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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실나무는 꽃이 지고, 살구꽃이 한창이다.
▲ 우리집 유실수 나무. 매실나무는 꽃이 지고, 살구꽃이 한창이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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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봄에 조금조금 자란 풀들이 어느새 무성히 자랐다. 밭에 풀이 자라는 것을 보면 겁이 난다. 이제부터 시도 때도 없이 올라오는 풀과의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 호미로 뽑고, 낫으로 베고! 얼마나 씨름을 해야 할까?

이웃과 나누는 즐거운 대화

부지런한 옆집아저씨 손에 호미가 들려있다. 밭둑에 난 풀을 뽑고 계시다. 봄 햇살 때문일까? 얼굴이 까맣게 타셨다. 나무 밑에 자란 풀을 뽑고 있는 나와 얼굴이 마주치자 아저씨가 반가운 인사를 하신다.

"전 선생, 막걸리나 한 잔 할까? 냉장고에 시원한 게 있어. 안주는 뭐로 하지?"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밭일을 한참동안 하면 허기가 지고, 목이 탄다. 이때 시원하게 들이키는 막걸리는 곁두리로 최고다. 요기도 되고 갈증도 풀어준다. 농주라는 막걸리, 술이라기보다 음료수에 가깝다.

일하다 가끔 아저씨와 막걸리를 기울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막걸리 한 잔에 인심도 돈독해진다. 만날 나누는 이야기가 그 이야기지만,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이 있다.

아저씨는 산행을 무척 즐긴다. 우리 동네 뒷산인 마니산을 시간 날 때마다 오른다. 대개 혼자 오르지만 동행할 사람이 있으면 좋아하신다. 아저씨는 나무와 꽃에 대해 관심이 많다. 산에서 나는 봄나물을 잘 알아 산행과 함께 나물도 채취한다. 아저씨와 산에 오르면 참 좋다. 야생화 이름도 알려주고, 나무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주신다.

오늘도 자연 나무에 대해 화제가 옮겨간다.

"가시 많은 엄나무 알지? 엄나무 순을 개두릅이라고 하지! 봄나물로는 최고야. 5월 초순 진강산에 가면 새순을 딸 수 있지. 날을 잡아 같이 가자구. 개두릅 데쳐 막걸리 한 잔 걸치면 그 맛이 일류야!"

어린이날 나물 캐는 산행 날짜를 잡았다. 개두릅이며 취나물, 고사리, 고비까지 뜯어보잔다. 벌써부터 마음이 풍성해진다. 그때는 무슨 꽃이 피어있을까? 산은 신록의 푸름으로 온통 변해 있겠지!

"꽃 피는 것을 보니 열매 꽤나 달리겠는 걸!"

배나무는 지금 한창 꽃을 피우고 있다. 올핸 몇 개라도 달리겠지?
 배나무는 지금 한창 꽃을 피우고 있다. 올핸 몇 개라도 달리겠지?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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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가 우리집 쪽으로 시선을 옮기며 말씀을 하신다.

"전 선생네 유실수에서 올핸 과실 좀 따겠어?"
"그럴까요? 작년엔 별로였는데."
"아냐, 꽃 달린 게 멋지고, 실해 보이잖아! 매실이며 살구, 자두는 기대할만 해."
"말만 들어도 기분이 좋네요."

유실수를 심은 지가 오년이 되었다. 아저씨 경험으로는 햇수로도 그렇고, 나무 상태로도 그렇고 열매를 꽤나 따겠다고 한다.

사실, 기대는 하지만 생각같이 많이 달려줄까 싶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상품 가치가 있을 정도의 튼실한 과일을 수확하기까지는 온갖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 거름도 주고, 가지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병충해 예방에 노력해야 한다.

작년부터 조금씩 열렸지만 제대로 거두지 못했다. 때맞춰 약을 치지 않으니 열매가 익기도 전에 탐을 내는 벌레들 등쌀에 제대로 달리지 못했다. 조금 달린 것도 죄다 굴타리 먹은 것뿐이었다.

우리집에는 많은 여러 종류의 유실수가 있다. 요즘 하루가 다르게 꽃이 피고 지고 있다. 뜰 안이 갖가지 유실수 꽃으로 봄의 기운이 완연하다.

우리집에도 유실수로 꽃 잔치

막걸리 한 잔에 얼큰한데다 꽃이 있는 나무를 보니 기분이 좋다. 아내가 차를 몰고 들어왔다. 아침과는 다른 앵두나무 꽃을 보며 즐거워한다.

우리 집 유실수 꽃과 새 순을 사진에 담았다. 왼쪽부터 앵두꽃, 보리수 꽃망울, 체리꽃, 배꽃, 사과나무 새순, 매화, 살구꽃, 모과나무 새순, 자두꽃이다.
 우리 집 유실수 꽃과 새 순을 사진에 담았다. 왼쪽부터 앵두꽃, 보리수 꽃망울, 체리꽃, 배꽃, 사과나무 새순, 매화, 살구꽃, 모과나무 새순, 자두꽃이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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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오늘 꽃망울을 활짝 터트렸네!"
"당신 바빠 꽃 피는 것이나 알고 지내?"
"아무렴요! 올핸 열매가 많이 열리겠어요!"
"옆집 아저씨와 같은 소리네!"

아저씨도 그랬느냐며 아이처럼 좋아라한다. 우리집 꽃나무를 가까이 보자며 내 팔을 끈다. 어떤 나무가 심어졌는지, 열매가 달리는지 바쁘기만 한 아내가 의외다.

"당신, 아직 이름도 모르는 나무가 있지?"
"그래도 알 것 다 아는데…. 열매가 한번도 안 달린 것은 잘 모르죠."
"그럼 올해 열매가 달리면 죄다 알겠네?"

아내가 웃음으로 대답한다. 아내와 함께 집 주변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유실수 꽃향기가 바람결에 코끝을 간질이는 듯싶다.

소망 담은 열매들로 풍성하면 얼마나 좋을까?

앵두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꽃을 보니 엄청 열매가 달릴 듯싶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뭇가지에 흰 밥풀이 붙어있나 싶을 정도로 소담한 꽃망울이 많이 맺혔다. 꽃망울을 터트리니 화사하다. 빨갛게 달릴 앵두 색깔이 그려진다.

보리수나무는 꽃망울이 열리지 않았다. 아마 한 열흘은 지나야 꽃이 필 것 같다. 앵두나무에 비해 꽃은 화려하지 않지만 열매가 꽃보다 더 아름답다. 재작년부터 달리기 시작하여 작년엔 꽤 많은 양을 땄다. 보리수 열매는 색으로 사람 마음을 사로잡아 진가를 발휘한다.

체리나무라고 심었는데 여태껏 열매가 달리지 않았다. 나무는 큰데 꽃이 여느 나무처럼 많이 피지 않았다. 올해 첫 열매가 달려봐야 확실하게 체리나무인지 가려질 것 같다.

꽃이 먼저 피는 것도 있고 꽃과 잎이 함께 피는 것도 있다. 왼쪽부터 앵두, 보리수, 자두, 모과나무이다.
 꽃이 먼저 피는 것도 있고 꽃과 잎이 함께 피는 것도 있다. 왼쪽부터 앵두, 보리수, 자두, 모과나무이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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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을 화려하게 꽃 장식을 하는 것은 매실나무와 살구나무, 자두나무이다. 햇수가 거듭될수록 키가 크고 밑동도 굵어졌다. 매실나무는 꽃잎이 지며 바람에 흩날리고, 살구나무는 꽃이 한창이다. 자두나무는 이제 꽃망울이 열리기 시작했다. 꽃이 피고 지는 시기가 나무마다 다르다.

"여보, 매실하고 살구가 많이 열렸으면 좋겠어요?"
"글쎄, 열매가 달릴 때 진딧물이 오죽 많아야지!"
"매실로 술도 담고, 장아찌도 하면 좋은데. 살구로 쨈도 만들고!"
"아마 당신이 소원하면 많이 달릴 거야!"

뭔가 기다리는 것이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가? 아내는 예쁜 꽃을 본 것으로 본전을 뽑았고, 열매를 딸 수 있으면 덤이라며 기대를 부풀린다.

우리는 사과나무와 배나무로 시선을 돌렸다. 배나무는 꽃과 잎이 함께 올라와 이미 꽃망울을 터트리는데, 사과나무는 이제 잎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배나무나 사과나무는 전문가나 키워야 할 것 같았다. 옆집은 관리를 잘해 꽤 수확을 하는데 우리는 제대로 맛을 보지 못했다. 가지치기를 잘 해주고, 농약도 제때 쳐야 상품가치를 높이는 모양이다. 거기다 배는 봉지까지 씌워줘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모과나무에도 잎이 벌어졌다. 잎이 싹틀 때는 장미꽃모양을 하고 있어 특이하다. 감나무, 포도, 대추나무는 싹트는 게 늦다. 죽은 줄 알았더니 그래도 눈에서 싹이 보여 반갑다. 얼마나 탐스러운 열매를 안겨줄까 기대가 크다.

집안을 한 바퀴 둘러본 아내의 얼굴이 꽃처럼 환하다. 건성으로 지켜본 나무가 예쁜 꽃을 피워낸 게 신기한 모양이다. 꽃이 진 자리에 우리의 소망을 담은 열매들이 풍성하게 달리면 얼마나 좋을까?

뒤꼍에 흐드러지게 핀 홍도화를 보고, 그냥 지나치기 아쉬운 듯 아내가 사진 한 방을 부탁한다.

홍도화 앞에서 포즈를 취한 아내. 붉은 꽃의 화사함에 반하기라도 하였나?
 홍도화 앞에서 포즈를 취한 아내. 붉은 꽃의 화사함에 반하기라도 하였나?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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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봄꽃, #봄꽃나무, #유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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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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