사달라고 졸랐습니다. 콩순이 인형이나 토마스 기차를 봐도 조른 적 없는 쿠하가 태어나 처음으로 사달라고 말한 것이 바이올린과 첼로입니다.

자기도 사진 속 아기(장영주의 세살 무렵 사진) 같은 바이올린을 사달라는 통에 인터넷 악기 쇼핑몰도 찾아보고, 춘천에서 음악학원을 찾아가 상담을 받기도 했습니다. 아빠와 엄마 모두 음악과는 담 쌓고 살아온 사람들이라 바이올린은커녕 피아노도 제대로 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기를 사기 전에 먼저 그 또래 아이에게 기본 자세와 주법이라도 가르쳐 줄 수 있는 학원이 있는지 찾아보기로 했던 겁니다.

"엄마, 나도 저 아기같은 바이올린 사줘~"
 "엄마, 나도 저 아기같은 바이올린 사줘~"
ⓒ 정진영

관련사진보기


집에서 가까운 곳에 바이올린도 가르쳐 주는 피아노 학원이 있었지만,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는 선생님조차 쿠하 또래인 당신 아들에게 아직 바이올린을 쥐어준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너무 어려서 수업이 제대로 진행될지 모르겠다며, 하게 되면 개인 과외로 하는 방법을 권한다고요. 30개월도 안된 아이에게 바이올린 개인교습을 시킬 형편도,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마음에 벌써 5개월째 곧 사준다고만 하고 지나갑니다. 

물론 아이가 가지고 놀 만한 장난감 바이올린을 사줘도 되겠지요. 하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뭔가 사달라고 한 건데 진짜 바이올린이 아닌 버튼만 누르면 자동으로 소리가 나는 장난감으로 대신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조율을 하려고 열어둔 피아노가 신기했던지 발견하자마자 달려갑니다.
 조율을 하려고 열어둔 피아노가 신기했던지 발견하자마자 달려갑니다.
ⓒ 정진영

관련사진보기


주말이어서 그런지 낙원상가에는 손님이 적지 않았습니다. 바이올린이 그득한 가게에서 손님과 주인이 번갈아가며 연주하는 모습을 보자, 쿠하는 "잘했어요~"하면서 박수를 쳐서 사람들을 웃게 합니다. 엄마는 할아버지, 할머니도 함께 간 그 자리에서 사달라고 할까 봐 마음이 콩닥콩닥. 얼른 자리를 피하고 싶어 전자 기타 소리가 나는 가게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독특한 벽그림으로 관람객을 즐겁게 하는 쌈지길.
 독특한 벽그림으로 관람객을 즐겁게 하는 쌈지길.
ⓒ 정진영

관련사진보기


아이는 길에서 훌쩍 크는 것 같습니다.
 아이는 길에서 훌쩍 크는 것 같습니다.
ⓒ 정진영

관련사진보기


낙원상가를 빠져나와 건물 안에 길을 담은 쌈짓길로 갑니다.

어르신들께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인사동의 대표적인 공간을 보여드리고, 다양한 공예 가게를 구경하러 나선 것이지요.

쿠하는 꼬불꼬불 이어지는 건물이 신기했는지 걷다가 아까 지나온 아래층을 내려다보곤 합니다.

다른 데 같으면 사람이 많은 길에서는 엄마 손을 놓치지 않으려고 꽉 잡고 가는데, 신기한 물건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길에서는 저 혼자 저만치 앞서 걸어갑니다.

쌈짓길은 개성있는 가게와 전통적인 아이템이 조화로워서 눈이 즐거운 곳입니다.

가게마다 차이는 있지만 수공예품이 많아서인지 약간 비싼게 흠입니다. 하지만 재미와 즐거움, 때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물건을 갖는 기분까지 선물할 수 있어 '지름신'이 내리곤 합니다.

오래 버티는 가게도 많지만, 쌈짓길은 외부 장식부터 내부 입점 업체까지 끊임없이 변합니다. 대부분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는 가게인 탓에 관광객과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도 종종 눈에 띕니다. 카메라를 들고 나선 사람들은 거의 본능적으로 셔터를 눌러대고, 디자인을 도용 당할 수 있는 상인들 입장에서는 제지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만, 그런 광경이 썩 좋아보이지는 않습니다.

줄을 서서 찍은 모델 컷. 몸만 섹시하네요. ㅎㅎ
 줄을 서서 찍은 모델 컷. 몸만 섹시하네요. ㅎㅎ
ⓒ 정진영

관련사진보기


쌈짓길 맨 위에는 한 출판사가 인테리어를 멋지게 꾸민 북카페가 있습니다. 실내 정원으로 입구를 꾸며 놓고, 공모전을 통해 뽑은 시를 투명 판넬에 초록색 글씨로 써서 걸어두었습니다.

식물과 잘 어울리는 시들 가운데 쿠하에게 한 편 읽어주니 좀 지겨워 하네요.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서 녹색으로 쓰인 시들은 읽히기보다는 어깨로 툭 치고 지나가는 존재였습니다. 시보다는 먹고 마시고 떠드는 데 집중하는 우리 모습을 스스로 볼 수 있게 한 장치 같기도 했습니다.

아이와 함께 걷다보면 대개 아이의 발걸음에 맞춰 적당히 쉬어주는 요령이 필요합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적당히 쉴 공간을 찾기 어려워서 카페나 공원 벤치를 찾게 되기 마련인데, 주말의 인사동에서는 그럴 여유조차 없이 빡빡합니다.

북카페로 들어서는 길목에 구경꾼을 위해 마련한 잡지 사진판이 있어, 우리도 줄을 섭니다. 섹시한 게 뭔지도 모르는 쿠하는 얼굴을 내밀고 메롱~하며 까꿍 놀이를 합니다.

명함에 그려진 물고기와 그림 속 물고기를 비교해 봅니다. "큰 건 엄마, 작은 건 아기"라네요.
 명함에 그려진 물고기와 그림 속 물고기를 비교해 봅니다. "큰 건 엄마, 작은 건 아기"라네요.
ⓒ 정진영

관련사진보기


음악과 미술이 거리마다 넘쳐 흐르는 동네 인사동에서 마지막 목적지를 향해 갑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지난 30년 간 20회가 넘는 개인전을 부지런히 해 오신 이모할머니를 찾아간 길. 쿠하는 방에 붙여둔 할머니 그림들이 낯설지 않아서인지 다른 전시장에 갔을 때보다 유난히 더 활발합니다.

미술 잡지 표지를 장식한 할머니의 그림을 보며 "엄마, 이거 책에 나온 거야"하고 아는 체를 합니다. 또 할머니 명함에 그려진 물고기와 벽에 걸린 물고기를 비교하기도 합니다. 전시 오픈 행사에 오신 손님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아무리 재우려고 해도 눈만 말똥말똥. 저녁 일곱 시가 넘은 시간에도 쿠하는 쌩쌩합니다.

길에 나서면 마냥 기분이 좋아지는 아이.
 길에 나서면 마냥 기분이 좋아지는 아이.
ⓒ 정진영

관련사진보기


낙원상가와 쌈짓길, 인사동 갤러리들까지. 쿠하와 함께 걷기에는 짧지 않은 길이었지만, 신기한 볼거리가 많은 길에서 아이의 호기심은 듬뿍 봄비를 맞은 모양입니다. 햇살 좋은 봄날이 다 가기 전에 인적 드문 평일 낮에 다시 한 번 낙원동과 인사동으로 봄 나들이를 나서야겠습니다. 


태그:#인사동, #쿠하, #쌈짓길 , #낙원상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